언제부턴가 커피숍이나 편의점 같은 데서 주문 또는 계산을 하게 될 때 듣는 말 중에 적응이 안 되는 말이 있다.
"주문하신 커피가 나오셨습니다", "3천 원 되시겠습니다."와 같은 사람이 아닌 사물에 존칭을 사용하는 어투이다.
이런 어투를 들을 때마다 "주문하신 커피가 나왔습니다", "3천 원입니다"라고 바로잡아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목구멍 언저리까지 나오는 것을 애써 자제해야만 했다.
옳은 것으로 바로잡자는 마음보다는 꼰데로 비치기 싫은 마음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간혹 티브이 예능 프로에 나오는 아이돌들이 간단한 퀴즈에서 보여주는 무지와 교양 없음이 연상되면서, 요즘 젊은 세대는 다 이런가 하는 세태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지기까지도 했다.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티브이 뉴스 프로를 통해 알게 됐다.
우리 사회에 과잉되어 있는 사물 존대와 잘못된 줄 알면서도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업 종사자에 대한 취재였다.
서비스업 종사자 대부분은 사물 존대가 잘못된 어법인 줄은 익히 잘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용하는 것은 고객과의 불필요한 다툼을 한 번이라도 더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주문하신 커피가 나왔습니다", "3천 원입니다"라고 하면 고객이 버릇없다 따지고 심지어는 반말로 받아들이는 고객도 있어 한 번이라도 욕 덜 얻어먹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한다.
잘못된 사물 존대의 만연 원인은 무지와 교양 없는 젊은 세대가 아니라 갑질이 일상이 되어있는 기성세대에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유난히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한 비상식적 관행,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보여주는 갑질 문화가 발달되어왔다.
라면 상무, 땅콩 회항, 맷값 폭행, 운전기사에 대한 갑질 매뉴얼, 공관병에 대한 육군 대장의 갑질,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까지 갑질 문화가 고착화되었고 한국을 대표하는 병폐 중 하나가 되었다.
갑, 을의 실제 의미가 우열이나 상하 종속의 관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거래상 또는 업무상 상대방을 지칭하는 것임에도 혹자에겐 유독 상하 관계나 주종 관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천민자본주의와 과도한 예절로 왜곡된 유교 문화, 무시와 하대 등의 무례한 행동,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권위주의적 사고를 지양하지 못하다 보니 갑질이 자연스러워진 사람들이 어느 순간 곳곳에 넘쳐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기성세대가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다 보니까 흔히 말하는 기성세대는 중간지대 없는 두 가지 부류만 있다고 여겨진다.
자기애에 지나치게 충만해져서 갑질이 자연스러워진 사람들, 그리고 인생에 더욱 겸허해져 그에 비례하여 예절과 배려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자기애에 지나치게 충만해져서 갑질이 자연스러워진 사람들은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로 오는 인생의 굴곡을 망각한 사람들이다.
인생의 굴곡이란 마냥 우상향 방향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쉽게 간과한다.
그때까지의 적당한 성취에 기대어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반면, 인생에 더욱 겸허해진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가며 겪는 여러 부침(浮沈), 즉 굴곡의 진폭을 경험하며 예절과 배려의 실천을 잊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작품에서 말하는 인생의 굴곡-희망과 시련은 우리가 인생에 대해 교만할 수 없게 해준다.
“희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시련이 있다.
네 말이 맞아. 그건 확실해.
단지 희망은 대부분 수가 적고 추상적이지만, 시련은 지긋지긋할 만큼 많고 대부분 구체적이지.”(1q84 중에서)
신은 인간에게 그다지 녹록지 않은 인생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인생에서 평화와 행복만이 계속된다면 인간의 정신은 금방 지쳐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신은 잘 알고 있다.
시련은 인생의 본질로 인생 자체에 녹아있다. 단지 다가오는 형태와 순서만 다를 뿐이다.
시련은 때로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가혹하기도 하여 인생에 대해서 쉽게 우쭐거리는 이들을 겸손케 해준다.
희망과 시련이 반복되는 인생의 굴곡은 살아가는 데 있어 독선과 아집 대신 역지사지의 마음을 잊지 않게 해준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얼마 전 인천의 한 마트에서 배고파 음식을 훔친 '현대판 장발장' 부자에게 쏟아진 가슴 뭉클한 관심이 화제이다.
아직까지는 살아있는 우리 사회의 인간에 대한 예절과 배려를 보여준 사건인 거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누구도 자신이 받은 것으로 인해 존경받지 않는다.
존경은 자신이 베푼 것에 대한 보답이다.
-캘빈 쿨리지-
2020년 1월에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