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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3318년형보다는 필벌주의

종종 미디어에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진 강력범, 흉악범을 접하게 된다.

연쇄살인, 토막살인, 묻지마살인 등의 잔혹한 범죄와 중범죄자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과 이질감, 정서적 거부감을 갖게 된다.

그다지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런 감정들과 더불어 우리나라 법체계, 양형 구조에서는 어째서 미국처럼 수백 년에서 수천 년 그런 형량이 선고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생겨나기도 한다.

실제 판결에서는 10~50년 이하의 형량에 그칠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예상한다.


미국의 경우 2012년 미국 콜로라도주 영화관에서 총기를 난사해 12명을 죽게 하고 70명을 다치게 한 제임스 홈스가 종신형에 징역 3318년을 추가한 형량을 선고받았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형법 제42조는 ‘징역 또는 금고는 무기 또는 유기로 하고 유기는 1개월 이상 30년 이하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원칙적으로 유기징역은 최장 3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누범·경합범 등 가중사유가 있을 때만 최장 50년의 유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미국과 우리나라의 양형의 차이는 선택하고 있는 법체계의 차이에 기인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 법체계는 식민지 시절 일본으로부터 들여왔고 일본과 마찬가지로 대륙법체계에 속하기 때문에 미국처럼 수백 년에서 수천 년까지 그런 형량이 선고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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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세계의 법체계는 대륙법과 영미법 2가지로 나누어진다.

대륙법과 영미법의 뿌리는 다 같이 게르만 관습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양 법계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 같이 로마법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대륙법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하여 입법된 성문법이었던 로마법을 계승하여 이를 학문적으로 정리한 후에 입법으로 발전시켰다. (게르만 관습법+로마 성문법)

영미법은 로마의 고전 시대에 불문법으로 존재하였던 로마법의 영향을 이어받았다. (게르만 관습법+로마 불문법)


대륙법과 영미법의 차이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륙법이란?


1. 대륙법은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국가들에서 형성, 발전한 성문법형식의 법체계이다.

성문법이란 헌법, 법률(형법, 국제법, 민법, 상법, 행정법 등), 명령, 규칙 등과 같이 글로써 문자화되어있는 것을 말한다.


2. 대륙법에서의 법이란 내재적으로 합목적성과 정의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고, 또한 이를 지향하여야 하며, 따라서 법학을 가치의 학문으로 이해한다.


3. 데카르트가 중심이 된 '합리론', 칸트나 헤겔이 중심이 된 철학인 '관념론'에 기반한다.

근대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법에 의한 이성적 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고 계몽주의 사상에서 발전된 시민법은 대륙법의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천부 인권 원칙으로 범죄자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하며, 교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4. 대학에서 법학이 일찍부터 가르쳐졌고, 법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법이 발전되어 왔다.

실무중심의 법학이기보다는 이론 중심의 법학으로 발전하여 왔다.


5. 가중주의 : 상상적 경합을 적용하여 하나의 행위로 여러 죄가 발생했을 때는 그중 가장 무거운 범죄의 형량만을 채택하고 가중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법에 적시되어 있을 때 한해 가중 처벌한다.

예) 거리에서 총을 쏘아 사람을 죽이고 주택과 차량에 피해를 입힌 경우

대륙법 : 살인죄 + 재물손괴죄 + 총기 소지죄 중 상상적 경합범 관계 성립으로 살인죄로만 처벌 (다른 죄목은 살인죄로 흡수)


(*경합범 :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둘 이상의 죄를 범한 경우나, 혹은 그 죄를 경합범(競合犯)이라고 한다.

판결이 확정된 죄와 그 판결이 확정되기 이전에 범한 죄 사이에도 경합범 관계가 성립한다.

경합범의 종류에는 실체적 경합범과 상상적 경합범이 있는데, 실체적 경합범은 복수의 죄를 지었을 경우를 말하며, 상상적 경합범은 한 번의 행위가 복수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형법은 실체적 경합범에 대하여는 가중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흡수주의와 병과주의를 가미하고 있고, 상상적 경합범에 대하여는 흡수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영미법이란?


1. 영미법은 영국에서 발생하여 영국, 미국 등 영어를 쓰는 나라와 홍콩, 싱가포르, 몰타, 호주, 뉴질랜드 등 영국 식민지 국가로 퍼져나간 법문이 작성되지 않은 불문법형식의 법체계이다.

불문법이란 관습법(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누구나 '그러하다'라고 인정하는 것), 판례법(법원에서 재판이 확정된 후 나온 결과) 등과 같이 관습이나, 판례라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 법을 뜻한다.


2. 영미법에서의 법이란 그 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등이 조화롭게 실천되어 가도록 하는 사회의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한다.


3. 로크, 벤담, 듀이의 철학자들이 발달시킨 '경험론', '경험주의, 실용주의, 공리주의'에 기반한다.

영미법은 각각의 상황과 개별적 사례에서 '최선의 옳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판결을 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엄벌주의를 채택한다.


4. 영미에서는 재판을 통해서 법이 발전되어 왔으며, 법학자가 아니라 실무에 종사한 법조인이 중심이 되어 법이 발전되어 왔다.


5. 병과주의 : 범죄의 형량을 더하거나 곱한다.

예) 거리에서 총을 쏘아 사람을 죽이고 주택과 차량에 피해를 입힌 경우

영미법 : 살인죄 + 재물손괴죄 + 총기소지죄 (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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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리나라의 법도 영미법 특히 미국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법의 체계가 매우 복잡 다양화되었다.

하지만 상상적 경합범에 대하여는 흡수주의를 인정하고 범죄자의 인권도 존중하며,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대륙법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법체계에서는 미국처럼 수백 년에서 수천 년 형량이 나오지는 않는다.


100년형의 징역형이나 3,000년형의 징역형 두 가지 차이는 실제로는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합당한 처벌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고 줄이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는 어떤 것일까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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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 범죄의 흉악범, 음주운전, 아동 성폭행과 같은 범죄들이 이슈화되고 기대치에 못 미치는 판결들이 나올 때마다 처벌을 강화하라는 여론이 강하게 대두된다.

범죄자의 사회 복귀나 재사회화를 지원하기보다는 오히려 사회 복귀를 저지하고 죗값을 치르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영미법의 엄벌주의가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시민들의 강력한 처벌 요구 등으로 다른 국가들의 형법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법정 형량은 상대적으로 무거워졌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기징역 상한의 경우 우리나라의 형벌 수준은 가중을 포함해 최대 50년으로, 독일(15년), 영국/스위스/오스트리아/네덜란드/대만(20년), 이탈리아(24년), 프랑스/일본(30년), 스페인(40년) 등 대부분의 나라보다 엄하다.

선진국 중 우리나라보다 전반적인 형벌 수준이 높은 나라는 미국과 싱가포르 정도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직까지는 형벌이 무거워졌다고 범죄가 줄었다는 유의미한 통계적 결과는 없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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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율을 낮추는 것은 엄벌주의보단 죄를 범한 자는 반드시 처벌되어야만 한다고 하는 필벌주의가 오히려 효과적일 것이다.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던 기업가, 재벌가, 정치가와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의 양형도 반드시 동일 기준의 엄격한 필벌주의를 적용해야만 할 것이다.

처벌의 공정성이 확보되어야지만 특권 계층의 특권으로 인한 법원과 일반 국민들의 의식 사이의 괴리도 없어지게 될 것이다.


몇년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원작자인 서울중앙지방법원 문유석 판사도 '판사유감'이라는 책에서 범죄율을 낮추는데 보다 효과적인 것은 오히려 필벌주의라고 역설한다.

범죄를 저질러 처벌받을 확률이 높다면 충동적 범죄를 제외한 일반 범죄의 범죄율은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다.


물론, 그가 걱정하는 부분도 있다.

'필벌주의'는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규칙을 완벽하게 준수하며 산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범죄를 완벽히 적발해 내 벌하는 사회는 엄격한 통제사회가 될 확률이 높다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그가 지적한 엄격한 통제 사회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시계태엽장치 오렌지’와 그 무렵 인기 있었던 ‘데쓰노트’라는 만화를 예로 든 것으로 현실에서도 동일한 통제 사회가 될 거라고 하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반론으로, 벤담은 개인이 모든 영역에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고 주장했는데, 범죄를 저지르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도 치밀한 계산이 개입된다고 했다.

범죄로 인한 이득이 비용(처벌 등)보다 크면 범죄를 저지르고, 반대의 경우에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범죄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했다.

엄격한 필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범죄의 발생이 줄 수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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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잠깐 동안 4개월 정도 법 공부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는 취업 준비하던 시기였는데, 무역회사로 진로를 잡고 그에 대비해 영어와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했던 시기였다.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었는지는 기억은 나지 않지만 출입구 관리소 7급 시험 모집을 보고 시험에 준비했었던 것이다.

6개월 남겨놓고 준비를 시작했는데 보통 남들은 2~3년 남겨놓고 준비하던 시험이었다.

시험도 2~3년에 한 번씩 비정기적으로 있었다.

10여 과목 중 당락을 결정하는 과목이 외국어 2과목과 윤리(정해진 범위가 없던 과목)여서 남들은 어려워하던 외국어 2과목의 공략에 자신이 있었기에 준비했었다.

법 과목은 점수 과목이었었다.

6개월 중 4개월 정도 공부해 보니 너무 오만 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던 것이다.

마침 전부터 눈여겨봤던 무역회사에서 경력직 직원을 모집하길래 이력서 내고 바로 입사하면서 시험은 접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부했던 법 공부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법하면 흔히 생각하듯이 법 조항만 달달 외우는 암기과목으로만 알았는데 법 이론이란 것이 너무 흥미로웠다.

동일한 사건을 놓고서도 대륙법 입장에서 볼 땐 유죄였던 게 영미법 입장에서 해석하면 무죄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던 건 당연하다.

유죄와 무죄 완전히 반대의 판결이 나오고 그게 양측 각각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하고도 납득이 가는 판결이었다.

그때 느꼈던 흥미로 언젠간 법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말 갖고 있기만 했었다.

그 후 바쁜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핑계로 다신 법에 관한 책을 손에 잡아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법아 다음 생에서는 우리 한번 가까워져 보자꾸나!






참고자료

https://blog.naver.com/getinjuho/70189294081

https://blog.naver.com/aflashofhope/220573156794

https://blog.naver.com/wjdtkd1227/221420690493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974231&memberNo=38212397&vType=VERTICAL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60627&cid=40942&categoryId=31721

https://ko.wikipedia.org/wiki/%EC%A7%95%EC%97%AD%ED%98%95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9061219312766779

https://blog.naver.com/yhstory2007/130023216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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