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의 연세는 작년에 팔순이셨다.
팔순잔치를 해드리기는 해야겠는데 남들 다하는 것처럼 뷔페 같은 곳을 예약하여 하루 잔치해 드리기엔 만족도 측면에서 그리 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안 드렸던 것이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 원하시는 음식으로 가족끼리만 외식하는 것하고, 그것이 아니면 생신 날 때쯤 즈음해서 친척, 어머니 지인분들 다 불러서 뷔페 같은 곳에서 하루 잔치해 드리는 것, 두 가지 안으로 제안을 드렸다.
어머니의 선택은 첫 번째 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회성 잔치 한 번보다는 팔순 한 해 동안 매달 정기적으로 기대되는 파티 느낌의 열두 번의 맛집 외식이 더 당기셨을 것이다.
첫 번째 달 외식 때 생전에 제일 맛있게 드셨다고 생각되는 음식, 다시 드시고 싶으신 음식을 여쭤보니 랍스터라고 하신다.
평촌에 그럴듯한 캐나다 랍스터점이 검색되어져 그곳으로 향했다.
깨끗하고 나름 품격 있는 랍스터 식당이었으나 식사 후 어머니의 촌평은 그저 그렇다고 하신다.
20여 년 전쯤에 친구분들과 캐나다를 함께 여행한 적이 있으셨고, 웅장한 나이아가라 폭포를 감상하시면서 드셨던 추억이 가미된 그때의 랍스터와는 너무 비교가 안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랍스터의 크기 차이도 많이 났다고 하신다.
캐나다 현지 것이 아무래도 제대로 큰 거 같다.
두 번째 달 외식은 양촌리 한우, 세 번째 달 외식은 안양에서 나름 유명한 봉가진 한정식, 네 번째 달 외식은 안양유원지 장어구이 등등 그때마다 원하시는 음식으로 맛집 외식을 했다.
덕분에 내가 호강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몇 개월 전부터 위쪽 전체 치아 상태가 안 좋아서 어머니가 식사를 힘들어하신다.
생물학적 연세가 팔십이 넘었으니 치아건강이 안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래전에 하셨던 위쪽 앞니 치아브릿지 상태가 제 수명을 다 해가고, 주변 치아들도 흔들거린다고 하신다.
노인에게 있어서 치아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치아 상실로 음식을 잘 씹지 못하게 되면 영양실조의 위험, 치매 연관성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말 그대로 대공사가 필요할 것 같았다.
돈 걱정하시며 안 하시겠다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임플란트 틀니에 부분틀니를 함께해 저작에 문제없게 대공사를 하기로 했다.
남은 인생, 음식 맛있게 마음껏 드시는 게 복된 건데 왜 마다하려고 하시냐면서, 나중에는 진작에 했었어야 했는데 왜 늦게 했을까 그러면서 후회하실 것이라는 말도 덧붙여 설득했다.
인간은 하루 세 끼의 식사를 한다.
일 년이면 1,095끼, 십 년이면 대략 잡아 일만 끼, 백 년이면 10만 끼가 된다.
지금은 백세시대라고 하니까 매끼 빠지지 않고 식사한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평생 십만 끼의 식사를 하게 된다.
물론 하루 한두 끼만 먹는 사람은 예외이겠지만...
운 좋아서 무탈하게 백 세 인생을 채울 수 있다면 어머니는 2만 끼 정도, 나의 경우는 4만 몇천 끼 정도는 더 식사 기회가 있을 것이다.
간혹 다른 사람들과 식사 시 딱히 내가 원치 않는 메뉴가 선택되어지는 일도 있다.
그럴 때는 인생 식사 10만 끼 중 한 끼 정도야 배려 차원에서 양보할 수도 있지라고 여긴다.
남은 식사 기회가 4만 몇천 끼 정도 남았고, 갈수록 줄어가니까 이젠 내가 원하는 메뉴를 전투적으로 고집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언뜻 든다.
식도락(食道樂)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여러 가지 음식을 두루 맛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일을 식도락이라 한다.
식도락이란 것이 매번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인생에서 10만 번의 식도락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산다.
그 십만 번의 기회 중 지금까지 살면서 느꼈던 식도락이 몇 번이나 될까?
더불어서 살면서 마셨던 술은 얼마나 될까? 소주로 치면, 막걸리로 치면, 맥주로 치면 몇 트럭분이나 될까? 몇 박스나 될까?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죽기 전에 한 끼만 먹을 수 있다면 어떤 음식을 선택하겠냐는 물음에 답변이 되는 음식이 어떤 이에게는 진정한 식도락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일 것이다.
투뿔 한우, T-본 스테이크, 랍스터나 킹크랩 정도가 답변으로 생각날 것이고 어쩌다가 라면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먹는 즐거움에 빠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되도록이면 자주 먹는 즐거움에 빠지고 싶다.
남은 어머니의 2만 끼 중에서도 나의 4만 몇천 끼 중에서도 식도락의 행운이 더욱 자주 찾아와주길 원한다.
당연하겠지만, 먹는 즐거움을 넘어서서 지나치게 먹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현대인은 너무 지나치게 먹어서 건강을 위협하는 경향이 있다.
식도락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과식이나 폭식하는 버릇은 고치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지나친 영양과다로 자칫 잘못하면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혈관질환, 이상지질혈증 등 질병을 안고 살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예산 사는 동생 집에 어머니를 모시고 다녀왔다.
동생네 내외와 두 조카는 갈비며 새우며 생선회며 다양하게 상차림을 준비했고 술이 함께하는 유쾌한 식사를 했다.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식사였다.
좋은 음식은 사랑의 힘을 더 강하게 한다.
제수씨가 많이 애쓰셨다.
저녁식사 끝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핸드폰의 배달앱을 켜서 망고빙수를 시키고 그리고 한 시간 정도 더 지난 후 소머리국밥을 시킨다.
조금은 걱정되는 부분이 생긴다.
동생은 사회생활의 스트레스를 술과 음식으로 푸는 것 같다.
원래 동생의 어렸을 때 체형은 쇠꼬챙이처럼 비쩍 마른 형이었다.
그러던 것이 나이를 훌쩍 먹다 보니 아래 배가 불쑥 튀어나와서 위쪽 동네의 국무위원장 코스프레를 하는 듯이 보였다.
친형의 입장으로서 하루에 적어도 30분 이상은 걷기 등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좀 하라는 잔소리를 빼놓을 수 없었다.
얼마 전에 인천의 한 기초 자치단체가 100번째 생일을 맞은 어르신들에게 1인당 100만 원의 장수축하금을 개인 명의 계좌로 지급했다고 한다.
인천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장수축하금 100만 원을 지급하는 지자체는 꽤 여러 곳이 있다.
우리 어머니도 일생 10만 끼 식사를 다 채우시고 그런 이벤트의 혜택을 받아보시길 소원해 본다.
일생 10만 끼 식사, 나 역시도, 동생 내외도 다 채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