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전히 사당역 13번 출구 근방.
1차로는 끝나지는 않는다. 선수가 선수들이니까
2차로 실내 포차에 자리 잡았다.
오늘은 성훈이와 종호, 은정, 일하와 나까지 다섯이 함께하고 있다.
흡사 독립운동을 함께 했을 친구들이 그러하듯이 동지적 관계의 특별한 친구들이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좋은, 앞으로도 평생 볼 연놈들 중 몇몇이다.
인생에서 기본과 원칙, 상식의 가치를 중시하는 내 친구들이 난 너무도 좋다.
그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더욱더 좋다.
주말의 술자리는 언제든 그렇듯이 한번 이어진 술자리는 웬만해서 쉽게 안 끝난다.
2차든 3차든 귀소본능에 이끌려 각자의 집들로 자연 해산하기까지 쭈욱 계속된다.
참으로 함께할 말들도 많은 친구들이다.
술잔에 술을 따르며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는 명확한 기억은 없지만 우리 친구들이 대체적으로 실제 나이들보다 다들 젊어 보인다는 얘기가 나왔다.
듣기도 좋게 콕 집어서 특히 내가 많이 어리고 젊어 보인다고 한다.
살며시 입꼬리가 올라가지며 당연히 모두가 사실로 받아들여지도록 슬슬 썰을 풀기 시작한다.
"이제 와서 밝히는 얘기지만 난 사실 이곳 족속이 아니야, 내가 좀 어려 보이는 것은 원래 우리 족속들이 나이를 잘 안 먹어서 좀 어려 보여, 여기 나이로 치면 내 나이는 칠백이 좀 넘을걸
내 고향은 저기 안드로메다 너머 밖으로메다 소혹성 B612호 옆 B613호야"
순간 예전에 재미있게 봤었던 <별에서 온 그대>와 <도깨비>가 동시에 생각나면서 두 드라마를 모티브로 한 썰이 설정되었다.
이 인간이 뭔 소리를 하나 다들 눈만 껌뻑껌뻑거린다.
"칠백여 년 전쯤 내가 이 땅에 와서 처음 사귀었던 친구가 정도전이었어.
여말선초의 격정기 때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꿈이 참으로 컸던 친구였지
정도전은 평소 취중에 한나라 고조가 장자방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이용하였다고 했지 그 말은 결국 자신이 이성계를 이용했다는 거였어.
정도전은 조선이 유교적 이상을 담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꾀하는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꿈꾸었어.
서울이 유교적 이상을 담은 곳으로 자리 잡도록 현재의 경복궁 및 도성 자리도 정도전이 정하였고, 각 성문의 이름과 한성부의 5부 52방 이름도 지었지, 수도 건설 공사의 총책임자였어.
조선경국전도 지어 조선의 통치 규범을 제시했고, 참으로 여러모로 대단했던 친구였지. 그 친구를 못 잊어서 지금도 내가 사는 동네가 안양 박달동 삼봉마을이잖아."
"정도전에 이어 두 번째로 가까웠던 친구가 김종서였어.
김종서는 학문이면 학문, 지략이면 지략에 무인적 기상까지 해서 당시 대호(大虎)라는 별명을 듣기에 족하였던 친구였는데 단종을 지키려다가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일파에게 변을 당한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지.
6진을 개척했을 당시 함께 말 타고 동북 면 일대를 휩쓸고 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해서 김종서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너무도 마음 아팠었어. 내가 지켜줄 수도 있었는데...
정벌, 개척하니 세종 때 이종무도 생각나네. 이종무하고 같이 대마도 정벌도 함께 했었거든.
그때 대마도를 복속시켰어야 했는데, 대마도는 원래 그 토지가 협소하고 척박해서 식량을 밖에서 구해야 생활이 유지되므로 복속, 지배가 쉽지가 않았어.
조선 본토에서 주민을 이주시켜야 하고 식량을 항상 조선에서부터 공급해야 하는 등 실효 지배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있어서 아쉽지만, 그냥 철군해야 했었지.
오늘날에 와서야 그리도 아쉬울 줄이야"
"그러고 보니 공부 잘하던 머리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었어.
친했던 정도전을 통해 포은 정몽주하고도 사귀었고 그들의 스승이었던 목은 이색하고도 교류하였고, 목은의 또 다른 제자 야은 길재도 잘 알고 지냈지.
어쩌다 조선 건국을 반대했던 고려 3은 하곤 막역한 사이였었군.
길재 같은 경우는 나한테 아저씨 아저씨 하면서 어려서부터 잘 따랐었는데...
한 번은 말 한 필 내주고 개경으로 심부름 보냈더니,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보니 어쩌고 하는 시조를 지었더라고 그 시조가 현대에 와서 교과서에 수록될 줄이야"
"하여튼 길재의 제자 김숙자와 그 아들 김종직으로부터 사림이 시작되니 조선 건국을 반대했던 길재가 사림의 시초였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사림의 영수라 불리었던 김종직의 제자들인 정여창, 김굉필, 김일손 등으로 학풍이 이어지고 김굉필의 제자인 조광조까지 그 학맥이 이어지지, 나한텐 다 좋은 친구들이었었어..
김종직은 살아생전 학자적 존경과 관료로서의 명예까지 모든 것을 누렸으나, 사관(史官)으로 있었던 제자 김일손이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수록하였고 이로 인해 연산군 때 부관참시를 당했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는 이유로.
김종직이 실로 부러웠었던 건 55세 때 처녀장가를 갔는데 그 부인이 18세였다는 거지. 진짜로 부러웠었어 "
"조선 후기 때가 되어서는 실학자들을 사귀었어
특별히 가까웠던 친구가 박지원이었는데 이 친구도 어려서부터 상당히 영특해서 과거시험 1차에 장원을 2차 시험에서는 호기롭게 백지를 제출했었지
자기는 학문에 뜻이 있고 벼슬길에는 초연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었나... 그 이후 여러 번 낙방을 거듭하다 결국 과거 시험을 단념하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했었지.
그러다가 친척 형을 따라서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연에 참석하는 사신의 일원으로 동행, 중국 연경을 지나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장지인 열하까지 기행한 기록을 담았지.
그때 나도 마찬가지로 동행했었고, 이게 그 유명한 열하일기인데 중국의 역사, 지리, 풍속, 토목, 건축, 선박, 의학, 인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문학, 예술, 지리, 천문 등에 걸쳐 수록되지 않은 분야가 없을 만큼 광범위하고 상세히 기술되어 있지.
경치나 풍물 등을 단순히 묘사한 데 그치지 않고 이용후생 면에 중점을 두어 수많은 연행록(燕行錄) 중에서도 백미에 손꼽혔는데 책을 기술할 때 실제로 내가 많은 도움을 보태서 은근 공저를 기대했었었어.
근데 저자로 자기 이름만 올렸더라고 그래서 좀 서운한 맘이 있던 친구야..."
"박지원 이후에 알게 된 친구가 정약용인데 이 친구도 물건이었지.
규장각에서 정조의 총애를 받아 공부하였던 똑똑한 친구였어.
정조의 수원 화성 행차를 위해 한강에 배와 뗏목을 잇대어 매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배다리를 만들어 정조를 기쁘게 했고, 수원 화성 설계에 참여하여 거중기를 활용하였지.
그때 그 거중기는 내가 우리별에 있을 때 박물관에서 봤었던 기중기를 살짝 알려주었던 것인데 기중기를 흉내 낸 거중기를 이용해 수원성을 2년 반 만에 완공시켰지.
그때 사용한 거중기가 딱 1대였었는데 한 두대 더 만들었었으면 수원성 완공이 더 빨라졌었겠지.
그러다 정조 사후 천주교 박해에 연루되어 18년간의 귀향길에 올랐어.
전라도 강진 등지에서의 귀향 생활 동안 1표 2서(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를 비롯한 500여 권에 이르는 엄청난 저술을 남겼어.
이 저술들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고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을 주장했지.
참으로 학문의 깊이가 헤아릴 수조차 없었던 친구였지"
"내가 꼭 양반 귀족들하고만 사귀었던 건 아니야.
장영실 같은 관노하고도 사귀었고, 허준, 이덕무, 박제가 같은 서자 출신 친구들도 있었고, 사상의학으로 유명한 이제마는 서자도 아닌 얼자 출신이었어.
오늘날에는 너희들 같은 불가촉천민들 하고도 친구하고 있잖아."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어왔는데 그게 나를 참으로 힘들게 해왔어.
진실로 소중하고 더없이 귀한 그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둘 내 곁을 떠나더라고, 죽음이라는 이름의 이별이었지.
너희들도 역시 어느 순간 내 곁에서 사라져가겠지..
칠백여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고, 그런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슬퍼지려고 한다.
자! 너희들의 불로장생을 위해 한잔하자, 오래들 살아라~"
유난히 썰이 길어진 오늘 술자리.
술자리에서의 이러한 농지거리 하나하나가 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뇌의 기억회로의 한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함께 술을 마시며,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거, 행복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은 이렇게 형성되는 건가 보다.
참고자료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9445&cid=59015&categoryId=59015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7564&cid=59015&categoryId=59015
http://www.ksmnews.co.kr/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321&idx=11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