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과 남북한이 전쟁나면?
임시공휴일인 1월 27일 오래된 친구들과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저와 동기인 이종호, 1년 선배인 정기호 형, 2년 선배인 김만열 형, 김세윤 형이 소하동 만열이 형 집에서 모였습니다.
저희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알아 온 40여 년 지기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만들었던 <흥사단>의 산하 단체인 아카데미에서 만난 사이들입니다.
아카데미는 엘리트 양성을 목적으로 서울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해서 매주 토요일 오후 대학로에 있던 흥사단에서 모임을 갖고 독서토론과 주제 토론을 했던 학생운동 모임이었습니다.
정의돈수(情誼頓修, 정을 서로 주고받는 것도 갈고닦아야 한다)를 강조했던 안창호 선생의 유지대로 아카데미가 배출한 선후배들과는 오랜 기간 돈독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저와 동기인 이종호, 이성훈과 만열이 형, 네사람은 특히 가까웠습니다. 다른 선후배들로부터 <그 무리들>이란 질시 어린 뉘앙스로 불리곤 했습니다.
성훈이는 다음 날 새벽 동생들과 국립현충원에 계신 아버님을 찾기 위해 이날 오지 못했습니다.
"석원이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냐?" 정직하고 원리원칙을 중시하며, 약간은 귀여운 고지식한 면이 있는, 선비풍의 기호 형이 제게 묻습니다.
"네. 아주 잘 지내고 있죠. 매일같이 50분씩 열심히 걷기 운동하고 있고요. 일주일에 300분은 채우려고 해요. 매일같이 글을 쓰고, 이주일에 책을 천페이지는 읽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5~6일에 한 번 정도 브런치에다 산문을 쓰고 있고요. 시시때때로 소설을 쓰고 있어요. 요즘에는 20대 때 연애를 소재로 해서 50대까지의 인생을 다루고 있어요. 20대 때는 제 개인 경험이고요. 20대 때 만났던 여자애하고 저하고, 서로 간에 단 한 번도 좋아한다거나 고백도 대시도 없이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어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같이 하루 종일 같이 있었거든요. 뭐. 천년의 사랑이었다고나 할까. 그 사랑 이야기에 주변 인물들을 각색할 예정이예요. 역사소설을 쓰는 친구 하나 하고, 고도 적응형 알코올중독자하고,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는 주정을 부리는 일도 없고 사회생활도 원만히 해나가지만 실제로는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을 일컬어요. 그리고 끊임없이 여색을 밝혀 바람이 생활화된 친구들의 인생을 다룰 예정입니다. 그 글을 끝내면 역사 소설을 쓰고 싶어요. 원래는 경성 쌍권총 김상옥에 대한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이미 김상옥에 대한 소설이 두권이나 나와 있더라구요."
1대 1000 김상옥에 대해서는 전에 만열 형과 종호에게는 얘기한 적이 있어 두 사람을 쳐다보며 새로운 계획을 얘기해 봅니다.
"그래서 박승유에 대해서 그분의 일대기를 소설로 써보려고요. 박승유의 할아버지는 을사5적이자 경술 국적이었던 매국노였고, 할아버지의 친일에 죄책감을 느껴 독립운동가가 됩니다. 그 박승유의 일대기를 써보려고요. 그 이후에는 대하소설을 써 보고 싶어요."
"어떤 대하소설?" 기호 형이 묻습니다.
"우리나라 격변기 때를 배경으로 한 소설요. 1907년 정미년에 우리나라 군대가 해산을 당하잖아요. 그때 대한제국군 박승환 참령이 유서를 쓰고 대한제국 만세를 외친 후 권총으로 자결했어요. 참령은 오늘날의 소령 계급입니다. 참령의 자결 소식에 격분한 장병들이 일본군과 남대문에서 교전을 벌였어요. 하지만 화력 차이로 패하게 됩니다. 당시 대한제국 장병이 사용했던 소총은 수동 장전 방식인 볼트액션 소총이었고, 일본군은 기관총을 배치했습니다. 압도적인 화력 차이였죠. 그때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이 됩니다. 그래서 대한제국 시대의 대표적인 의병 중 하나인 정미의병이 생겨난거죠.
을미사변 이후의 을미의병, 을사늑약 때의 을사의병, 군대해산 때의 정미의병, 뒤이은 13도 창의군까지가 한일합방 이전과 이후에 외세 침략에 저항한 의병 활동들을 이어가죠. 이 의병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게 독립군, 광복군이죠. 1919년 삼일운동은 많은 희생을 가져왔고, 그 희생을 교훈 삼아 1920년 이후는 만주, 간도로 넘어가면서 무력투쟁의 길로 갔죠. 잘 알다시피 1920년 봉오동 전투를 필두로 청산리 전투 등 본격적인 무장 항쟁으로 이어졌어요. 봉오동 전투는 독립 전쟁 사상 우리가 일본을 상대로 정규전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전투였죠. 봉오동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은 만주 관동군 등 대규모 정규군을 간도로 파견해서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민간인을 4천 명 가까이 학살한 간도참변을 일으켰어요. 잔악무도했죠.
1920년대에 들어서는 사회주의가 급속히 확산되어 독립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로 인해 독립운동은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분화되었어요.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혼재하게 된 거죠. 그렇게 20년대와 30년대의 무장투쟁을 거쳐 45년에 해방을 맞고 그 이후 좌우 이념대립의 시대가 되었죠. 대한제국 시대의 의병들부터 6 · 25 때까지의 격변의 역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설로 그려보고 싶어요. 한 사람의 시각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경험한 그런 역사를 그리고 싶어요.
원래 대하소설이라는 게 한 사람만 그리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잖아요. 네다섯 사람의 주인공을 내세워 각자의 신념과 의식으로 바라본 각각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은 거죠. 외세 침략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민족의식을 갖게 되는 사람 하나하고,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 사람을 중시하는 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사람, 모든 사람의 평등을 그리는 사회주의자, 계급투쟁을 통한 공산사회를 꿈꾸는 자, 아나키즘을 꿈꾸는 무정부주의자 등 여러 인물들의 시각을 통해서 역사와 살아가는 의미를 조명하고 싶은 거죠."
"조정래의 아리랑과 태백산맥 같은 거네?" 기호형이 묻고 세윤 형이 이어 말합니다.
"민족주의자와 휴머니스트,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까지, 다채로운 시각이네. 잘만 쓰면 관심 끌 만하겠는데." 기호 형과 세윤 형의 관심이 저를 기분 좋게 합니다.
"어제 동생이 와서 둘이 술 무지 마셨는데 오늘도 술이네." 종호를 보며 제가 말했습니다. 종호는 그냥 미소 짓습니다.
"어제 그러더라. 내가 쓴 소설이 뭐 잔뜩 아는체만 했더라고.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썼다고."
"대부분 형제가 다 자라면 뭘 하든 서로 간에 별로 관심없는데, 동생이 1호 독자가 돼준 건 형에 대한 애정이 큰 거지." 대충의 사정을 알고있는 종호가 위로해 줍니다.
지난 11월 어머니 생신 때 동생네가 왔었습니다. 둘만의 술자리에서 브런치에다가 글을 올리고 있고, 얼마 전 30만자짜리 소설을 하나 끝냈다고 하니 동생이 무조건 첫 번째 독자는 자기가 돼야 한다고 해서 USB에 담아놓은 걸 건네주었습니다. 그 소설을 보고 느낀 점, 비평을 동생으로부터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지. 자기가 아는 걸 글로 쓰지 모르는 걸 글로 쓰겠냐고, 그리고 글 쓰는 사람들이 시작은 대부분 자기가 살아왔던 경험을 쓴다고. 그랬더니 동생이 또 그러데. 글이 완전 하루키 풍이고 이문열 풍이라고. 칭찬인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지만. 원래부터 내가 하루키하고 이문열을 좋아했으니 당연하다고." 종호는 여전히 미소만 짓습니다.
사오 년 전쯤 동생과의 둘만의 술자리에서 들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책장에 빽빽하게 책을 채워줬던 게 참으로 고마웠다고 마치 간증하듯이 말했습니다. 찬란했던 청춘의 시대, 용돈이든 어떠한 형태의 수입이든 저에게 돈이 생기면 그중에 50% 정도는 친구와의 술값 등의 유흥비였고 나머지 50% 정도는 음반, 도서 구입비였습니다. 책장에 빽빽하게 채워지는 책들을 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실감되었습니다.
헤르만 헤세부터 카뮈, 카프카, 생텍쥐페리의 작품들, 톨스토이 전집, 이문열, 조정래, 박경리, 조세희, 박범신, 황석영의 작품들, 황지우, 정호승의 시집들이 책장에 채워졌습니다.
동생은 대학 다닐 때 수업에 안 들어가고 거의 도서관에서 책 보면서 지냈다고 했습니다. 그건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업에 안 들어가서 학점에 구멍이 나도 도서관에 가서 보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보았습니다.
그 비싼 대학 등록금을 내면서 엄청 비싼 독서들을 했었던 거 같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두 형제는 똑같이 불효했고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습니다.
"실제로 네가 더 고마워해야 할 건 따로 있는데."
"뭔데?'
"내가 아랫동네 윗동네까지 다 휩쓸어 따놓은 딱지 2만장, 구슬이 천알 있었잖아. 그래서 너는 용돈으로 딱지며 구슬이며 사 본 적이 없잖아. 남자애들 대부분은 용돈을 딱지하고 구슬 사는데 다 쓰는데 넌 그럴 일이 없었으니, 실제로 네 용돈은 내가 준거나 진배없지 않냐?" 내 말에 동생은 그냥 씩 웃었습니다.
40여 년 지기들은 밤새 즐거이 술자리를 했습니다. 포항에 계신 만열 형 누님이 보내주신 과메기가, 김과 배추, 깻잎, 미역이 한쪽에 곱게 쌓여 있습니다. 쪽파와 마늘, 청양고추는 잘게 썰려 알싸한 향을 풍기고, 초장을 담은 작은 종지에서는 새콤달콤한 맛이 입맛을 돋웁니다. 한쪽에는 탱글탱글한 홍어회가 붉은빛을 띠며 정갈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 옆에는 잘 익은 묵은지가 결을 따라 곱게 썰려 있으며, 마지막으로, 기름기 자르르 흐르는 돼지고기 수육이 두툼하게 썰려 접시에 담겨 있습니다. 잘 익은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함께 끓여 만든 묵은지 돼지고기찜도 한옆에 올려져 있습니다. 말 그대로 진수성찬입니다. 역시나 과음의 밤을 보냅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기호 형, 세윤이 형은 집으로 돌아가고 종호와 저 만열이 형은 만두를 빚습니다. 평상시 스마트하면서 음식도 잘하는 종호가 만두 속을 만듭니다. 쥐고추가 청양고추가 아니라 장사꾼에게 속았다고 푸념합니다. 만두를 빚으며 세 사람의 대화 화제는 탄핵소추 중인 윤석열에게로 향합니다.
"참으로 가공스러운 일이야. NLL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하고 지난 10월 평양에 무인기 날려보내고, 오물 풍선 원점 타격 등 북풍공작을 일으켜 국지전 등의 혼란 상태를 야기해 계엄령을 선포하려는 시도는 명백한 외환죄야. 오물 풍선 원점 타격은 합참의장의 거부로 이행되지 않았고, 북의 공격을 유발하는 북풍 공작은 주력부대를 러시아에 파병해 여력 없는 북한의 미 대응으로 별일 없이 지나갔지."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남북한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종호가 약간의 근심을 담아 물었습니다.
"종호야 걱정하지 마라. 전쟁은 절대 안 일어난다. 전쟁 일어나면 김정은은 바로 죽을 수밖에 없어. 지금 세상에서 제일 부자인 김정은이 그 누구도 부럽지않은 김정은이 왜 그 모든 걸 포기할리가 없지."라고 제가 말합니다.
"음. 그런가?"
"응. 그래. 지금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현무 5 미사일이 6천발이 있어. 현무파이브 탄두 중량이 8톤이야. 재래식 미사일 중에서 최대 탄두지. 중국의 둥펑 미사일이 1.5톤에서 최대 2톤이야. 탄두 중량이 현무가 그 네배는 되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면 현무파이브는 바로 평양을 향해 날아가. 현무파이브 20기면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에 맞먹어. 현무파이브가 무서운 게 벙커 버스터(Bunker buster)야. 폭탄으로 지하에 숨어있는 적군의 벙커 등을 무력화하고 특수 구조 강화 지하 구조물을 파괴하지. 현무 4의 관통력이 180M야. 현무파이브면 그 이상이겠지. 벙커 버스터가 무서운 게 인공 지진이 일어나 생명체가 버틸 수 없다는거지. 우리 군과 미군의 정찰기, 인공위성으로 김정은은 항상 파악되지. 김정은이 전쟁을 일으키면 살아나기 힘들어. 게다가 우리나라 특수부대의 참수작전, 707특임대나 HID나 UDT, 그 외 특수부대들이 김정은 멱 따려고 크로스 체크하지. 어떡하든 김정은은 살아날 수 없어."
"그러면 다행이고." 만열 형도 관심을 갖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탱크가 2천 5백대 정도 있어요. 그중에 7군단이 K2전차, K9 자주포가 9백대 정도 돼요. 아파치 헬기도 함께 하고요. 남북간에 전쟁이 나면 이 7군단은 무조건 평양으로 진격해요. 평양 점령이 임무예요. 그래서 방어 개념이 없어요. 그래서 얼마전부터 북한이 휴전선에 방벽을 세우고 있잖아요.
K2전차는 이동 간에 정밀 포격이 가능해요. 북한의 M2020이나 선군 915는 어렵죠. 북한 탱크 수가 우리보다 두세배는 많아도 실전에서 붙으면 상대가 안 되죠. 최신형인 북한 M2020은 3세대 전차고, K2는 3.5세대 전차입니다. 육해공 물량은 북한군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개전되면 북한 공군은 30분을 못버티고 해군은 반나절을 못 버텨요. 국력의 차이가 벌어질 대로 벌어져서요."
남북한의 국방비를 비교해 보면 1990년 남한 국방비는 약 93억 달러였고 북한은 약 50억 달러였습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세 배 가까이 차이가 나고 해마다 갈수록 큰 폭으로 차이가 났습니다. 2010년 기준 남한의 국방비는 255억7천만 달러로 북한의 8억1천만 달러의 32배에 달했습니다. 물론 한국군의 경우 급여가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합니다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방예산의 차이는 큽니다.
북한군은 현재 전면전으로는 한국군을 이기는 것은 확실히 불가능합니다. 현재 북한군의 기존 재래식 전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남한군에게 어지간한 피해조차도 주기 어려울 지경이고 그 격차는 갈수록 벌어져 갑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북한은 핵무기, 장사정포, 생화학무기, 잠수함, 특수부대 등의 비대칭 전력에 집착하게 됩니다. 비대칭 전력은 적대적인 두 국가 가운데 한쪽은 보유하고 다른 쪽은 보유하지 못한 전력을 말합니다.
통상적인 전쟁에서 극복할 수 없는 무력의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보유한 전력을 말합니다. 비대칭 전력에 몰두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북한한테는 가장 효율적인 국방 운용일 겁니다. 적은 비용으로 국방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 비대칭 전력을 감당해 주는 것이 바로 미군의 역할입니다. 주한미군은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 미군 철수를 반대합니다.
"몇 년 전에 서초동에 있던 정보사가 우리 집 삼사백미터 옆으로 이사 왔어요. 전쟁 나면 우리 중에서 제가 제일 먼저 죽겠죠. 정보사로 포탄이 빗발칠 테니까요. 하지만 전 전쟁은 안 터질 거라 굳게 믿고 안심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정은 지 목숨 아까워서, 원래 독재자들이 자기 목숨을 제일 소중하게 여기잖아요."
세 사람은 계속해서 만두를 빚었습니다. 만열 형이 포항 누님 집에 가져갈 거라 해서 많이 빚었습니다.
만열 형네 냉장고에는 김치가 참으로 많습니다. 포항 누님이 만들어 보내주시는 김치하고, 사회생활에서 알게 된 동생이 해마다 김장 김치를 해서 보내준다고 합니다.
"그 후배. 형한테 무슨 약점 잡혔어요?" 웃자고 제가 한 농담입니다. 종호와 저는 그 김치들을 지져 먹으려고 잔뜩 퍼옵니다. 측은지심이 충만한 그래서 퍼주기 좋아하는 만열 형은 웃으며 김치를 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