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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의 양자역학




한강의 장편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남로당의 지휘를 받는 빨치산 조직의 진압 과정에서 제주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합니다.

그 당시 경찰도 아닌 서북청년단이라는 괴뢰 단체가 제주에 내려와 양민 학살을 주도합니다.

그들은 북에서 재산과 가족을 잃은 청년들이고, 남한에서 공산당과 관계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 악랄하게 남한 사람들을 학살하는 조직이었습니다.

1948년 제주도에서는 좌익과 우익 간 과도한 무력 충돌이 일어났으며 좌익 세력과 그들의 가족까지 포함해 무고한 제주도민 약 3만여 명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이 작품은 역사적 아픔과 개인의 치유 과정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합니다.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직시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감정과 갈등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랐습니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 경하는 어느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쓰며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책을 출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꿈을 꿉니다.

눈 내리는 벌판에 검은색 통나무 수천 그루가 묘비처럼 심어져 있습니다. 마치 묘지같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발등까지 바닷물이 밀려 들어옵니다.

경하는 무덤이 모두 바다에 쓸려 버리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어떠한 조치도 하지 못한 채 꿈에서 깨어납니다.




경하는 4년간 지속되고 있는 이 악몽 때문에 잠을 깊이 이루지 못합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그 도시의 학살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기까지 했습니다. 이젠 뭐가 꿈이고 뭐가 생시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상하게도 경하는 그 사건이 전하는 알 수 없는 영향력에 사로잡혀 지내게 됩니다. 먹고 자고 숨 쉬는 아주 일상적인 것조차 힘겨워진 경하는 종종 유서를 쓰곤 합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경하의 마음과 다르게 유서는 마음에 들게 써지지 않습니다.

작별인사가 마음에 들지않아 죽음을 유보하고 있던 즈음, 친구 인선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병원으로 와달라는 짧은 메시지입니다.




인선은 한때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제주로 내려간 20년지기 친구입니다. 그곳에서 하던 일을 접고 목공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경하가 제안했던 꿈과 관련된 영상을 위한 목공 일이었습니다. 경하는 작업을 취소하자고 했습니다만 인선은 혼자 작업을 진행합니다)

몇 해 전 경하는 자신의 꿈과 관련된 작업을 영상으로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몇해가 지나도록 서로 힘든 시기를 겪느라 작업에 진척이 없었습니다.

서울과 제주라는 물리적 거리가 생기고 나서부터 연락도 뜸해졌습니다.



12월 영하의 날씨에 눈을 맞으며 병원으로 찾아간 경하 앞에는 잘린 두 손가락을 봉합한 인선이 있습니다.(나중에 경하는 인선의 목공방 바닥에 마른 핏자국을 보며 인선이 사고를 당한 상황을 짐작하게 됩니다)

피가 엉겨 붙어 있는 두 손가락은 붕대에 감겨 있지 않았습니다. 잘린 신경이 죽지 않게 하려면 앞으로 3주 동안 손가락의 봉합 부분을 3분에 한 번씩 바늘로 찔러서 피를 내고 통증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인선은 그 고통이 끔찍해서 차라리 손가락을 포기하려 했지만, 포기하면 도리어 환지통이 평생 남아 더는 손을 쓸 수 없게 될 거라는 의사의 말에 할 수 없이 통증을 참아 냅니다.

인선이 갑자기 경하에게 연락했던 건 위로가 필요하거나 병원 업무처리를 부탁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인선은 경하에게 제주도에 있는 자기 집에 가서 자신이 키우던 앵무새인 아마를 돌봐달라고 부탁합니다.

갑작스러운 인선의 부탁에 당황스러웠지만, 인선의 부탁이 마치 명령처럼 너무도 단호하고 진지했기에 경하는 인선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서둘러 제주로 향합니다.



제주에 도착했지만 폭설과 강풍으로 인해 비행기와 모든 차편이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암담한 상황을 겪게 된 경하는 설상가상으로 고질적인 두통에 시달리며 가까스로 마지막 버스를 타고 인선의 마을로 향합니다.

산간지역에 있는 인선의 집은 마을에서도 외떨어져 있기 때문에 마을 정류장에 도착하더라도 최소한 30분은 더 걸어서 들어가야 합니다.



인선의 집을 찾아가면서 경하는 인선이 예전에 들려줬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인선의 엄마는 늦은 나이에 인선을 낳았고 이른 나이에 남편을 잃었습니다.

사춘기 무렵 인선은 가출했습니다. 옛날식으로 틀어 올린 하얗게 센 머리의 엄마, 무슨 벌을 받는 사람처럼 구부정한 걸음걸이가 답답했고 점점 미움이 커져 엄마가 갑자기 못 견디게 싫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며칠만에 살얼음 위로 얇게 쌓여있던 축대에서 미끄러져 오미티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해 정신을 잃었습니다. 열흘 만에 의식을 되찾았을 때, 인선의 엄마는 어둠 속에서 새까맣게 눈을 빛내며 인선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다친 걸 병원에서 연락이 오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고. 꿈을 꿨다고. 다섯살 모습의 인선이 눈밭에 앉아있었는데 인선의 뺨에 내려앉은 눈이 이상하게 녹지를 않더라고.

따뜻한 애기 얼굴에 왜 눈이 안녹고 그대로 있나 싶어서 꿈속인데도 몸이 덜덜 떨릴 만큼 무서웠다고. 퇴원해서 엄마와 함께 돌아간 밤, 인선의 엄마는 인선의 손목을 꼭 붙잡고 또 한 번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엔 꿈이 아닌 그 꿈이 기원한 생시 이야기를.



엄마가 국민학교 졸업반이던 때였습니다. 엄마가 엄마의 언니와 함께 당숙내로 심부름을 갔던 동안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마을로 돌아온 두 자매는 가족의 시신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포개지고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했습니다.

눈 때문에 알아볼 수가 없어서 이모가 손수건으로 죽은 사람들의 얼굴에 얼어있던 얇게 덮인 눈을 닦아내면 엄마가 죽은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그날 똑똑히 알았다고 합니다.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 뺨에 눈이 쌓이고 피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엄마의 그 이야기는 인선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뼛속까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저 조용하고 슬픈 할머니의 모습이기만 했던 엄마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던 겁니다. 그리고는 엄마에 대한 견딜 수 없었던 미움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경하는 전에 와 봤던 기억을 더듬으며 인선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한참 버스를 기다리는데 극심한 두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경하는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심한 두통과 위경련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있는 인선에게 집에 못 갈 것 같다고 전화를 하는데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소란이 들려왔습니다. 인선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습니다.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된 경하는 아픈 몸을 참으며 일단 인선의 집으로 향하기로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인선의 집에 도착했지만 새는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경하는 조심스레 새를 나무 아래에 묻어줍니다.

경하는 인선의 예전 다큐에서 인선이 인터뷰했던 내용을 떠올립니다. 인선의 아버지는 인선이 어렸을 때, 집 근처 동굴 속으로 인선을 데려가 자주 숨곤 했습니다.

4.3사건 당시 동굴에서 몸을 피했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나타난 행동이었습니다. 소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인선의 말을 통해, 인선의 가족이 겪었던 깊은 고통이 드러납니다.



눈이 많이 내려 인선의 집은 전기가 끊기고 단수가 됩니다. 경하는 추운 침실에서 악몽을 꾸며 한참 동안 잠을 자고 일어납니다. 일어났더니 어제 죽었던 아마가 살아있었습니다.

경하는 새의 혼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리고 작업실에서는 인선이 나타납니다. 경하는 자신이 혼인 것인지 인선이 혼인 것인지 헷갈립니다.

인선은 경하에게 함께 하기로 했던 프로젝트 제목이 뭐냐고 물어보고 경하는 <작별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합니다.

인선과 경하는 촛불에 비친 새 그림자를 보는데, 인선은 몇 달 전에 죽은 다른 새 '아미'라고 얘기합니다.

가끔씩 아미를 본다는 인선은 제주공항 활주로 아래에서 4.3사건 유골들을 본 후로 혼자 있어도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인선은 경하에게 한 상자를 열어서 보여줍니다. 여러 스크랩 자료들과 신문 조각들, 사진과 메모들, 형무소 서류들 등. 오래되어 색이 바래고 삭기도 한 자료들이 들어있습니다.

인선의 엄마 정신이 수십 년에 걸쳐 차곡차곡 모아 온 것들이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죽어있던 사람들중에 오빠는 없었습니다. 정신은 그때부터 오빠를 찾아 헤맸습니다.

배움도 짧고 덩치도 작고 그저 조용하고 슬퍼 보이기만 했던 인선의 엄마 정신은 젊은 날 그 누구보다도 억척스럽고 끈질기게 오빠의 흔적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느라 혼기를 놓쳐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마흔둥이 인선을 낳았습니다.



그 후로도 정신은 오빠를 체념하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오빠는 마을 사람들이 집단 학살을 당하던 때에 산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자수하면 처벌하지 않겠다는 미군 정찰기의 삐라를 읽고는 자수했다가 수감되어 버렸습니다.

감옥에서 말 못 할 고문을 당하고 대구 형무소로 옮겨졌다가 진주로 이송된 후로는 더는 이감 기록이 없었습니다. 오빠의 이름은 광산 갱도에서 총살된 사람들의 명단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정신은 오빠의 유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일반인으로선 구하기 힘든 관공서 기록까지 모았습니다.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나이, 70대가 넘어서까지 정기적으로 그 광산을 방문했고 대구 실종 재소자, 제주 유족회의 일원으로서 정기적으로 회비와 성금을 보냈으며 관련 기관들을 찾아가 유해 발굴 추진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신은 실패했습니다. 단 한 조각의 뼈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유해 수습이 중단될 거라는 소식을 듣고, 유족회 회원들이 다 같이 갱도에 들어갔던 날 정신은 누군가로부터 그날 한명의 생존자가 있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피투성이 옷을 입은 앳된 청년 한 명이 민가에 숨어 들어가 옷을 빌려 입고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정신은 주저앉아 토하기 시작합니다. 위액만 개워져 나올 때까지.

인선은 그때부터 엄마 안에서 분열이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두 개의 상태에 그날 밤에 오빠가 동시에 있게 되면서, 갱도 속에 쌓인 수천 구의 몸들 중 하나. 동시에 불 켜진 집들의 대문을 두드리는 청년.

피투성이의 수의를 마당에 남기고 암흑 속으로 달려 사라지는 사람으로.



인선은 경하에게 그들의 나무를 심을 땅을 보여주겠다고 말합니다. 검은 먹을 칠한 통나무들을 세워둘 땅을. 경하가 꿈에서 본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인선이 홀로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하는 양초도 얼마 안 남아서 가고 싶지 않지만, 정적 속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아서 따라나섭니다.

한참을 눈길을 걷다가 촛불이 거의 꺼져갈 무렵, 인선은 눈 속에 앉아버립니다. 밀도가 얼마나 낮은 눈인지 앉는 대로 끝없이 깊게 꺼져, 격벽 같은 눈이 인선과 경하를 갈라놓습니다.

얼마 안 남은 초가 꺼지고 인선도 초와 함께 사라지려고 했습니다. 경하는 한 존재가 동시에 두 곳에 있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며, 여기에 있는 인선과 병상에 있는 인선을 떠올립니다.

경하가 부러진 성냥개비를 긋자 꽃봉오리 같은 불꽃이 솟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이는 것처럼.



이상과 같이 줄거리를 돌아보았습니다. 작품 안에서 특이한 점은 죽은 새의 등장과 서울에 있어야 할 인선과 경하의 공존입니다. 양자역학의 개념이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인선이 활주로에 묻혀 있었던 유골들 중에 혼자만 모로 누워 있었던 사람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다가, 자기도 모로 한 번 누워봤는데 왠지 그 사람이 함께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그런 말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경하가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 누가 여기 함께 있나?" 만약 여기까지만 말했다면 '아, 작가가 귀신의 존재를 의도한 건가?'보다 싶었을 수도 있는데, 경하가 여기에서 이 말을 덧붙입니다.

"정말 누가 여기 함께 있나?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하는, 관측하려 하는 찰나 한 곳에 고정되는 빛처럼."이라는 말을 합니다. 양자역학의 중첩 개념입니다.



양자역학에 대해 간단히 알아봅니다.



모든 물체는 일상적인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原子, atom)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자는 물질의 기본적인 최소 입자입니다.

원자는 핵(nucleus)과 그 주위에 분포되어 있는 전자(electron)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자가 핵 주위를 계속 돌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모든 게 원자로 되어있습니다. 손도 물도 책도 원자로 되어있습니다.

모든 원자들은 기본 구조가 거의 똑같은데 가운데 핵이 있고 주위에 전자가 있습니다. 왜 이런 구조를 갖고 이런 원자들은 어떤 특성이 있느냐를 설명하는 학문이 양자역학입니다. 원자의 특성을 설명하는 학문입니다.


지구는 돌고 있습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계속 돌고 있습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걸 공전이라고 합니다. 공전 속도가 소리보다 빠릅니다.

소리 속도보다 빠릅니다.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데 우리만 모르는 겁니다. 자전 속도도 엄청납니다. 자전 속도가 비행기보다 빠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못 느낍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못 느낀다고 해서 돌지 않는 건 아닙니다. 원자들이 굉장히 많이 있는데 원자가 얼마나 작은가 하면 원자 1억 개를 일렬로 늘어놓아봤자,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가 겨우 새끼손톱 끝만 합니다.

그러니까 원자는 어마어마하게 작습니다. 그 안에서 전자가 끊임없이 돌고 있는데 우리는 못 느끼는 겁니다. 우리가 못 느낀다고 해서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이런 의문이 생겨납니다. 물질을 이루고 있는 전자는 누구도 힘을 가하지 않고 있지 않나 라는. 지구는 태양의 인력이 작용하면서 힘이 계속 유지되어 멈추지 않고 돕니다. 지구와 태양 사이에 인력이 있으니까 돌 수 있습니다.

핵과 전자 사이에도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이, 즉 전기력이 작용합니다. 그래서 역시 비슷하게 돌 수 있습니다. 원자는 태양계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핵과 전자 즉 원자를 이루는 그 구성과 힘을 이야기하는 학문이 양자역학입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면 세상 모든 건 원자로 되어있으니까 세상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자가 원자의 화학적 성질을 결정합니다. 예를 들면 황금의 번쩍이는 광채, 철의 차가운 느낌, 탄소로 이루어진 금강석의 단단한 결정구조 등을 전자들이 좌우합니다.

즉 왜 물은 투명하고 왜 플라스틱은 매끈매끈하고 왜 금속은 전기를 통하냐고 물어보면 그것들을 이루는 원자가 그런 특성을 갖기 때문이라고 답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이루는 원자가 도대체 뭐길래 왜 그렇게 행동하냐고 물어보면 양자역학적으로 그것들을 이루는 원자들의 전자들이 이러하므로 그렇다. 언제나 이런 식으로 답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세상 모든 물질이 왜 그러하냐를 설명하게 됩니다. 근원을 찾는 겁니다.



간혹 사람들은 양자역학의 양자는 핵과 전자를 양자라고 하는 건지 오해하기도 합니다. 사실 양자역학의 양자는 별로 바람직한 이름이 아닙니다.

때때로 과학의 역사 속에서 전체의 모습이나 내용을 모를 때 이름을 지어버리고는 나중에 돌이킬 수 없어서 그냥 그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양자역학의 양자도 그런 이름입니다. 전자도 마찬가지로 이런 모든 것들을 다 이해하기 전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그래서 양자는 그냥 역사적으로 처음에 어떤 특별한 물리현상 가운데 에너지가 띄엄띄엄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서 그걸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나온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자의 뜻은 양화(量化) 되어있다는 겁니다. 수량으로 파악하여 계산함으로써 통일적이고 체계적으로 파악해야만 하는 어떤 기본 단위로 수량. 그렇습니다.

우선 인간은 대상을 지배하고 효율적으로 조작하기 위해서 대상을 수량화하고 계산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양자 그래서 1, 2, 3, 4 이렇게 분절적으로 어떤 특수한 시스템의 에너지가 띄엄띄엄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양자역학이라고 하는 건데 지금 와서 보면 그건 그냥 어떤 현상의 하나일 뿐이고 더 본질적인 것들이 있는데 이름을 잘못 지었던 겁니다. 그런데 돌이킬 수 없습니다. 돌이킬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사용됩니다.



뉴턴역학, 즉 고전역학이 지배하는 세계를 거시 세계라고 하고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세계를 미시 세계라고 합니다. 원자를 이루고 있는 핵과 전자. 핵과 전자의 운동을 이해하면 되는데 이미 물리학이 뉴턴 시대부터 적립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입자들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방법이 이미 있었습니다. 우리 직관하고도 잘 맞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물체에 힘을 가하면 물체가 움직이고 뭐 떨어지고.

그런데 문제는 뉴턴이 만든 아주 오래된 물리학의 체계가 원자를 설명하는 데에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뉴턴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원자.

원자를 설명을 못해서 20세기 초반의 사람들이 머리를 쥐어뜯다가 뉴턴 역학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역학을 만들어야지만 원자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기존에 써왔던 거시 세계의 물리학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우리의 상식과는 굉장히 달라 보이는 형태의 새로운 역학 체계가 만들어집니다. 이게 양자역학입니다.



양자역학에서는 하나의 전자는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같은 전자를 의미합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절대 못 합니다. 거시 세계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어떤 물체도 주어진 시간에 공간상의 한점에 있어야지만 되는데 원자와 같은 작은 세상이 되면 전자는 여기와 저기에 동시에 있는 게 가능합니다. 같은 전자인데도 동시에 있는 게 가능합니다. 하나의 전자가.

그러니까 사실 양자역학이 어려운 건, 이게 워낙 우리의 직관과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가 안 통합니다. 인간의 언어는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상식으로부터 만들어졌습니다.

언어의 목적은 내가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거지 이런 괴상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양자역학을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는 순간 엉망진창이 됩니다.

다시 말해 지금 벌써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두 장소에 있다는 말 자체가 그게 같은 전자냐?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됩니다. 같은 전자입니다. 그런 게 양자역학은 가능합니다.

그래서 양자역학을 다른 데에 적용하기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초기에 양자역학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려워서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물리학의 슈퍼스타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양자역학이 그 형태를 갖춘 게 1927년인데 그 시점에서 2~30대 과학자들을 주축으로 만들었습니다. 신진 세력이 만든 겁니다. 그때 나이가 많았던 4~50대 과학자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양자역학의 탄생과 관련해서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 시기가 갖는 어떤 중요성이랄까? 과학자들이 그렇게 기존의 모든 체계를 다 버리고 그런 급진적인 선택하게 된 문화적 배경은 뭘까? 이런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양자역학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1927년쯤 제1차 세계대전 끝나고 서양문명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1914~18년까지가 제1차 세계대전인데 그때 사실 서양 사람들은 그 이전까지는 서양문명이 인류가 만든 최고의 문명이다. 그렇게 믿었고

그 문명을 가지고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면서 '우리가 최고야' 그러고 다녔는데 자기들이 만든 문명의 산물로 전쟁을 벌이더니 수천만 명을 죽였습니다. 거기에 환멸을 느끼는 겁니다.

이유가 뭘까 그래서 20년대가 되면 서양문명에 그 이전에 없던 것들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성 넘어 무의식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해서 무의식에 기반을 둔 새로운 과학, 무의식을 전면에 내세운 예술, 초현실주의 같은 겁니다. 그전까지는 보지도 않았던 인간의 깊은 내면의 어떤 본능. 이런 것들을 다 앞으로 끄집어냅니다.



과학자들도 그때 2~30대 과학자들. 양자역학을 만든 이 사람들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쟁에 가까스로 참여 안 했거나, 전쟁 때 그 무지막지한 죽음을 본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특히 이걸 만들 때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하이젠베르크는 군대 가기 직전에 전쟁이 끝납니다. 18세에 전쟁이 끝납니다. 19세였으면 전쟁터에 갔을 텐데.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뮌헨 대학을 갑니다.

그런데 대학에 갔는데 선배가 없습니다. 다 죽었던 겁니다. 그는 뭘 느꼈을까요? 제2차 세계대전은 전방위적으로 사람들이 죽습니다. 군인이고 민간인이고 다 죽는데 제1차 세계대전은 전선에서만 전쟁이 벌어지고 후방에서는 놀고먹었습니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였습니다. 전선에 간 20대 젊은이들만 다 죽고 후방은 멀쩡합니다. 대학에 갔는데 선배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 나이 든 정치가들이 자기들끼리 엉뚱한 비밀외교, 여러 가지 당시 있었던 정치적 결단 때문에 젊은 애들만 죽어 나간 겁니다. 기존 체계에 대한 분노? 결국 그 세대가 만든 이론입니다.



이런 해석까지 할 정도로 워낙 급진적입니다. 이 양자역학의 형태가 너무 잘 설명합니다.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전자공학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사라졌을 겁니다. 양자역학이 없었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들. 일단 텔레비전 없어집니다. 휴대폰도 없어지고 모든 전자공학이 사라집니다.

전자공학이라는 거는 전자로 하는 공학입니다. 원자는 핵과 전자라 그랬습니다. 그 전자를 기술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전자공학이 나온 겁니다.

20세기 문명과 19세기 문명이 다른데 왜 다르냐면 양자역학만큼 다릅니다. 양자역학이 없으면 현대 문명이 없습니다.

전기로 모터를 돌리는 거는 19세기입니다. 거기까지는 에디슨이나 테슬라나 전기 자체를 사용하는 건 19세기 문명인데 전자 공학을 사용하는 건 20세기 문명이고, 그건 양자역학입니다.



전기 세대에서 전자 세대로 넘어가는 제일 큰 차이는 반도체입니다. 전기를 쓴다는 건 전기를 그냥 열로 사용하거나 전기를 힘으로 사용하거나 여기까지는 전기입니다.

이건 20세기 초에도 있었습니다. 세탁기나 그런 것까지는 가능합니다. 근데 세탁기가 우리가 스위치를 눌러서 뭘 입력하거나 어떤 프로그래밍을 하는 거 이건 다 전자공학입니다. 그런 것들은 전부 다 양자역학입니다.

신약 개발하거나 현미경으로 뭘 관찰하거나 뭐 이런 것 전부 다. 뭔가 우리가 프로그래밍한다든지, 기계가 생각을 하게 하거나 조금이라도 스마트하게 하는 건 전부 다 전자 공학이고 그건 다 양자역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어떤 전기가 늘 통하거나 이러면 전선이고, 어떤 조건에 따라서 끊었다 연결해 주는 게 반도체입니다. 전자 신호를 끊었다가 연결했다가 이걸 해주는 게(스위치) 결국 반도체입니다.

전류를 원할 때 흘리게 하고, 원할 때 끊는 거 그 역할을 하는 게 트랜지스터라는 건데 트랜지스터가 20세기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혔습니다.

과학자 모두에게 조사했습니다. 20세기에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발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뭐였냐? 1위가 트랜지스터인데 바로 그 트랜지스터의 원형은 진공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걸 전자식으로 만든 게 반도체를 이용한 기술이고 그걸 만들 때 양자역학이 쓰입니다. 왜 반도체가 작동하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반도체의 작동 원리를 설명해 주는 게 양자역학입니다.

그래서 트랜지스터가 만들어지자, 트랜지스터를 작게 만든 걸 IC칩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트랜지스터를 많이 배열해 놓은 게 컴퓨터고 스마트폰이고 메모리고. 반도체 소자 트랜지스터는 전자 신호와 전력을 증폭하거나 전원을 끄고 켜는 기능을 하며 반도체의 전력 소비량 조절을 담당합니다.

1958년 최초로 만들어진 반도체 칩에는 트랜지스터가 2개가 들어갔습니다. 2013년에는 반도체 칩 하나에 21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갔고, 2020년 기준 엔비디아의 그래픽 처리장치에 54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됩니다.

그걸 전 세계에서 가장 작게 만들어서 집적시키는 기술을 가진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삼성 반도체가 하는 게 트랜지스터를 작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반도체가 결국 양자역학 기술의 총합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양자역학으로 굴러가는 회사입니다.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완벽히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다음 100년 동안 우리는 2만 년 분량의 기술 진보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천재 시인 이상은 1931년 조선과 건축 10월호에 연작시<삼차각설계도>를 발표했습니다. 점을 찍어서 행렬을 만들었습니다. 양자역학을 수학으로 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입니다.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시는 4차원 시공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강과 이상은 양자역학에 많은 관심을 가졌나봅니다.




칼 세이건 '코스코스'와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양자역학' 강의를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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