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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통령 서태지에 광분 안 했던 이유

눈물을 흘리거나 또는 슬픔이나 비극적인 장면을 통해서 마음이 정화되고 쾌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를 카타르시스(Catharsis)라고 한다.

마음속의 응어리나 불안, 우울, 긴장 등이 해소되는 진정한 카타르시스는 슬픔류의 감정을 통해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통해서도 느껴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감동의 카타르시스가 더 커다란 마음의 정화를 가져오는듯하다.


이선균, 이지은(아이유) 주연의 16부작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한편 한 편이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준 인생 드라마였다.

미스터 선샤인,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매 편 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드라마들이었다.

드라마 작가들은 그때그때의 감동 포인트를 제대로 아는 거 같다.

대단하면서도 부럽다.

하긴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극작가였다.


영상에 음악이 덧붙여지면 여운 깊은 감동을 갑절로 늘어나게 해준다.

간간이 인간에 대한 예절과 배려를 보여준 마음 훈훈한 기사들을 접하면 그 역시도 감동적이다.

엊그제 본 신년특집 <옥탑방의 문제아들> 차인표 편도 은근한 감동을 준다.

차인표는 인생 참 건전하게 사는 것 같다고 하자 "응 착해"라고 어머니도 그러신다.


여러 감동들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커다란 감동을 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음악이다.

좋은 음악은 엄청난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준다.

전율까지도 건네준다.

음악을 들으면서 감동과 전율을 느낄 땐 종종 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좋은 음악을 들을 줄 아는 귀는 줬으면서도 만들 줄 아는, 다룰 줄 아는 재능은 왜 나한테만 아꼈을까 하는 원망 섞인 아쉬움이 평생을 함께 했다.

가족 코드 정도는 짚을 줄 알아서 노래 부를 때 기타 반주 정도는 할 줄 알았지만, 드럼도 조금은 칠 줄 알았었지만 대단한 수준의 음악적 재능은 아니었다.


음악을 듣는 것이 흐뭇하고 행복스럽다고 처음 느꼈던 것이 아마도 중3 때쯤일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필(Feel)이 갔었던 가요가 그룹사운드 건아들의 <젊은 미소>였다.

어른들이 듣던 트로트를 귀동냥하다 처음 접했던 그룹사운드의 음악은 신선하고도 에너제틱 했다.

집에서 하도 틀어놔서 어머니도 가사가 저절로 외어져 따라 부르실 정도였다.


중고교 시절의 우리 세대의 음악은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해변가요제 등의 가요제 입상곡이 주류었다.

가요톱10에서 소개되는 일반 대중가요도 있었지만 음악 좀 듣는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면 가요제 입상곡들은 기본적으로 다 꿰찼다.


고등학교 2학년 때쯤인가 잘생긴 배철수 느낌의 김성호라는 애하고 친해졌다.

하루는 성호네 집에 놀러 갔었는데 특이한 것이 안채에 그 애의 방이 있는 게 아니라 대문 옆 셔터 달린 주차장을 방으로 꾸민 곳에서 거처했다.

그 주차장 방에 침대가 놓여있고 턴테이블이 달린 전축과 일렉트릭 기타, 앰프가 방안 살림의 주를 이루었다.

전축 주변으로 많은 LP 판들 이 있었고 그 LP 판들 은 처음 보는 처음 듣는 음악들이었다.

각종 가요제 음악들을 1회차부터 줄줄이 꿰고 있었고, 두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등을 통해서 인기 팝송 등 웬만한 음악들은 다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나인데 그것들은 처음 보는 음악들이었다.

처음 듣는 음악들인데 첫 소감이 무지 시끄러웠다.

하드락, 헤비메탈 음악들이었다.

아버님이 알려주신 음악들이라고 했다.

성호는 기타를 잘 쳤다.

즉흥적으로 솔로 애드리브도 넣을 줄 아는 수준이었다.

안채가 아니라 동떨어진 대문 옆 주차장방이 거처가 된 것은 아마도 앰프 기타의 소음 때문인듯하다.

거의 매일 성호네 그 주차장 방에 갔고 하드락, 헤비메탈 음악을 함께 들으며 세뇌되듯 주입받았다.

그때 당시 알게 된 그룹들이 레드제플린, 딥퍼플, 크림, 블랙사바스, 주다스 프리스트, 아이언메이든, 스콜피온스, 에이씨디씨, 핑크플로이드, 퀸, 키스, 건즈 앤 로지스, 화이트 스네이크, 레너드 스키너드 등이다.

주차장방의 LP 판들 은 거의 빽판이었다.

빽판은 MP3 다운로드 이전 시대에 판매하던 불법복제 레코드판의 통칭이다.

정품에 비해 워낙 싸서 노량진이나, 청계천에서 구입했다.

빽판사러 다니던 것도 이제는 오래전의 낭만적인 추억으로 남는다.

밤마다 잠들 때 이어폰이나 헤드폰 끼고 이 시끄러운 음악을 들었던 덕에 약간 가는 귀가 어둡다.


고등학생 때 하고 20대 때는 디제이가 신청곡을 틀어주는 음악다방이라는 것이 유행이었고, 음악을 듣는다는 핑계로 고등학생 때부터 자주 출입했다.

닐 세다카의 'You Mean Everything to Me', 김승진의 '스잔', 박혜성의 '경아' 등이 음악다방 스피커에서 자주 흘러나오던 곡들이었다.

음악다방에 가면 나는 레드제플린과 딥퍼플의 곡들을 신청했다.

어쩔 때는 15분이 넘는 레드제플린 드러머 존본햄의 모비딕(Moby Dick)이라는 드럼 솔로곡을 신청하기도 했다.

음악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디제이에게 인상적인 손님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거 같다.


군 제대 후 복학 때까지 몇 개월이 남아 남영동에 있는 크로이첼이라고 하는 클래식 음악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방 일이었고, 디제이가 따로 없어 주방일 도중 때맞춰 판을 뒤집어가며 음악도 틀기도 해서 클래식하고 가까워졌다.

처음 한 달간 정도는 귀에 익숙하지 않아서 들어도 좋은지를 몰랐었는데 차차 귀에 익숙해지니 너무 좋았다.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바이젠, 라호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드보르작의 신세계,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등이 많이 들었던 곡들이다.

그때 이후 클래식하고 친숙해졌고, 모짜르트의 교향곡 제40번은 직장 생활할 때 출근길에서 아침마다 듣는 곡이 되었었다.

이 글을 쓰면서 실로 오랜만에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본다.

대략 십오 년 전쯤 한 번은 베토벤 합창 교향곡에 꽂혀 거의 18시간 정도 반복해서 들었던 적이 있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깊이가 느껴지는 음악이 클래식이다.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좀 더 다양하게 들어보자는 욕심이 들었고, 재즈를 탐내게 되었다.

루이 암스트롱, 베니 굿맨, 데이브 브루벡, 마일즈 데이비스, 찰리 파커 등의 음악을 자주 들었다.

보사노바 재즈인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The Girl From Ipanema)는 지금도 가끔 찾아듣는 최고의 명곡 중 하나이다.

마일즈 데이비스를 시초로 보는 퓨전재즈도 너무 좋았다.

특히 일본의 티스퀘어, 카시오페이아의 음악을 많이 좋아했었다.

티스퀘어의 Sunnyside Cruise는 혹여라도 내가 많이 부유해지면 크루즈 여행을 할 것이고, 그때 배 갑판에서 찬란한 햇빛 받으며 맥주나 샴페인을 마시면서 꼭 들으리라 생각하는 곡이다.


재즈 이후 좋아하게 된 분야가 다른 범주에 속하는 2개 이상의 음악이 섞인 크로스오버이다.

케니 지, 바네사 메이, 본드, 요요마, 캐논스, 오리엔탱고 등의 음악을 좋아했다.


뉴에이지 음악도 접해보려고 했으나, 지나치게 서정적인 것이 오히려 감흥을 없게 해서 자주 찾지는 않는다.


음악에 대해서는 진심인 편이어서, 그리고 깊이는 없지만 살아오면서의 음악 편력 때문에 이미 귀가 고급스러워졌다.

이러한 나에게 서태지는 그저 들어줄 만한 괜찮은 음악인 정도였다.

남들처럼 서태지의 등장에 크게 광분되지는 않았다.

건방이 아니라 살아오면서의 개인적인 음악적 궤적 때문이라는 것을 서태지 팬들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영국 낭만주의 천재 시인 존 키츠(John Keats)는 '음악을 들으면서 죽게 해준다면 더 이상의 기쁨이 없으리라'라고 했다.

나이를 한참 더 먹고 눈부신 햇살 비치는 4월의 어느 날 딥퍼플의 에이프릴(April)을 들으면서 죽어가는 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바람이다.

러닝타임이 12분이 넘는 곡으로 초반 9분 정도는 관현악을 사용한 클래식 구성에 후반 3분 정도는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가장 록(Rock) 적인 구성이다.

나의 인생의 마지막 바람을 듣고 어떤 이는 자기한테는 건즈 앤 로지스의 November Rain이 그런 곡이라고 했다.

19억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한 곡으로 역시나 너무나도 좋은 명곡이다.


록(Rock)이나, 클래식은 대부분 연주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성대의 소리보다는 연주 위주의 음악을 좋아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부턴가 성대의 소리인 노래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계기가 된 것이 소향이라는 가수를 알게 된 후부터이다.

CCM 가수였던 소향을 처음 알게 된 것이 <나는 가수다 2>를 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그 후 지켜볼수록 진화해가는 보컬리스트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진성 C#6(4옥타브 도샵)부터 두성 F6(4옥타브 파)의 경이로운 고음과 성량, 감정 전달이 놀라울 정도의 딕션(발성), 호흡 컨트롤 등 모든 영역에서 최고라는 느낌이 들게 해주는 가수이다.

가수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고음보다는 음색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었는데 고음과 음색 모두를 가진 가수라고 생각한다.

작곡가 유영석은 휘트니 휴스턴이 머라이어 캐리처럼 노래한다고 했는데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는 가수다 레전드>편에서 부른 I Have Nothing을 들어보면 공감 가능할 것이다.

간혹 유튜브에서 소향을 찾아보는데 한번 보게 되면 영락없이 밤을 새우게 된다.

소향처럼 좋아진 가수가 국카스텐의 하현우, 악동뮤지션의 수현, 자우림의 김윤아, 부활의 정동하 등이다.

장혜진도 오래전부터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음색을 가진 가수라고 여겼다.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 삶이며 피곤한 삶이며 유배당한 삶이기도 하다.'라고 했던 니체의 말에 십분 공감하며 오늘 하루쯤은 하루 종일 음악과 함께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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