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9일 둘째 주 금요일날이었다.
최근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시는 어머니의 치과진료 후 간만에 삼덕갈비에 들려 반주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삼덕갈비는 돼지갈비전문점으로 맛집이 거의 전멸한 안양에서 나름 선전하고 있는 식당이다.
가성비도 좋고 남녀노소 골고루 모두의 입맛에 찰떡인 곳이다.
집에 돌아온 후 열 살 차이 나는 사촌 형에게 오래간만에 안부전화를 했다.
사촌 형의 친구들인 기수 형님, 천수 형님하고 술 마시고 있다고 당장 집으로 오라고 한다.
사촌 형은 어렸을 때부터 워낙 스스럼없이 반말하면서 지냈기에 형이고, 친구분들은 예의와 소양을 갖춰 형님이라 부른다.
서로의 집이 30분 거리로 비교적 가깝고 사촌 형하고 술자리 한 적도 오래됐고 해서 망설임 없이 찾아갔다.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는 이어졌고 도중 기수 형님의 강요 닮은 요청으로 한시를 훌쩍 넘긴 새벽시간에 노래방도 다녀왔다.
기상하자마자 이른 아침 해장국집에서 반주마저 곁들여 속도 풀고 다시 사촌 형 집에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늦은 오전, 자리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통영에서 올라온 생굴이라며 바라바리 싸준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월요일날 인후통 목따끔 거림이 살짝 감지되었다.
화요일 아침부터 사촌 형에게 전화가 왔다.
기수 형님으로부터 코로나 확진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자기도 병원 가는 중이라며 나한테도 어서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안양 샘 병원으로 가서 증상이 있는 나는 신속 항원 검사를, 증상이 없으셨던 어머니는 PCR 검사를 받으셨다.
바로 결과가 나온 나는 양성, 다음날 결과가 나온 어머니는 음성이었다.
사촌 형 집에서 함께했던 네 사람 모두 확진자가 되었다.
짚이는 게 노래방이 문제였던 듯하다.
그동안 잘 피해왔던 코로나였는데 누적 확진자 수 3천만 명에 드디어 나도 포함되는 것이었다.
코로나 치료제인 팍스로비드를 5일 치 처방받았다.
팍스로비드는 만 18세 이상의 면역저하자와 40세 이상의 기저질환자, 60세 이상의 확진자에게만 처방된다.
지정 약국에만 있고 약값 570불인 70만 원이 넘는 비용은 국가에서 전액 부담하고 있다.
나는 평생 혈관 약을 복용해야 하는 기저질환자라 팍스로비드 처방이 가능했다.
팍스로비드의 효과는 뛰어나게 탁월했다.
약간의 인후통 외에 그다지 증상이 없기도 했지만 이틀 정도 복용하니 싹 나은듯했다.
증상이 없어져도 몸속에 바이러스가 남아있다고 해서 5일 치 전부 복용하라고 했고 충실히 복용했다.
자가격리는 일주일 의무적으로 해야 했다.
불안한 마음에 수요일, 목요일 계속 어머니 상태도 체크했다.
목요일날 저녁에는 어머니도 인후통 증상을 느끼신다고 했다.
금요일날 바로 병원으로 가서 신속 항원 검사를 했고 어머니도 양성반응이 나오셨다.
어렸을 때부터 때때로 어머니에게 들었던 염병할 놈이 되었다.
전염병, 돌림병을 뜻하는 '염병할'과 사지를 말에 묶은뒤 달리게 하여 몸을 여섯 등분 내는 '육시랄'의 어원을 알려드렸더니 그 후로는 이 찰진 욕들을 들을 길이 없었다.
알고 보니 우리 어머니가 참 교양 있는 분이셨다.
어머니도 팍스로비드를 이틀 정도 복용하니 증상들이 없어졌다고 하셨다.
중증으로 넘어가지는 않고 경증으로 끝난 게 그나마 다행이다.
독감처럼 욱신거리는 몸살기도 없었고 아주 약한 감기가 지나간 듯하다.
경증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접종 받았던 백신 덕도 있겠고 더 큰 것은 매일매일의 운동 덕분인듯하다.
지금이야 관절 때문에 그만두셨지만 어머니는 몇 년 전까지 배드민턴을 치셨다.
무려 25년 정도를 배드민턴 동호회에 계셨다.
고령층에게는 암만큼 무서운 사망원인 중 하나가 폐렴 등 호흡기질환이다.
올해 여름 병원 진료 결과 어머니는 연세에 비해 아주 튼튼한 폐를 갖고 계신다고 했다.
25여 년의 배드민턴 덕인 듯하다.
지금도 매일같이 걷기 운동을 하신다.
나도 혈관질환이 온 2019년 이후 매일같이 5~8킬로를 걷는다.
운동 덕에 어머니와 나는 어느 정도 수준의 면역력을 항상 유지하고 있는 것 같고 그 덕을 본 것 같다.
인간의 역사는 항상 팬데믹(Pandemic)과 같은 전염병과 함께 해왔다.
팬데믹이란 어떤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여 인류 전반에 치명적인 위협을 야기하는 상태에 도달한 것을 이른다.
인류사에서 대표적인 팬데믹으로는 중세 흑사병(Black Death), 콜레라(Cholera), 스페인 독감(Spanish flu), 인플루엔자(Influenza), 코로나19(COVID-19) 등이 있었다.
그 외에도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아테네 역병, 안토니누스 역병 등 크고 작은 역병들이 있었다.
14세기 이후 페스트라 불리기도 했던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죽어나갔다.
흑사병 누적 사망자는 대략 3억으로 추산한다.
19세기 이후에는 7번의 콜레라 대유행이 있었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스페인 독감이 1918년에서 1920년까지 사납고 맹렬한 기세를 떨쳤다.
스페인 독감의 사망자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총 전사자 900만~1,000만 명보다 많은 2,500만~5,0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당시 세계 인구가 약 17억 명이었다.
일제강점기의 한반도에서는 '무오년(1918년) 독감'이라고 불렸으며, 14~15만 명이 사망했다.
스페인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언론이 검열로부터 자유로웠고 질병에 대한 정보를 대부분의 국가가 스페인 언론을 통해 얻었기에 스페인 독감이라고 명명되었다.
발병지도 아닌 스페인에게는 억울한 오명(汚名)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급성 호흡기 질환인 인플루엔자는 독감이라는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고 갑작스러운 고열, 근육통, 두통, 오한 등을 일으킨다.
지금까지 존재해온 그 어떤 전염병보다도 인간을 오래 괴롭혀온 끈질긴 감염병이다.
미국의 경우 2022~2023년 시즌 동안 1만 4000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우리나라의 사망자는 합병증까지 포함해서 2,000~3,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인플루엔자 누적 사망자는 대략 3억 5천만으로 추산한다.
2019년 중국 우한시에서 최초로 발생한 코로나19는 2020년 이후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고 수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기록하였다.
2023년 1월을 기점으로 6억 6천만 명 이상의 확진자와 670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다.
첫 발병 후 3년이 넘은 이 순간에도 확진자와 사망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서 제2의 흑사병, 제2의 스페인 독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1세기 이후 전 지구촌을 집어삼킨 최악의 전염병 중 하나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집단면역을 구축해 가고 있고 엔데믹 즉, 풍토병이 되어가면서 위세가 수그러져 갈듯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독감과 더불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단계적 일상 회복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를 지나서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시대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팬데믹 이외에도 일상적인 질병으로는 감기, 티푸스, 말라리아, 천연두 등이 있어왔다.
기원전 약 1,000년경부터 유행과 잠잠함을 반복하면서 인간을 괴롭혀 왔던 천연두는 1977년의 마지막 발병을 끝으로 더 이상 자연적인 발병 사례가 없었다.
인류가 처음으로 박멸한 병이다.
천연두 누적 사망자는 10억 명이나 된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의 질병이 끊임없이 인류와 함께했고, 원숭이 두창 등 앞으로도 새로운 질병들이 생겨날 것이다.
'질병은 자연의 법칙을 침해한 것에 대한 자연의 복수이다'라고 했던 어떤 작가의 말이 공감이 간다.
바이러스로 지구가 멸망할 수 있다는 학자들의 의견이 상당히 많아졌다.
기후변화로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바이러스로 멸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정체불명의 고대 세균 및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멸망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환경 운동가들의 주장에 귀가 기울여지는 이유이다.
파리 기후변화협약 등을 통해서 세계 각국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9년에 유엔 본부에서 열린 기후 행동 정상 회의에서 연설로 유명했던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 변화는 인류에게 존재론적 위협이며 이로 인해 인류는 여섯 번째 대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라고 역설했다.
45억 살의 지구는 기온의 변화, 화산 폭발, 소행성의 충돌 등으로 크게 다섯 번의 멸종 위기가 있었다.
그레타 툰베리는 역대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최연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에린 브로코비치를 연출했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2011년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을 보면 코로나19를 훨씬도 전에 예언한 것 같아서 소름 끼칠 정도다.
우리가 겪었던 코로나19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현실 묘사가 뛰어난 팬데믹 아포칼립스(Apocalypse) 작품이다.
아포칼립스는 세상의 파멸, 종말, 대재앙을 뜻한다.
영화 컨테이젼에서 바이러스의 시작은 한 다국적 기업 에임 엘더슨의 개발로 인해 숲이 파괴당하면서 거기 살던 박쥐가 삶의 터전을 잃고 사람이 사는 인근 농가의 돼지 축사로 날아간 것에서 비롯되었다.
박쥐는 바나나 열매를 먹었고 찌꺼기를 돼지 축사에 떨어뜨렸다.
그 찌꺼기를 먹은 돼지는 자신을 요리한 요리사에게 그리고 요리사는 홍콩으로 출장 온 최초의 슈퍼 전파자인 에임 엘더슨사 임원인 베스 엠호프에게 바이러스를 옮긴다.
코로나19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코로나19 공포가 일상으로 다가온 게 이제 3년이 되었다.
마스크의 실내 착용 의무도 해제를 검토할 정도로 우리의 일상은 많이 정상화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엔데믹으로 그 위세가 수그러져가도 우리의 삶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바이러스 박멸 자체가 불가능하고 또 다른 바이러스에 의해 또 다른 팬데믹이 인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팬데믹은 항상 인류와 함께 해왔다.
앞으로도 항상 인류와 함께 할 것이다.
'나는 내가 겪고 있는 모든 비참함을 생각하지 않고, 아직도 남아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라고 했던 안네 프랑크의 지혜가 필요한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