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이 나오는 '달마야 놀자'라는 영화를 보면 산속 사찰의 한 승려가 일상에서 묵언수행(默言修行)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불교에는 안 먹는 수행, 잠 안 자는 수행, 등 여러 가지 수행이 있다.
그중 가장 쉬워 보이지만 막상 해 보면 가장 어려운 수행이 바로 묵언수행이라고 한다.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스님은 묵언을 하는 이유를 '자신이 얼마나 잡담을 많이 하고 시비심(是非心)을 일으키는지를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수많은 스님들뿐만 아니라 크리스천들도 예술가들도 학자들도 그 흔한 글쟁이들도 묵언수행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해왔다.
평범한 일반인도 누구라도 한 번쯤은 묵언수행을 떠올려 봤을 것이다.
묵언수행은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기 위함이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묵언수행은 누구든지 시도해 볼 만할 것 같다.
나의 경우는 묵언수행보다는 때때로 무념수행(無念修行)을 한다.
걱정이나 고민이 생겼을 때, 생각이 정리가 안되어 초조해질 때는 머릿속에 구심점 하나를 찍어놓고 5~10분 정도 무념상태가 되도록 애쓴다.
어떤 이유로 머릿속에 불안감이 자리 잡을 때에도 무념수행을 한다.
마치 1월 한밤 오미야콘(Oimyakon)의 불 꺼진 길거리 한가운데 서있듯이 생각을 얼린다.
오미야콘은 러시아 사하공화국에 위치한 마을로 1월 평균기온 영하 50도로 사람이 거주하는 곳 중 전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불안하고 초조하고 불안정스럽다.
인간을 만든 신의 섭리가 그렇기 때문이다.
교만하지 말고 겸허히 살라는 신의 의도 때문일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섭리 때문에 우리들은 항상 평온함을 찾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 강구 방안이 나한테는 무념수행이다.
나의 뇌는 뇌경색으로 인해 약간 죽어있다.
뇌가 조금 죽어 있어서 너희들하고 대화 수준, 의식 수준을 맞출 수 있다고 친구들한테 농담해 보기도 한다.
2019년 9월에 뇌경색과 심근경색, 당뇨가 세트로 찾아왔다.
별수 없게도 약간의 뇌와 약간의 심장이 이미 죽어 있다.
뇌경색 후유증 때문인지 몰라도 이전과는 달리 일상에서 불안감과 초조함이 항상 같이한다.
일상이 불안정스럽다.
일련의 동작에서 순간적인 뇌 정지로 인해 몸이 때때로 반응을 안 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움찔 당황하기도 한다.
다중처리능력(멀티태스킹)이 현저히 떨어졌고, 좌우대칭의 균형감각이 정확하지가 않다.
계단을 내려갈 때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고, 200이었던 당구 점수 흔히 말하는 당구 다마수가 지금은 30 놓고 쳐도 제대로 못 친다.
왼손으로 만졌을 때 뜨거웠던 것이 오른손으로 만지면 미지근한 정도이다.
뇌의 왼쪽이 죽으면 대칭적으로 신체의 오른쪽에, 뇌의 오른쪽이 죽으면 신체의 왼쪽에 편마비 또는 불편이 온다.
나의 경우는 왼쪽 뇌 아주 일부가 죽어서 전신 좌우대칭 중 오른쪽이 불편을 겪는다.
이 나이에 당구선수가 될 것도 아니고, 운동선수가 될 것도 아니어서 그리 마음 아파하지는 않는다.
일상에도 큰 문제는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소소한 뇌 고장으로 아주 약간의 불편함, 이상함을 겪을 뿐이다.
이러한 증세를 겪으면서 생겨난 습관이 항상 무언가 빠뜨리는 일이 없을까 두 번 세 번 머릿속으로 체크하는 게 일상이 됐다.
노파심의 발현이다.
안 그래도 인생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불안하고 초조하고 불안정스러운 것인데 뇌경색 후유증 때문에 배가돼 느껴진다.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었나 보다.
프로이트는 '불안이 신선한 사고의 엔진'이라고 했지만 차라리 신선한 사고를 안 해도 좋을 것 같다.
이러한 불안감류의 감정들을 극복하기 위해 찾아낸 나름의 방법이 무념수행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나는 생각을 얼린다.
2019년 9월 26일 오후 갑자기 멀쩡하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불안한 생각에 열심히 검색을 해봤다.
갑작스러운 다리의 힘 풀림은 뇌의 이상 아니면 척추질환 둘 중 하나다.
중요도를 따지면 뇌가 더 중요하니 뇌 전문병원도 검색했다.
다음 날인 27일 날 일어나자마자 택시 타고 대림동 명지성모병원으로 향했다.
신경외과 진료전 혈압이 190가까이 측정되니 진료 대기줄 무시하고 응급으로 가장 먼저 진료를 받았고 6인 병실로 바로 입원했다.
입원 직후 간호사가 오더니 악수를 청하면서 손아귀에 힘을 줘보란다.
여자 간호사보다 손아귀 힘이 없었다.
손에 힘이 빠지는 전형적인 뇌경색의 증상이었다.
피검사부터 MRI, MRA 등 각종 검사가 진행되었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CT, 혈관 조영술 등 각종 검사는 계속되었다.
그냥 담담했다.
아무 일도 없는 듯 그냥 담담했다.
큰일을 당하면 오히려 담담해진다는 말이 실감되었다.
입원 다음날 주치의가 와서 MRI 판독 결과를 보여줬다.
왼쪽 뇌 부분 중 일부 허옇게 나온 게 죽은 부분이란다.
입원 이틀째 되는 날 혈압이 200을 넘었다.
심장내과 협진이 있다고 했다.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인 세 개의 관상동맥 중 하나가 완전히 막혀있다고 한다.
관상동맥이 완전 폐색인데도 살아있는 건 운 좋게도 자생적인 우회 혈관들이 많이 생겨나서다.
17~18년 된 금연도 신의 한 수였던 거 같다.
나머지 관상동맥도 지켜보다가 더 막히면 스텐트 삽입을 해야 한다고 하며 구도자처럼 살라고 한다.
심근경색도 이미 거쳐갔다고 한다.
입원 한 달여 전쯤에 집에 혼자 있을 때 7~8시간 동안 죽을 만큼 아팠던 적이 있었는데 심근경색이 왔다 갔다는 게 그때였던 거 같다.
통증의 정도를 0에서 10까지 나타내는 NRS(숫자 통증 등급)이 10점 정도인 최악의 통증이었다.
출산 때 고통이 NRS 7점이다.
삼 일째 되는 날에는 혈당이 250이 넘었다.
입원 후 당뇨 확진으로 당뇨약을 먹고 있었는데도 혈당이 안 잡혀 인슐린 주사를 맞았다.
인슐린주사는 근육주사라 가슴에 맞는다.
가슴에 주사를 맞다니 별 희한한 경험을 다해봤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0중반까지 살아봤으니 이제 가도 별 미련은 없었다.
단지 남는 것이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진정한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라고 했던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말처럼 진정한 삶을 못 산 것 같은 아쉬움이다.
진정한 삶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로 피력하려고 한다.
병실 문 옆 벽면에 붙은 내 병상침대 바로 옆자리 환자분은 뇌경색이 제대로 와서 반신불수가 되셨다.
조선족 간병인이 돌봐주고 있었고 똥오줌까지 다 받아주고 있었다.
통로 건너 맞은편 환자분은 6~7년 만에 뇌경색이 재발해서 입원하셨다.
아주머니 말로는 환자인 남편이 술, 담배를 끊지 못하고 최초 발병 이전과 똑같은 생활패턴을 유지하다가 재발되었다고 했다.
상태가 악화돼서 내가 반신불수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팔순이 다 된 노모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이 들었다.
이처럼 큰 불효도 없는데 난감할 따름이다.
반신불수와 같은 최악의 상태가 된다면 매일같이 한 알씩 먹는 당뇨약을 20~30알 정도 한꺼번에 쏟아부으리라 결심한다.
저혈당쇼크가 와서 삶을 종결지을 수 있을 것이다.
십 대 때도 자살이라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나에게는 사춘기가 없었다고 생각했었다.
오십 중반에 병 때문에 자살을 고려해 보는 현실이, 중년의 사춘기가 조금은 슬펐다.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비긴어게인 3 이외에는 없었다.
20일 동안 입원 후 퇴원했다.
퇴원 후 2주 동안의 일상생활 중 다리에 힘이 또 풀렸다.
재발한 것이다.
운도 지지리도 없다고 해야 하나...
퇴원 후 2주 만에 재입원했다.
18일간 입원했다.
뇌경색으로 도합 38일을 입원했었다.
재 입원했을 때 친구들에게도 뇌경색 사실을 알렸다.
건강을 걱정할 나이들도 되었고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라는 의도로 친구들에게 알렸다.
병문안 온다는 친구들에게 부조금 부담을 주기 싫어 베지밀 한 박스씩 가져오라고들 했다.
거의 매일 친구들과 가까운 선배인 만열이 형, 기호형들이 교대로 병문안을 왔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미경이 애숙이 옥연이 삼총사는 안 받겠다는데도 끝끝내 부조금 봉투를 쥐여주고 갔다.
액수를 떠나서 마음들이 고마웠다.
베지밀 박스는 쌓여갔고 아침저녁으로 병실에 돌렸다.
재 입원 후에는 하루 세끼 식사 후 무조건 병원 복도를 돌며 운동을 시작했다.
그때 이후 버릇 들여놔서 지금도 매일같이 하루 5~8킬로를 걷는다.
38일의 병원생활을 끝내고 퇴원한 후 며칠 있다가 아산병원 심장내과 박승정 교수에게 진료예약했다.
이전 병원의 심장내과가 못 미더웠고, 관상동맥 폐색이라는 게 감기 같은 병도 아니라 3차 병원의 진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박승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을 하셨고, 관상동맥질환에 있어서 세계적 권위자이시다.
큰 병은 역시 아산병원, 삼성의료원, 연세세브란스 등 3차 병원을 가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관상동맥조영술을 해서 파악된 상태가 완전 폐색인 혈관을 뚫을 수 있다고 했고, 일단은 폐색된 관상동맥 옆의 또 다른 관상동맥에 스텐트 시술이 급하다고 했다.
12월 24일 1일 입원해서 2개의 스텐트를 삽입했다.
완전히 막혀있는 관상동맥은 당장은 입원실이 없어서 그 이듬해 3월 중 2~3일 입원해서 뚫기로 했다.
그 이듬해 3월 입원해서 검사해 보니 완전 폐색된 관상동맥 쪽에 이어지는 심장 부분이 죽어있다고 했다.
심장의 죽은 부위에 갑자기 혈액이 공급되면 부정맥이 올 수도 있다고 해서 폐색된 관상동맥은 안 뚫기로 했다.
약물치료를 지속하기로 했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약물치료나 스텐트 시술이나 관상동맥 우회술 수술이나 예후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다.
매일같이 걷기 운동을 많이 했고 식단 관리도 철저히 했다.
트랜스지방은 철저히 안 먹었고, 밥도 현미 2컵 귀리 2컵 해서 먹었다.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은 은찬이가 현미는 인간이 소화할 수 있는 곡물이 아니라고 해서 지금은 쌀 1컵, 귀리 2컵, 늘보리 1컵으로 해서 밥을 지어먹는다.
한때 어린 왕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은찬이는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한 철인이다.
운동과 식단 관리를 철저히 하다 보니 건강 상태가 많이 개선되었다.
뇌경색 입원 시 7.9였던 당화혈색소가 5개월 만에 5.0이 되었다.
당화혈색소는 3개월의 혈당 평균치로 6.5 이상이면 당뇨 판정을 받는다.
면이며 떡 등 먹고 싶은 거 다 먹는 지금도 5.3으로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그래도 당뇨약을 안 끊는 것은 혈액관리 차원에서다.
주저리주저리 지극히 사적인 투병생활기가 길어졌다.
뇌경색으로 인한 일상이 된 불안감류의 감정들, 이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인 무념수행을 얘기하다가 삼천포로 한참 빠진 거 같다.
앞으로도 나는 항상 무념수행을 할 것이고 변함없이 생각을 얼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