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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란 전쟁의 역사적 뿌리와 현재의 충돌





6월 13일 새벽 200대 이상의 이스라엘 전투기가 이란을 공격했습니다. 100여개의 목표물에 약 330개가 넘는 폭탄 등을 투하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란의 나탄즈, 이스파한 등의 핵시설이 피해를 입었고, 이란 정부군의 주요 인사들과 핵 과학자들이 정밀타격으로 인해 대거 사망했습니다. 이러한 군사 행동은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 농축을 진행하며 핵 보유 능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이스라엘의 즉각적인 대응으로 해석됩니다.




이란은 이스라엘에 보복 응징으로 드론 공격과 탄도 미사일을 이용해서 텔아비브와 그 인근 지역을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드론 공격은 어느 정도 막아냈습니다만, 탄도 미사일의 경우는 전천후 이동식 방공시스템인 아이언돔이 다 막아내지는 못한듯합니다.




미국은 전략 폭격기와 공중 급유기를 포함한 중요 전략 자산들을 중동 지역으로 이동시키고 있으며, 중국의 경우 자국 대사관 직원들에게 철수를 명령했습니다.




이란 이스라엘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작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나 에너지 인프라 타격 등의 변수가 상황을 급격히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위치도 안다면서 무조건적 항복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마도 외교적 중재를 시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양국의 전쟁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다양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장기적인 교착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며, 이는 글로벌 경제와 투자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은 복잡한 국제 정치와 경제적 요인들이 얽혀 있으며, 단기간 내에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입니다.




이란 이스라엘 전쟁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갈등이 그 원인인 듯합니다. 그 갈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20세기 초 역사적 배경을 살펴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은 아랍 민족주의자인 후세인에게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 아랍 봉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전후 아랍인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기로 약속합니다. 이것이 맥마흔선언(McMahon Declaration)입니다.




그리고 1916년 영국은 이라크와 요르단을,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세력범위로 하고, 러시아에게는 터키 동부를 주고, 팔레스타인은 공동관리하기로 한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을 맺습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3국 협상이라는 모종의 동맹관계를 출발점으로 했던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려고 했던 영국, 프랑스 간의 밀약이었습니다.




또한 1917년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을 지원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데 동의한다고 발표했는데 이게 바로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입니다.




영원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맥마흔선언, 사이크스-피코 협정, 밸푸어 선언. 이렇게 삼중 플레이를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아랍인들과의 약속, 영국과 프랑스와의 밀약, 유대인들과의 약속. 이로써 하나의 땅에 두 민족이 약속을 받았습니다. 유대인에게는 귀환의 희망, 아랍인에게는 배신의 분노를 안긴 후 영국은 유엔에 관리를 일임한 후 나 몰라라 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분쟁과 테러를 반복하게 됐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대거 이주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아랍연맹과 이스라엘 간에 1차 중동전쟁(이스라엘 건국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고 75만명의 팔레스타인사람들이 난민이 됩니다. 이후에도 1973년 4차 중동전쟁까지 팔레스타인 난민화는 가속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중동 지역은 크고 작은 분쟁들이 지속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긴장 고조 및 군사적 충돌 위기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1982년 레바논에 이란의 지원으로 시아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Hezbollah)가 탄생합니다. 1987년에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수니파 무장단체인 하마스(Hamas)가 창설됩니다.




수니파는 시아파와 더불어 이슬람의 종파 중 하나입니다. 전 세계 무슬림의 약 83%가 소속된 이슬람 종파입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이슬람 사원, 모스크도 수니파 사원입니다.

이슬람권에서 최고 종교 지도자를 겸하는 보편 군주를 칼리파라고 하는데, 7세기 이슬람의 대분열 때 시아파가 4대 정통 칼리파 알리와 그의 후손들만을 진정한 칼리파로 추종하면서 발생하였다면, 수니파는 공동체에 의해 선출된 칼리파라면 무함마드의 혈통이 아니라도 칼리파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는 무함마드, 영어식 표기로는 마호메트(Mahomet)입니다.




무함마드의 사촌 동생이자 큰사위이자 처음으로 이슬람교로 개종을 한 남자가 바로 알리라는 사람입니다. 무함마드의 적통 후계자가 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적통 후계자인 알리가 무함마드 사후에 바로 후계자가 되지 못합니다. 알리는 바로 칼리파에 오르지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4대 칼리파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4대 칼리파에 오르고 나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암살당합니다. 그 이후 알리만이 무함마드의 적통 후계자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시아파가 됩니다.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괜찮아 뭐 어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수니파가 되는 겁니다. 페르시아 이란이 시아파의 종주국입니다. 수니파의 종주국은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극단주의 테러단체 알카에다, 탈레반, 유일신과 성전까지 대부분의 테러단체가 수니파입니다. 시아파 테러단체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정도입니다. 이후에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은 계속 만들어졌습니다. 2002년 나이지리아의 보코 하람(Boko Haram)이 생겨났고, 이라크 팔루자를 거점으로 1999년에 창설했던 유일신과 성전은 2014년에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즉 IS로 그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슬람 극단주의는 이슬람을 내세워 민주주의, 자유주의를 반대하고 테러리즘을 일삼는 집단의 사상이나 심리를 의미합니다.

이슬람교에서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원래의 이슬람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인 이슬람 근본주의보다 더 강도가 세고 성향의 치우침이 심합니다. 극단적입니다. 2001년 911테러를 일으킨 빈 라덴이 대표적인 이슬람 극단주의자입니다.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선전포고 없이 대규모 침공 공격(5,000여발의 로켓)을 감행했습니다. 2014년 7월 가자 지구 분쟁 이후 9년 만에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면전입니다. 수니파 국가(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 카타르, 요르단,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수교 또는 관계 개선에 위기의식을 느낀 하마스의 급습이었습니다.




2024년 레바논 국경에서의 헤즈볼라(Hezbollah)와 이스라엘 간 충돌은,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더욱 불안정해진 중동 정세 속에서 북부 전선을 열며 전면전의 위기를 불러온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2025년 6월 13일의 이란 이스라엘 전쟁은 하마스의 2023년 10월 기습과 2024년 헤즈볼라의 북부 공격에 이은 중동 분쟁의 최종 격화 단계로, 두 국가 간의 직접 충돌이 현실화된 역사적 전환점이자, 중동전쟁 이후 처음으로 두 나라의 전면전 양상이 전개된 사태입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이란의 핵무장을 방관할 수 없었고, 미국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으리라 추축됩니다.

2025년 이란-이스라엘 전쟁은 단순한 국지전이 아니라, 20세기 영국의 세 가지 약속이 남긴 균열 위에 세워진 분노의 절정입니다.

하마스는 불을 붙였고, 헤즈볼라는 기름을 부었으며, 이란과 이스라엘은 직접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지금, 중동은 ‘신(新)냉전의 화약고’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핵무장을 주장했던 정치인도 있습니다.

우리가 핵무장을 한다면 미국은 결사반대할 것이고 주한 미군을 철수할 것입니다. 엄청난 국방비 부담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또는 위반은 곧바로 국제적 고립을 초래합니다. UN 안보리 제재, 미국 · EU · 일본 등의 경제 제재, 기술 수출 통제 등의 조치가 뒤따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우리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로, 경제 제재는 심각한 타격을 줍니다. 이란이나 북한과는 다릅니다. 핵은 얻는 순간 권력이 되지만, 동시에 고립과 희생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미국의 전략자산(핵잠수함, 전략폭격기 등)과 핵우산 아래에 있습니다. 자주 핵무장을 시도하면, 미국은 확장억제 제공의 동기를 잃고,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깁니다.

일본, 대만, 호주 등 미국의 동맹국들도 핵무장 도미노 현상을 우려할 것입니다.

한국이 핵을 가지면, 일본의 핵무장론이 현실화될 수 있고, 중국도 군비 확장을 가속할 명분을 가집니다.

이는 동북아 전체의 핵 군비경쟁으로 이어지며, 우리도 상대적 안보 불안정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핵무장은 국제적 고립, 동맹 붕괴, 역내 군비 경쟁, 경제적 타격, 안보 불안의 가속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세계 최고의 재래식 전력, 미국의 확장억제, 국제사회에서의 외교적 신뢰라는 강력한 자산을 갖고 있으며, 이것을 잃고 핵이라는 상징을 얻는 것은 균형이 아닌 위험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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