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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된 미국 이야기





아마도 사오 년 전쯤, 초여름의 기운이 막 올라오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막내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어딘가 심상치 않은 말투였습니다. 이모는 느닷없이 저와 제 남동생의 법적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어보았습니다. 순간, 약간 긴장했지만 일단 알려드렸습니다. ‘드렸다’는 표현보다는 ‘알려주었다’는 말이 더 정확합니다. 저와 막내 이모는 다섯 살 차이뿐이라, 어릴 적부터 이모라기보다는 조금 철없는 누나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이모와의 대화는 늘 격식보다는 웃음이 먼저였습니다.




잠깐의 정적 후, 통화를 끝내기 직전 저는 물었습니다. “왜 갑자기 인적 사항을 물었어?” 이모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말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두 언니들이 한국에 있는 너희 조카들한테 재산을 상속하려고 하신대.” 잠시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오래전 기억의 서랍을 누군가 조심스럽게 열어젖히는 순간 같았습니다. 미국의 두 분 이모는 사십여 년 전과 사십오년 전에 이민을 떠났고, 그 이후 저는 그분들의 한국 방문 시 몇 번의 만남이 전부였습니다. 그분들의 시간은, 아마도 제가 열 살 무렵에서 멈추어 있었겠지요. 땀에 젖은 셔츠를 입고 뛰놀던 그 아이. 간혹 송편을 삼키며 웃던 모습. 두 분의 기억 속 저는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분들이 저를,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한켠이 따뜻해졌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그 재산이 제 것이라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두 분 다 자식이 없고, 남편분들마저 세상을 떠난 뒤였지만, 저는 여전히 그분들이 저보다 오래 살 거라 생각했습니다. 여자들이 남자보다 평균 열 살은 더 산다잖아요. 두 분 이모들과 제 나이 차가 열 살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재산을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이,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 이 먼 시간의 거리를 뛰어넘었다는 것이.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상속 절차를 끝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또 한 번 뭉클했습니다.




미국엔 이모들 말고도 고모님도 계셨습니다. 1960년대, 70년대, 녹색 종이에 인쇄된 영주권을 들고 많은 이들이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던 시절. ‘그린카드(Green Card)’라는 말이 아직도 낭만처럼 들리던 때.

제 고모님도, 외삼촌도, 이모들도 모두 그 무리에 섞여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고모님은 제 고등학교 시절부터 저를 미국으로 데려가려고 애쓰셨습니다. 진심이 담긴 편지, 사진 속 웃음, 전화기 너머의 다급한 호소. 하지만 저는 미국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친구, 김치찌개와 고추장이 더 좋았습니다. 낯선 나라보다 낯익은 정을 선택했던 겁니다. 아마 그때 미국에 갔더라면, 제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겠죠. 다른 도시에서, 다른 언어로, 다른 계절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 와 돌아보면, 그 선택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모들과 고모님이 보여준 삶의 방향은 언제나 따뜻한 등불 같았습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보다는, 누군가 나를 그렇게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먼 나라에서, 긴 세월을 두고도 여전히 ‘조카’라는 이름으로 마음을 건넬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어쩌면 충분히 풍요로운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들이 건넨 그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 그들이 떠나 살아낸, 그리고 저에게도 손을 내밀었던 그 미국. 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곳을, 단지 스쳐 지나간 미국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어떤 나라였는지를요.




최강대국 미국은 성립 과정부터가 정말로 지리적 축복을 받은 나라였습니다. 동쪽엔 대서양, 서쪽엔 태평양. 북쪽은 동족이나 마찬가지인 최우방국 캐나다, 사실상 형제 국가고. 남쪽으로는 미국에 사실상 종속된 멕시코와 국경을 접해있습니다. 주변에 대치하고 있는 적성 국가가 없습니다. 뒤통수 맞을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군사적으로 보면 ‘전략적 깊이(strategic depth)’가 어마어마한 나라입니다. 전략적 깊이란 군사적 개념으로 한 국가와 그 국가가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말하는 용어입니다. 그게 길면 길수록 방어에 유리합니다.

러시아의 전략적 깊이도 비슷했습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북유럽평원은 프랑스에서부터 우랄산맥까지 장장 1,600km나 뻗어 있습니다. 이 전략적 깊이 덕분에 이 방향으로부터 정복당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보급로가 워낙 길어서 1812년 나폴레옹이 그랬고, 1941년 히틀러가 이 실수를 되풀이했습니다. 지리적 입지 덕을 톡톡히 본 거죠.




오늘날 미국이라는 국가의 역사를 살펴보면 영국이 1607년 제임스타운을 건설하여 최초로 미국식민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지아주를 마지막으로 초기 13개 식민지주가 성립됐습니다. 이 13개 주는 차근차근 독립의 열망을 키워가다가 1783년 독립하게 됩니다. 미국 국기의 별 50개는 주를 상징하고 13개의 줄은 초기 13주를 상징합니다.




지구라는 행성 위에 있는 국가들의 국기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국 국기에는 별이 50개가 있고, 북한과 소련과 이스라엘의 국기에는 1개, 중국은 5개, 그레나다와 베네수엘라는 7개, 모든 국기 중 절반 정도에 천문학적 상징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문화권을 초월하고 사상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대한민국 국기에는 태극이라는 천체 상징물이 들어있습니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때인 1803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단돈 1,500만 달러를 받고 뉴올리언스가 있는 루이지애나주를 미국에 팔았습니다. 이 거래는 미국 역사상 가장 현명한 거래이자 역사상 가장 평화적이고 즉흥적으로 진행된 최대의 영토 거래로 불립니다. 명칭은 루이지애나 구매지만 현재의 미국 남부의 한 주로 있는 그 루이지애나가 아니었습니다. 면적이 무려 2,147,000 km2에 달했습니다. 이 구매로 인해 얻은 영토로 미국의 영토는 2배로 불어났고 현재의 미국 영토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합니다. 미국 역사에서 '서부 개척 시대'의 시작을 알린 가장 중대한 영토 변동이었습니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계속 전쟁을 치르던 나폴레옹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거래였습니다. 그 끝도 없이 넓다는 나라가 그렇게 한 번의 거래로 확장됐다니, 허무하다고 해야 할지, 치밀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1819년에는 스페인과 대륙횡단조약을 맺으며 텍사스에 대한 주권을 스페인에 인정하는 대가로 플로리다를 넘겨받았습니다. 1845년 이전에는 텍사스는 멕시코 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의 돈과 무기, 사상의 수혜를 받은 텍사스가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텍사스는 1845년 미합중국에 귀속되었고, 1846년부터 2년간 벌어진 멕시코와의 전쟁에서는 미국과 힘을 합쳐 싸웠습니다. 이로써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그리고 현재 애리조나인 지역, 네바다, 유타, 콜로라도의 일부가 포함된 미합중국의 대륙 경계가 형성됐습니다.

1853년에는 주멕시코 공사였던 제임스 개즈던이 멕시코로부터 전쟁으로 합병하지 못한 현재의 애리조나 남부와 뉴멕시코 남서부를 사들였습니다. 이것을 개즈던 매입이라고 합니다.




1867년,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였습니다. 이 일은 당시 이 거래를 성사시킨 국무장관 윌리엄 슈어드의 이름을 붙여 '슈어드의 미친 짓'이라고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는 총 720만 달러를 주고 알래스카를 샀는데 1에이커당 2센트를 쳐준 셈입니다. 언론은 이를 두고 눈을 한 보따리 산 꼴이라고 비아냥댔지만 1896년 이 지역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그 얘기는 쑥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이 더 흐른 뒤 이번에는 거대한 유전이 발견되었습니다. 물론 러시아가 아무런 생각 없이 멍청하게 알래스카를 팔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당시 러시아의 상황을 보면 영국과의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이 한창이던 시절이었고 당대 러시아의 가장 큰 적국은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었습니다. 영국은 19세기부터 1907년까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내륙의 주도권을 두고 패권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레이트 게임은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의 전략적 경쟁입니다. 게임의 목적은 러시아에게는 중앙아시아로 남하해 인도양의 부동항을 확보하는 것이었고, 영국의 경우에는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남하를 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선 영국이 더 큰 적이었고, 알래스카는 어차피 영국령 캐나다에 뺏길 바엔 미국에게 넘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1898년 미국은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군대를 파견해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은 물론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 7월 29일)으로 우리의 뒤통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일본 제국의 한국 식민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식민 지배라는 양국의 이해관계에 대한 상호 확인이었습니다.

50번째 주(州)인 하와이는 1900년 급기야 미국 영토가 되었습니다. 하와이인들의 대부분은 미국과 합병하기를 원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0년 가을에 영국은 더 많은 군함들이 절실했습니다. 반면 미국에게는 50척 정도의 여분이 있었습니다. 결국 기지 협상을 위한 구축함들이라는 이름으로 영국은 강대국이 될 수 있을 능력을, 전쟁을 계속 수행하게 하는 도움과 맞바꾸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영국 해군기지 대부분이 미국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군함과 해군기지를 맞바꾼 겁니다. 이후 영국은 최고의 강국에서 물러나 차상위 강국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제7함대를 비롯한 전 세계에 여러 해군 함대를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도 미국은 1948년부터 1951년에 이르는 동안 마셜 플랜(Marshall Plan)으로 전후 유럽 재건 비용을 댔습니다. 또한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 즉 나토(NATO) 창설을 주도했습니다.

드넓은 영토와 영해, 세계 3위의 인구, 그리고 그들을 전부 부양할 수 있는 경제력, 모든 것이 씁쓸할 정도로 거대합니다. 이만하면 신의 편애 아닐까 합니다. 그 신이 우리랑 같은 편이라서 그나마 다행인 듯합니다.




전략적 깊이, 루이지애나 구매, 개즈던 매입, 알래스카 구매, 그레이트 게임 등 그 모든 땅의 이름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그들이 건넨 기억이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그 땅을 밟지 못했지만, 그 땅 너머의 누군가는 여전히 저를 조카라 부르는 그 사실 하나로, 저는 지금도 위로받습니다.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참조

팀 마샬의 '지리의 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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