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원책담 Aug 13. 2023

망한 기획의 효과

 지구 자전축이 이동한다는 팟캐스트를 듣다가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후 변화로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있고 그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다. 그런데 극지방에서는 해수면이 오히려 낮아지고 적도 근처가 해수면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구 자전과 관련 있으며 빠르게 자전하니까 액체가 적도로 약간 쏠린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몰랐지만 그리 신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극지방은 빙하가 녹고 물도 줄어들어 무게가 줄어들고 적도는 유입된 물의 양 때문에 무게가 늘어난다. 그로 인해 지각 아래에 있는 멘틀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증가된 적도 무게로 멘틀이 눌리고 그것이 다시 극지방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지방은 땅이 좀 더 융기하고 적도의 바다는 더 깊어진다. 이렇게 극지방에서 일어난 일이 적도에 미치고 또다시 땅속에 미치고 다시 극지방으로 되돌아온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반응하여 다시 극지방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기대하며 기획을 한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틀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처음은 비슷하게 간다 했는데 어느 순간 폭주하여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반면에 처음엔 엉뚱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결과는 맞아떨어진 경우도 있다. 아무리 많은 변수를 참조하여 기획한다 해도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기는 것이 세상사는 일인데, 그다지 치밀하지 않은 나는 기획도 즉흥적일 때가 많다.



 소원책담을 처음 열 때 이 책방의 모습은 동네 사랑방 그림을 그렸다. 쉬었다가 가면서 책도 읽고 모임도 하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 그래서 집에 있던 책 중에 몇 권을 선별해서 책방에 두었다. 책 윗부분에 소원책담 도장을 찍어 새 책과 중고책을 구분한 다음, 소원책담 회원을 가입하면 빌려가도 되게끔 했다. 소원책담에서 읽다가 다 못 읽으니 마저 읽으라는 취지였다. 그래서 몇몇 분은 회원으로 가입도 하시고 책도 빌려갔다. 1달의 대여기간을 두었지만 대부분 며칠 만에 반납하셨다.


 책을 대여해 주는 서비스를 하며 기대하였던 것은 첫 번째로 재방문을 늘리겠다는 심산이었다. 책을 읽으려 오고 빌리러 오고 반납하러 오면서 카페도 들려 차도 한잔하고 좋은 책도 팔리겠지 했다. 하지만 그런 계획은 너무 순진했다. 빌려가서 반납할 때는 급하게 와서 반납하고, 책만 빌리러 오기도 했다. 1달 즈음에서 반납하지 않으면 문자를 날리는데 사소하지만 이것도 일이 되었다. 그래도 문자를 받으면 미안하다며 곧바로 반납을 하시는데 재방문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종종 문자를 해도 연락이 없는 분들이 생기고 그렇게 반납이 안된 채 분실한 책이 몇 권되었다. 이 서비스는 매출을 늘리겠다는 속셈이 있었으나 신경 쓰이는 일만 늘어날 뿐 별 소득이 없는 서비스였다. 게다가 손님들이 이 서비스를 놀랍게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도서관이 잘 되어 있어 빌려 책을 읽는다는 것이 그리 희귀하고 엄청난 서비스도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차라리 여기서만 책을 읽고 책갈피를 해서 다음에 또 와서 읽도록 했어야 했다.  그러면 이곳에서 책 읽는 카페라는 인식을 더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 때문에 엄청나게 붐비진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관리하는 양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 기획은 결과가 보였다. 치밀하지 않고 한쪽 방향으로만 그것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보기 때문에 안 좋은 것이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조그마한 책방도 꾸리기 어렵다. 어떤 모임을 기획하고 보니 사람이 모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잘 될 것처럼 보였지만 날이 갈수록 힘이 빠져 줄어드는 모임도 있다. 모객도 어렵지만 모인 회원을 유지하는 것도 다른 차원으로 어렵다. 반면에 처음에는 몇 명 모이지 않아 어떻게 하나 했다가도 조금씩 늘어 자리 잡는 모임도 있다. 그래서 자꾸 시도하며 돌아보며 바꾼다. 그래야 땅 속에 유동하는 멘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다음 기획할 때는 땅속 멘틀까지 고려하며 기획한다.

 그렇게 망친 기획도 있고 서툰 기획도 있으면서 소원책담은 성장하고 있다. 독서모임도 9월에는 4개로 늘어난다. 글쓰기 모임도 2개다. 영화모임도 준비하고 있다. 모임마다 겹치는 분들도 계시고 그 모임만 나오시는 분도 있다. 모임 색깔도 다르게 만드니 모임에 오시는 분들도 특성이 있다. 이것이 이제까지 여러 망한 기획이 가져온 꼬리에 꼬리를 문 결과가 아닐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원책담, 책잇는 모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