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에 대한 개념 정립하기
우선 제 소개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저는 16년 차 직장인이자 가치 투자를 지향하고 있는 개인 투자자입니다.
현재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swcha1977)를 운영하고 있으며, 꾸준히 기업 분석이나 포트폴리오 운용, 기타 재테크 관련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축적한 경험과 학습의 결과를 토대로, 저의 같은 처지의 직장인 투자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연재해 보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가치투자'의 정의부터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가치 투자의 창시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이 말하는 가치투자의 정의에서 출발하는 게 정석입니다.
철저한 분석에 근거해서, 투자 원금의 안전과 적절한 수익을 추구하는 행위
'이거, 너무 뻔한 이야기 아닌가요?'
이렇게 반문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십여 년 전 '현명한 투자자'에서 가치 투자의 정의를 처음 접했을 때, 저도 딱 그랬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투자 경험이 쌓이고 난 이후 다시 보니, 저 단순해 보이는 정의에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문구를 쪼개어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죠.
'도대체 무엇을 분석'하는 것일까요?
단순히'기업'일까요? 그러기에는 너무 추상적입니다. 기업의 '무엇'을 분석하는 것일까요? 그게 핵심입니다.
그건 바로 '내재가치(intrinsic value)'입니다. 또 아리송한 개념이 나왔네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A라는 기업이 있습니다. (부채를 제외한 순수한) 자산이 100억이고, 매년 10억씩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다고 가정해 봅시다. A기업의 가치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할까요? 결론적으로 현재의 자산 가치인 100억원과, 미래에 벌어들이게 되는 수익가치의 합이 될 겁니다. 특정 기업이 가지는 자산 가치와 수익가치의 합, 그것이 바로 내재가치입니다. 내재 가치 수치는 절대 가치 평가법인 DDM(배당할인모형), DCF(현금흐름할인법), RIM(잔여이익모형) 등의 방법으로 산출 가능합니다. 따라서 실질적인 차원에서 '철저한 분석에 근거해서'를 풀어쓰면 다음과 같이 될 겁니다.
투자의 출발은 기업 분석입니다. 기업이 현재 보유한 자산 가치와 미래에 벌어들일 수익 가치를 철저히 분석한 후, 절대 가치 평가법을 통해 내재가치를 산출합니다.
너무도 자주 들어 식상한 멘트부터 보시죠.
투자 원금의 안전을 강조한 멘트입니다. 그럼 어떻게 투자 원금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까요? 그건 바로 앞서 계산한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훨씬 싼 가격에 기업을 매수하는 것입니다. 내재가치와 가격 간의 괴리, 이것을 '안전마진(Margin of safety)'라고 부릅니다. 안전마진을 충분히 가져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내재가치 구성요소인 수익가치는 미래 이익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상황이 변하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마치 올해 코로나 여파로 대다수 기업들의 이익이 급감한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상황이 급변하여 애초 계산한 내재가치를 수정하게 되더라도 여전히 안전마진을 가지도록 충분히 싸게 매수하는 것이 투자 원금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일 겁니다. 물론 '도대체 얼마나 싸게 사야 합니까?'라고 물으신다면, '정답은 없습니다.'라고 애매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안전 마진의 개념은 수치적인 크기라기보다는 투자자의 자세 내지 마음가짐에 가깝습니다.
항상 기업의 내재가치를 의식하고, 상황이 변하면 내재가치 역시 업데이트합니다. 기업을 매수할 때 의식적으로 가격과 내재가치를 비교하는 습관을 기릅니다. 우리가 물건을 살 때 본능적으로 꼼꼼히 가격을 따져 보는 행위를 주식 거래할 때도 똑같이 실행하면 됩니다.
왜 하필 '적절한' 수익일까요? 고수익이 아니고요? '100% 수익률을 추구한다'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봅니다. 개인 투자자 대부분이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주식 시장에서 성과를 못 내고 있습니다. 다음 그래프를 보겠습니다.
이 그래프는 2019년 미국 주식시장의 연간 수익률과 발생빈도(기업수) 간의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은 소액으로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100만 원으로 투자를 시작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10% 수익이 난다고 해도 고작 10만 원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한방', 원금 100만 원 정도는 버리는 셈 치고,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 줄 것 같은 기업에 투자합니다. 위 그래프에서 ②번 영역이 되겠네요. 문제는 확률입니다. 100% 이상 수익을 낼 기업을 발굴할 확률은 0%에 가깝습니다. 사실 우리가 추구해야 될 영역은 ①입니다. 매우 불확실한 100% 수익률이 아니라 확실한 10% 수익률입니다.
사실 주식의 수익의 상당 부분은 행운의 결과입니다. 행운이란 요소는 개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제가 올해 100% 수익 내겠다고 목표를 세워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코로나라는 돌발변수는 불가항력적인 요소이니까요. 확실한 10% 수익을 타깃을 하다 보면 플러스 알파로 추가적인 수익을 얻는 것이지, 처음부터 높은 수익률을 좇아 테마주 등을 전전하면, 높은 수익은 커녕 원금의 안전마저 해칠 수 있습니다.
빨리 부자가 되고 싶다면, 높은 수익률이 아니라 소소한 수익일지라도 이를 달성하는 확률 내지 빈도를 높여야 합니다. 빈도가 높아질 때까지 투자가 아닌 근검절약을 통해 종잣돈을 모읍니다. 실력이 쌓여 성공 빈도가 높아지면 종잣돈을 투자하여 적절한 크기의 수익을 쌓고, 손실을 회피해 나갑니다. 그러면 복리효과에 의해 자산이 탄력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치 투자 정의를 뜯어보면서, 내포된 의미를 나름대로 재해석해 보았습니다.
가치 투자 정의 (혹은 철학)만 가지고 내일 당장 투자에 나설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투자를 하는 매 순간, 가치 투자의 정의를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무리 현란한 전략과 기술을 구사한다고 한들 토대가 흔들린다면 사상누각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