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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운 Feb 14. 2018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

계절학기가 종강한 지 3주가 지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 밖으로도 나가지 않았다. 작은 방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잠을 아주 오래, 많이 잤다. 잠들었다가 깨어나 휴대폰을 보고, 다시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 잠들기를 반복했다. 요일의 구분은 사라졌고 밤낮의 교대만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마저도 빛이 줄어들 때 눈을 떠서 다시 환해지기 시작할 때 눈을 감았다.


일주일 정도는 아팠다. 감기가 독했다. 제대로 먹은 것도 없는데 몸이 무거워서 일으킬 수가 없었다. 한 친구는 무너진 생활 패턴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진 게 이유일 거라고 추측했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원래 일 년에 두 번 감기에 걸린다. 이번이 그중 한 번이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잠드는 일뿐이었다.


자고 있지 않을 때는 컴퓨터를 했다. 유튜브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는 영상을 봤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배틀그라운드도 처음 해보았다. 하고 나면 어떤 생각도 남지 않는 일들을 무엇보다 맹렬하게 해냈다. 즐거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어느샌가 나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나 보았다. 아니면 그냥 게을러졌거나.


한 가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었다. SNS에 올릴 한 줌의 글조차도. 한 달쯤 전 소소한 글쓰기 모임에 참여해보겠냐는 제안을 받았더랬다. 2주가 지나 첫 모임에 나갔다. 주제를 이것저것 떠올려보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었다. 하얗게 뜬 화면 앞에서 아무런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 나는 그곳에서부터 실패였다. 다시 2주가 지나 두 번째 모임에 나갔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쓰지 않은 상태였다. 써야겠다가 아닌 쓰고 싶다였더라면 결과가 달랐을까.


사실은 쓰고 싶은 글이 하나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시간에 주로 뉴스를 읽었다. 네이버 메인에 올라온 기사들을 섹션별로 주욱 훑었다. 스포츠면, 연예면, 정치면 그리고 사회면. 사회면을 장식한 제목들의 절반은 슬프고 불행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정작 내 일이 바쁠 때는 세상일에 신경도 쓰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 세상의 불행을 혼자서 전부 목격한 듯한 착각에 빠졌다. 힘이 쭉 빠졌다. 수많은 불행 앞에서 나는 가만히 멈춰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모두가 나처럼 멈춰있기만 한 건 아니었다. 자신이 감내해야 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덕분에 나도 무언가를 보태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도 언어도 자꾸 정돈이 되지가 않았다. 헛바퀴를 도는 듯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용기 아래에 조그만 받침이라도 괴어놓고 싶었는데, 계속해서 실패였다.


시간은 강처럼 흘렀다.


언제부턴가 시간을 자원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낭비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비움 또는 재충전과 같은 단어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다음 기회를 활용하기 위한 도약대와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나의 시간은 그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흑백 가운데의 회색조차도 아니었다. 차라리 무색의 지대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모든 시간이 의미를 지닐 수는 없다는 사실을, 차분히 3주를 흘려보낸 다음에야 깨달았다.


오늘은 알람을 맞추지 않았는데 8시에 눈이 떠졌다. 아침을 걸어다니는 건 상쾌한 일이었다. 어째서 날씨도 조금 풀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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