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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운 Mar 08. 2018

내가 할 수 있는 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한 달 내내 지독한 무기력감에 잠겨 있었다. 내가 타인의 고통에 특히 민감한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분노하고 또 좌절했다. 누군가는 용기를 내어 자신이 입은 상처를 이야기했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동안 가해자 내지는 방관자의 입장에서 살아온 시간들이 떠올라서, 어떤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위선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 그랬다.


그저께는 김지은 씨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동안 마음이 괴로워질 것 같다는 핑계로 피해자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시청하지는 않았었는데, 한때나마 안희정에게 호감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이번만큼은 봐야 할 것 같았다. 손석희 앵커의 첫 질문에 선뜻 입을 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그분이 느끼고 있을 중압감이 내게도 전해져 오는 듯했다. 앞에는 손석희 앵커가 앉아 있고, 왼쪽에서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지금 내가 하는 말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있을 것이다. 무서워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아니다. 나는 결코 김지은 씨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성폭력의 피해자였던 적도, 위협을 느껴본 적도 없으니까. 아마 앞으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내가 느꼈다고 착각한 두려움은 김지은 씨 본인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크기에 불과하며, 내가 피해자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우습게도 나는 당연한 사실을 핑계 삼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김지은 씨가 오늘 밤은 두려움 없이 푹 잘 수 있기를 바란다는 글을 읽었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왜 한 번도 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을까. 군대에서 나는 불면증과 약간의 공황 증세를 겪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지금 눈을 감으면 내일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누군가가 나에게 위해를 가하고 말 것 같은 기분. 피해자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불면의 밤에 시달렸을까. 불안과 공포, 원망과 자책에 휩싸인 그들의 밤은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


무언가라도 하고 싶었다. 그들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도록 조금의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비록 영구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해도, 단 하루만이더라도.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음악가였다면 노래를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화가였다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재능이 없었다. 그나마 조금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있다면 글쓰기인데, 그렇다면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위로한다고, 공감한다고, 응원한다고? 그렇게 쓰여진 글은 정말 피해자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까. 스스로 무언가를 했다는 얄팍한 만족감만 남기게 되는 것은 아닐까. 글쎄, 나는 정말 아무런 글도 쓸 수가 없었다.


그때 기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왜 이제서야 떠올랐는지 의아할 정도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나는 지금껏 사회단체에 기부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늘 여유가 없으니 다음에, 다음에 하며 미루어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유명인들이 기부에 동참했다는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내가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떠올리지 못할 만큼 깊숙이 묻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직접 도울 수 없다면 대신 그렇게 하는 이들을 도우면 된다는 간단한 논리에 도달하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검색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상담과 쉼터를 제공하는 여러 단체를 찾을 수 있었다. 처음 하는 기부인만큼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었다. 한국여성의전화를 선택한 이유는 여성인권영화제를 비롯한 활동 방향에 동의하는 것 외에도, 그곳에서 진행한 여성폭력 인식개선 캠페인의 슬로건이 깊게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사소하게 넘길 수 있는 폭력은 없는 것이다. 몰랐던 사실이지만 마침 내일(3월 8일)이 여성의 날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10만원을 기부할 생각이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나름 상징적인 숫자이니까. 그러다 마지막 순간에 고민이 들었다. 나는 지금 소득이 없으니, 5만원만 내도 괜찮지 않을까. 5만원이면 3일치 생활비인데. 물론 10만원을 내지 않는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5만원이 나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금액도 아니다. 나의 소소한 행복과 타인의 거대한 불행 사이에서 오는 갈등을 나는 이제서야 경험하는 중이었다. 결국 이번에 내지 못한 5만원은 다음에 또 내기로 다짐한 끝에 결제 버튼을 눌렀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인터넷에서는 2차 가해에 가담하는 사람들과 그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들의 대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낸 돈으로 인해 누군가가 편안히 잠에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기분은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최소한 이 글을 쓰는 정도는 스스로에게 허락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랬다.


내가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한 번의 기부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으며, 또는 그런 착각에 빠져서도, 이번 일이 나의 부채감을 일시적으로 씻어내려는 시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안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일이니까. 아직도 홀로 고통을 감당하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으며, 그들의 불면의 밤은 더욱 길어질 테니까.


기부가 피해자들을 돕는 유일한 방법인 것도 아니다. 주변에서 목격한 성폭력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게 더 필요한 일일 것이고, 집회에 나가 목소리를 냄으로써 지지를 표명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일 것이다. 다만 소극적으로나마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기부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기부로 많은 것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적어도 나의 경험에 따르면, 기분은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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