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성운 Jul 20. 2018

여름에 듣는 앨범 둘(또는 셋)

요새 듣고 있는 앨범은 serpentwithfeet의 <soil> 그리고 <Call Me by Your Name>의 OST다.



serpentwithfeet <soil>


전자는 한 달 전쯤 김밥레코즈의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소개하는 글 중에서 Frank Ocean의 데뷔작을 떠올리게 한다는 부분이 관심을 끌었다. Frank Ocean의 <Channel Orange>는 오랜 시간 나의 여름을 책임져주었던 앨범이기 때문에. 그 앨범엔 여름에 어울리는 청량함도, 북적거리는 해변의 활기도 없다. 그렇지만 'Thinkin Bout You'의 도입부에서, 첼로 소리가 끝나는 순간 목소리가 문을 열고 입장할 때의 둔중한 서늘함이- 나로 하여금 여름의 플레이리스트 꼭대기에 그 이름을 올리게 만들고는 했다.  


아직도 나는 음원으로만 음악을 듣는 어리석은 버릇이 있어서, 막상 <soil>의 음원을 다운받아서 듣기 시작한 건 며칠 전의 일이다. 눈을 감은 채로 첫 곡인 whisper부터 마지막 곡 bless ur heart까지 한 바퀴를 돌았다. 바퀴를 돌다라는 표현은 어쩐지 음악을 듣는 행위를 형용하기엔 섬세하지 못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음악이 나를 싣고 어딘가로 데려갔다가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아주는 기분이 들어서 종종 쓰고는 한다.


40여분의 주행은 만족스러웠다. 나는 음악의 작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어서, 사운드가 트렌디하다거나 프로듀싱이 얼마나 뛰어난지에 대해서는 말할 처지가 못된다. <Channel Orange>을 떠올리게 한다는 주장에는 얼핏 동감할 수 있었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21세기 R&B의 계보를 들이댄다거나 아티스트의 성적 정체성을 언급해야 한다면 차라리 두 손을 들어버리고 싶어진다. 대신, <soil>이 내게 특별하게 들렸던 데는 한 가지의 개인적인 이유를 댈 수 있다.


음악을 들을 때의 또다른 나쁜 버릇은, 내가 곡의 제목에 심각하리만치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제목은 책이나 영화를 고를 때도 일정 정도의 영향을 주는 요소이지만, 특히 음악에 있어서는 곡을 대하는 태도를 심각하게 왜곡시켜버리고는 한다. 예시로는 외글자 제목('독', '춤', '향')에 대한 선호(라고 쓰고 집착이라 읽는다)를 들 수 있는데, 다분히 비이성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진작 포기한 채로 받아들이고 있다.


<soil>의 모든 곡 제목들은, 앨범 제목부터가 그렇지만, 소문자 알파벳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대문자 알파벳과 소문자 알파벳 중에 하나만을 사용해야 한다면 나는 단연코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아니, 이건 왠지 공정하지 못한 비교 같으니 다시 적어보겠다. 그러니까 나는 맨 앞의 글자만이 다른 글자들과 달리 대문자로 표기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문자는 소문자에 비해 너무 크고 위압적이어서 동글동글한 소문자들을 기죽어 보이게 한다. 단지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특권적인 위치를 부여받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맨 앞의 글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현대의 라틴어 알파벳 체계 전체와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으므로 그 글자만을 비난하기로 한다.


그런 이유에서, 소문자 알파벳으로만 이루어진 제목을 가진 <soil>의 곡들은 비교적으로 무해한 느낌을 준다. 비단 제목뿐 아니라 serpentwithfeet의 목소리에서도 무해함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그 무해함은 무해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개인의 것이 아니고, 난폭한 세상 속에서 신음하는 개인이 안간힘을 쓰면서 지켜내려고 하는 무해함이었다.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운 채로 여러 바퀴를 반복해서 돌았다.



<Call Me by Your Name> OST


그리고 <Call Me by Your Name>의 OST 앨범이 여기 있다. 이 앨범은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영화 자체에 대한 그들의 감상과 무관하지 않을 테다. 사실은 아주 강하게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편, 멜로 영화에 대한 감상이라는 건 지나치게 개별적일 수밖에 없고, 그러므로 OST에 대한 소감 역시도 개별적일 것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따라서 나는 이 앨범의 근사함을 설명하는 데에도 어떤 보편의 논리를 가져오는 것을 포기한다.


최근 한 자리에서, 여름에 산이 더 좋은지 아니면 바다가 더 좋은지를 두고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원래는 바다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작년에 크로아티아를 다녀온 이후로 바다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말을 마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이상하게도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는데,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요즈음 내가 잠에 들기 전에 반복하는 루틴이 하나 있다. 양키캔들에서 산 향초에 불을 붙이고, 'Mystery of Love'와 'Visions of Gideon'을 연속해서 틀어놓은 다음, 불꽃이 방 전체를 일렁거리게 만드는 걸 바라보다가 잠에 드는 것이다. 물론 8분이라는 시간은 잠에 들기에는 조금 짧아서, 'Visions of Gideon'이 세 번째로 재생될 쯤에야 눈이 완전히 감기고는 한다.

원래 OST라는 것은 영화 속의 장면과 일대일 대응을 이루며, 각각이 대응되는 장면과 아주 단단하게 결합해 있어서, 나로서는 영화가 주는 감흥을 배제한 채 온전히 곡만을 감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결합을 곡의 자유로운 감상에 대한 제한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영화 속 시공간의 분위기와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다는 식의 화법도 가능하다. <Call Me by Your Name>의 배경은 대부분 여름인 만큼 모든 곡이 여름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굳이 이 두 곡을 고른 배경에는 Sufjan Stevens라는 교집합이 있다. 앞서 언급했던 '무해함'의 돋보기를 한 번 더 사용하자면, Sufjan Stevens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무해함은 차라리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통과해 날아온 것만 같다.


둘 중에서도 'Mystery of Love'는, 명백하게도 여름 산기슭의 노래다. 이것은 아주 엄정한 사실이어서, 문장 그대로를 인쇄해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아도 좋을 정도다. 여타의 반박은 가능하지 않다. 위에서 OST에 대한 소감이 개별적이니, 보편의 논리는 적합하지 않으니 어쩌니 했던 말들은 모두 무시해도 좋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아니면 고개를 끄덕이는 법조차 잊어버린 채, 엘리오- 올리버- 하면서 입으로 조용히 외는 중이거나.


그날 밤 나는, 바다가 좋다고 말했던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내 말을 번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잠에 들었다. 이번에는 음악이 나를 싣고 더 멀리까지 달려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이탈리아 북부의 계곡에 내려다주는 기분과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