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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Jul 13. 2018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어

최근 하늘이 아름다운 김에.

근래 간헐적으로 내린 비 때문일까. 일본으로 향한 태풍의 발자취인 동풍 때문일까.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하늘이 며칠씩이나 계속된다. 초여름까지 가득했던 미세먼지가 사라진 하늘을 보며, 원래 하늘은 꽤나 높고 맑다는 걸 새삼 기억한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짧아지는 밤과 '52시간제' 덕택에 때마친 줄어든 근무 시간 덕택에, 출퇴근길에도 푸른 하늘을 마음껏 감상하는 호사가 더해진다. 그래서일까. 간혹 가던 발걸음을 멈춘 채 하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기분이다. 내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건 남들에게도 그러하다는 당연한 교훈을 되뇌어 본다.

`18.07.12 과천의 하늘, 그리고 같은 날 인스타그램


대학생 때에도 유독 하늘을 좋아했다. 산 중턱에 위치한 학교는 하늘을 감상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무더운 여름도, 눈으로 덮인 겨울도 아닌 학기 중의 산은 또 얼마나 멋들어졌는지. 온 산을 수놓아 적시던 벚꽃이나 단풍을 배경 삼아 바라보는 봄 가을의 푸른 하늘은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공강 시간이면 베기 적당한 두께의 책 한 권을 챙겨 캠퍼스의 낭만을 찾겠답시고 이리저리 교정을 떠돌고는 했다.  


기억에 남을 만한 특이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학생 포탈 게시판에 누군가가 '하늘을 보는 모임'을 제안한 것이다. 스마트폰도 카톡도 없던 시절이었다. 온라인으로 교환한 번호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약속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를 신기해하며 인사를 나눴다. 낯선 이들끼리 모였으니 조금은 뻘쭘할 거라 여겼던 내 예상은 빗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 다 같이 하늘을 바라보니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시야에서 상대가 사라지니 자연스레 말도 잦아들었다. 어색하지만, 고요한, 그래서 신선했던 단체 하늘 관람의 추억이다.

학교에서 찍은 하늘


이 경험을 당시 친구들에게 말했을 때 다들 놀라거나 폭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은 이 경험이 내가 평소에도 무수히 저지르던 '특이한 시도' 중 하나로 여겼던 것이다. 당시의 나는 지금보다 더욱더 철이 없었고, 덕택에 새로운 경험에 대한 약간의 호승심같은 것이 있던 터였다. (실제로 처음 모임에 나갈 때만 해도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리라.) 서로에게 조금씩 익숙해진 어느 날, 우리는 각자가 좋아하는 하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농경대 건물 뒤편의 개울에서 밤을 담근 채 바라보는 초가을의 하늘을 좋아하던 선배가 있었다. 고시생 한 분은 조용히 하늘을 보는 걸 좋아한다며 수풀이 우거져 사람들이 쉽게 찾지 못하는 체육관 윗 언덕의 벤치를 귀띔 해주기도 했다. 천문관 뒤, 공학관 옥상, 약학대 연구원 뒷길 등 저마다의 장소, 각자의 기억이 담긴 자그마한 비밀을 공유하며 우리는 즐거워했다. 하늘 취향 외에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관계였지만, 그런 느슨함에 짐짓 마음이 동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 다시 뭣도 모르는 어수룩한 초년생의 기분을 내다보니 어느새 하늘을 보는 재미를 잊고 살았다. 새벽에 출근하여 밤에야 퇴근하는 동안,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쪽잠으로 점심시간을 보내는 사이. 어른이 된 나는 어느새 하늘을 잃고 말았다. 이걸 깨달은 건, 비서분을 도와 잠시 자리를 비운 임원의 방을 정리하러 들어간 어느 날이었다. 다른 여느 건물처럼 사각형인 회사는 층별 모서리마다 임원용 사무실을 마련해 둔다. 필연적으로 사방 중 두 면을 거대한 유리창으로 채운 임원실은 멋진 채광과 함께 하늘로 가득했다. 어른들의 세계에선 직급에 따라 허용된 하늘의 크기가 제각각이라는 걸. 머리로만 알던 어떤 사실을 체감했을 때의 기분이 그랬을 것이다. 빛이 잘 드는 남향이 집세도 비싸다는 걸 학생 시절부터 나는 머리로만 알고 있었나 보다.

서로 다른 하늘의 크기


우리는 원래 주어졌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에 적잖이 당황한다. 반면에 차츰 잃어가는 것들에는 비교적 쉽게 익숙해진다. 어느새 일정 면적의 하늘, 허락된 시간만큼의 하늘을 잊고 지낸 나도 그러했다. 잊고 지내던 사실을, 그리고 잊고 지냈다는 사실을 갑자기 좋아진 날씨 덕택에 직시해 버린 것이다. 프랑크푸르트나 캘리포니아와 같이 높고 푸른 하늘로 유명한 도시에 가면 홀린 듯 하늘을 향해 셔터를 눌러댔던 건, 어느새 마음 한 켠에서 저런 넓은 하늘은 내 것이 아니라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프랑크푸르트(左)와 캘리포니아(右)의 하늘


맑은 하늘을 만끽하며 행복해하면서도, 동시에 조금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던 건 그 때문이다. 학생 때 그렇게나 좋아했던 하늘마저 잊고 살았는데 또 무엇을 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상이 가진 무거운 관성이 사정없이 짓누르는 가운데, 나는 소중한 것 무언가를 또 잊고 살고 있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게 된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를 계기삼아 삶의 보폭을 조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보다 성큼성큼. 자잘하게 삭아가는 삶의 모든 각질에서 조금은 초연해지겠다고 결심했다. 생生의 운전대를 잡았다고 계기판 속 모든 경고등에 동일하게 긴장하지 않겠노라고. 조금은 지쳤을지도 모르는 마음 어딘가가 가벼워지면, 시야의 간격을 돌려 지나쳐 흐르는 풍경을 보겠다고 다짐한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사라지는 행복, 원래 가지고 있던 그것들에 조금 욕심을 내야지.




그리고, 카메라를 늘 챙기고 다녀야겠다. 담을 수 있다면 담고 다녀야지.

그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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