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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운 Apr 29. 2019

<엔드게임>이 슬펐던 사람들에게

영화와 영웅과 우정에 대해서

"야, 너도 마블 좋아하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블을 좋아하지 않는 이미지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진지하고 고상한 척 SNS에 긴 글을 적는 행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튼, 저는 마블을 무척 좋아합니다. <엔드게임>은 개봉일에만 두 번을 봤는데, 조조로 볼 때는 다른 관객들과 함께 울면서 박수를 쳤고, 심야로 보면서는 1회차보다 더 많이 울었습니다. <아이언맨>이 개봉했을 당시에 저는 과학자를 꿈꾸던 중학생이었으니, 정말로 성장기 전체를 함께 한 셈입니다.

과학자를 꿈꾸던 중학생은 11년이 지나 경영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경영학은 성공한 기업이나 컨텐츠의 속성을 분석해서 성공의 조건을 발견해내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고, 마블은 분명 우수사례에 포함됩니다. 하지만 애정은 기계적인 공식을 따라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전 단지 손발에서 빛을 내뿜으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멋있었을 뿐인데요. 다만 한번 발생한 애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고, 마블은 그 일을 무척 잘합니다. 영화 속 영웅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블 역시 무수한 시행착오를 수정하며 지금의 자리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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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U의 주제는 크게 하나로 수렴합니다. 비중은 달라도 모두에게 고유한 역할이 있다는 것, 그러니 함께 힘을 합쳐야만 한다는 것. 저는 이 메시지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결론으로 확장된다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승리의 과정에서 평범한 인간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영웅들은 누구나 인간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지만, 결함이 드러나는 방식조차 그들의 능력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초인적인 힘을 가져본 적도, 세계의 안위가 달린 선택의 기로에 놓여본 적도 없기에 그들의 실수와 고뇌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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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어벤져스가 구원하는 세계는 가상의 것입니다. 그들이 활약하는 배경마저 주로 미국에 한정되어 있어서, 저와 제 세계의 평화는(토니의 말을 빌려,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면) 영웅들에게 조금도 빚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영화 속 세계와 모든 방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의 20대 남성이 <엔드게임>을 보며 눈물을 쏟아낸 이유는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아래에는 <엔드게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구원자도 피구원자도 될 수 없는 관객에게 준비된 좌석은 친구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우정은 성별과 인종을 뛰어넘기도 하지만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어서기도 하니까요. 때로는 실망하더라도, 결국 누군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길 응원하게 된다면 그 사람을 친구라고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요. 저에게 토니 스타크가 그랬습니다. 우정의 깊이는 시간에 정비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유는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변화해온 자신이 더 많이 보여지기 때문일 겁니다. 마치 영웅이 되고 싶었던 중학생이 스스로의 평범함을 인정할 줄 아는 대학생이 된 것처럼요.

영화와 현실의 가장 큰 차이는 우정이 종료되는 방식에 있습니다. 현실에서 가까웠던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우리는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해본 적이 드뭅니다. 작별은 예상보다 빠른 시점에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그 과정에서 좋은 감정만을 남기기는 더 어렵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삼켜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이제 그만 쉬"라고 말하는 사람이 속으로 얼마나 많은 단어를 골라냈을지 어떻게 짐작하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하지만 영화라서, 영화인 덕분에, 남은 후회의 가능성은 "3000만큼 사랑한다"는 약속 안에서 단정하게 정리될 수 있습니다. 비현실적인만큼 온전한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카메라가 천천히 강 옆을 흐르는 동안, 애정과 품위를 지키는 작별이야말로 10년을 함께 한 영화가 친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경험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MCU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페이즈3의 마지막 작품은 7월에 개봉할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미 <엔드게임>을 한 시대의 마무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곧 공개될 디즈니+의 드라마를 비롯한 앞으로의 여정도, 최소한 지금 당장은 궁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궁금한 건 케빈 파이기와 루소 형제의 기분입니다. 그들이 해낸 일이 너무 치밀하고 대단해서 잊을 뻔도 하지만, 그들도 결국 저와 같은 사람이자 마블의 팬입니다. 아마 지구에서 그들만큼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를 사랑하는 사람도 드물 겁니다. 간혹 <엔드게임>의 장면에서 흐름이 늘어진다고 느낄 때마다, 저건 따뜻한 심장을 가진 제작자들의 아쉬움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며 혼자 납득하고는 했습니다. 전 세계가 인정한 성과를 거둔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지극히 비밀스러운 상실감이란 어떤 것일까요. 아마 저는 평생 알 수 없겠지만, 그들이 정원을 가꾸러 낙향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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