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서울대 박사 출신의 한 회사 대표님을 만나뵈었는데, 대화 내내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박사 출신이라 그런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본인이 서울대 사실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분이라서 원래도 가끔 민망한 순간이 있는데 이날은 유독 심했던 것 같다. 창업을 시작하신지는 아직 오래 되지는 않았고, 초기 시드 투자를 준비 중에 계시는데 다른 창업자에 대한 리스펙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모든 스타트업은 성장과 내실 사이에 딜레마를 느낀다. 투자에 기반한 성장은 필연적으로 빠른 속도를 최우선으로 둔다. 당장의 매출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인원을 더 늘리고 최대한 빠르게 성장하며 J커브를 그리는 방향이다. 이 시기에는 당장의 BEP는 중요하지 않다. 통장에 투자금 100억원을 쌓아놓고 아슬아슬 BEP를 넘긴 상태를 유지하는 건 결코 투자자가 바라는 방향은 아니다. 투자를 받는 순간은 그 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정도로 빠른 성장의 바퀴가 돌아간다. 물론 이로 인한 부작용도 많다. 내부 조직 문화가 무너지고, 기술 부채가 지속적으로 쌓이고, 어느 순간 지나치게 커져버린 기업가치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기업의 본분(이익)을 저버린 꿈팔이 대표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반대의 방향은 내실을 다지는 계단식 성장이다. 이 길은 어쩌면 아예 투자를 받지 않는게 더 이상적일 수도 있다. 느리더라도 차근차근 매출을 일으키고 그 매출로 조금씩 인원을 늘리는 식이다. 단기에 매출을 발생시키기에 다소 노동집약적인 일이나 섹시하지 않은 궂은 일을 맡아야 할 수도 있다. 빠른 성장을 택한 회사에 비해 훨씬 느리고,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어딘가에 위치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럴거면 스타트업을 왜하냐, 장사랑 뭐가 다르냐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위 두 방향 중 옳고 그름은 없다는 것, 과정은 어떻던 결국 살아남는게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두 방향의 중간을 택하는 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위에 언급한 대표님은 투자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매출도 없이 성장만 하면 뭐하냐는 얘기와 매출을 내고 있는 기업에게는 저럴거면 왜 스타트업을 하냐는 얘기를 같은 날에 동시에 하셨다. 악의를 가지고 하신 얘기는 아니겠지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면서 스스로는 고상하게 사업을 하고 싶어한다고 느꼈다. 아마도 라운드 돌다보면 더 처절하게 느끼시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