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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원 Jun 19. 2022

역할 내려놓기

스타트업에 있으면서 본인이 맡고 있던 역할을 내려놓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는 너무 자주 들어 귀가 아플정도지만, 스타트업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조직이고, 개인은 조직의 성장을 따라 올 수 없다. 개인의 노력으로 그 격차를 좁힐 수는 있으나, 회사가 충분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면 개인은 결국 본인의 역량이 부족해지는 시점을 맞을 수 밖에 없다. 다들 처음에는 회사의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 처하고 나면 좀 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다. 우리 회사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당장 공동창업자들부터 버거움을 많이 느끼고, 작년부터 초기 멤버들 모두가 조금은 벅찬 상황이다. 이 때 회사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은 크게 두 가지이다. 구성원의 성장 속도에 맞춰서 회사의 성장을 늦추거나, 혹은 새로운 구성원의 수혈을 통해 회사의 성장 속도를 유지하거나. 그리고 우리는 작년 하반기 후자를 선택했다.


작년 9월 20명이던 인원이 벌써 60명 가까이 늘었다. 창업 후 처음으로 외부 C레벨 수혈도 진행되었다. 회사가 커지고 새로운 리더십이 수혈되어,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의사결정 구조도 바뀌는 중이다. 많은 권한이 새로 온 사람들에게 위임되고, 새로운 사람이 본인 위로 들어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매니저 회의 구성원도 대거 정리하였다. 이미 인원이 7-8명이 넘는 회의라서 다소 어려움이 있었는데, 늘어난 C레벨까지 10명이서 회의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몇몇 초기 멤버들이 혼란을 느끼는 중이다. 다들 머리로는 이해되고 합리적인 과정이지만, 막상 닥쳤을 때의 불안감과 혼란스러움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스타트업의 대표를 포함해서 초기 멤버들은 항상 모순적인 환경에 놓여있다. 다들 큰 회사의 부품이 되고 싶지 않고 더 주도적으로 일하기 위해 스타트업을 선택하지만, 스타트업의 성장이란 점점 큰 회사와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회사가 잘 될 수록 역설적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좁아지고, 시스템은 더 견고해진다. “나 없으면 안돌아가는 회사“는 나에게 큰 효용감과 만족감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회사가 아직 성장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결국 “나 없어도 잘 돌아가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야하고, 정말 잘해서 그런 회사를 만들고 나면 더이상 내가 행복하게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아니게 된다. 마치 자녀를 길러내는 (사랑으로 키우지만, 어느 순간 자녀가 독립을 해버리면 허탈감을 느끼는 우리 부모님) 과정과 유사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사랑처럼) 초기 멤버들의 회사에 대한 애정과 헌신은 대체 불가능한 자양분의 역할을 한다. 회사가 아무리 성장해도, 결코 대체 될 수 없는 든든한 뼈대의 역할을 맡게 된다. 이 성장통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한 (초기 멤버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회사에게 장미빛 미래는 없을 수도 있다. 조금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시기지만 다같이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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