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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원 Jul 31. 2022

스타트업에서의 5년

처음 일을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회사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변화는 끊이지 않았고, 조금 적응될 만하면 또다시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 3~4년을 돌아보면 크게 네 번 정도 큰 변화가 찾아왔던 것 같다. 2018년 초,  나와 CTO 친구 둘이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학교에서 오픈 되어 있는 창업 공간에 작은 책상 두 개를 얻어 시작했다. 아직 스스로 스타트업을 한다는 인식도 없고, 팀이란 인식도 없었다. 그냥 가까운 친구와 조금 재밌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기분이었다.


2019년 초, 초기 투자를 받고 10명가량의 초기 ‘팀’을 꾸리게 되었다. 물론 멤버들 대부분이 나와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낸 지인들이었고, 처음으로 팀이라는 인식이 생겼지만 회사 같은 조직은 아니었다. 호칭도 그렇고 동아리와 회사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런 집단이었다. 일과 일상의 구분도 모호했고, 퇴근한 뒤에도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면서 하루를 보내곤 했다.


2020년 초부터 조금씩 기존 지인 풀을 벗어난 사람들이 회사에 생기기 시작했다. 나를 회사 상사로서 처음 만나게 된 분들이 생기고, 이전만큼 모두와 편하게 지내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기존 멤버들끼리도 혹여나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이전만큼 막역하게 지내기도 어려워졌다. 더 정확히는 여전히 막역하게 지내왔지만, 그걸 티내는게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이제 조금은 회사 같은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2021년, 시리즈 A와 브릿지 투자를 마무리하면서 회사의 성장은 가속화되었다. 무엇보다 조직이 커지면서 회사 내에서의 내 영향력을 많이 인지하게 되었다. 내 한 마디가 조직에 끼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전처럼 편하게 내 생각과 고민을 공유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전에는 초기 멤버들에게 편한 친구처럼 내 생각과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기 멤버들도 그 거리감을 같이 느끼면서, 나와 멀어지는 것에 대해 서운해하기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조금씩 동료와 가까운 친구 사이를 같이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2022년 올해, 시리즈 B 투자를 마치고 6개월 만에 20명이던 조직에서 50명을 훌쩍 넘겨버린 회사가 되었다. 회사의 비전과 미션, 팀별 목표 설정, 조직 문화, 평가와 피드백 등 기존에는 암묵지로 남겨진 것들을 하나 둘 씩 명문화하고 체계를 잡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더 이상 개인과 개인 사이의 신뢰만으로 운영되기 어려운 규모라는 걸 강하게 느끼고, (마치 종교의 교리 마냥) 회사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이를 선포하는 과정도 필요해졌다. 많은 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다소 본질과 벗어나 보였던 제도들이 우리 회사에도 생겨나고 있다. 


나한테 왜 스타트업을 시작했냐고 물어보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재밌는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답해왔다. 그런데 회사가 조금 커지고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나니 ‘재미’가 그렇게 중요해?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재미없으면.. 안 할 거야? 때려 치고 다른 재밌는 일 할거야?”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 더 이상 재미는 나한테 중요한 요소가 아니게 되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회사에 같이 있으니까.. 라며 위안으로 삼았었는데, 종종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과도 조금씩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재미도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아니라면 나는 애초에 왜 일을 시작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조금은 우울한 한 주를 보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분 한 분에게 너무 감사하고, 또 미안하다. 스타트업의 여정은 혼란과 변화가 끊이지 않는 길이다. 그 여정을 함께하다 보면 끊임없는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도전은 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본인 능력보다 더 큰 일과 책임으로 다가온다. 스타트업은 각자 맡은 바 역할만 잘 해내면 착착 굴러가는 그런 멋진 조직이 아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데로, 울고불고하면서 어깨 걸고 버텨왔기에 지금의 회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5년 동안 날 지탱해준 것도, 힘들게 한 것도, 움직이는 동력이 된 것도 결국 사람이었다. 앞으로의 5년은 또 어떨지.. 이제는 설렘보다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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