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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원 Aug 21. 2022

사업의 성장 단계와 조직 운영 방식

성과, 보상 그리고 복지

아직도 2019년 말 첫 연봉협상을 준비하던 때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회사 한번 다녀본 적 없이 창업을 했다 보니 인생의 첫 연봉협상을 대표 입장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부족한 환경에서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을 깊게 했는데, 종착지는 조직의 보상 체계와 운영 방식은 비즈니스의 성숙 단계와 때 놓고 얘기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스타트업의 연봉협상은 특히 더 어려운 면들이 많다. 우선 회사의 업력이 짧다 보니 내부에 연봉에 대한 상세한 기준 혹은 사례가 부족하고, 연봉/성과급 이외에도 스톡옵션이라는 독특한 보상체계가 존재하며, 대체로 영업 적자 상태에서 투자금이 주된 재원이라 대표가 직원을 사랑하는 만큼 연봉을 챙겨줄 수도 없다. 그럼에도 스타트업 업계의 연봉 인상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스톡옵션과 같은 부가적인 보상책을 제외한 연봉 인상률만 보더라도 두 자릿수 인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이직 시에는 15-20%대 인상도 자주 보인다. 중소기업 전체 평균 인상률이 5-7%, 공무원 조직은 5% 미만 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스타트업의 두 자릿수 연봉 인상이 가능한 이유는 성장 중심 조직이기 때문이다. 올해 10명인 회사가 내년에 20명, 내후년에 50명을 기대하고 있다면, 지금 10명의 연봉 혹은 연봉 인상률이 얼마나 중요할까. 물론 기업은 항상 비용을 줄이고 싶겠지만, 냉정히 따져서 회사의 성장에 도움만 된다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성장은 회사의 미래 재원을 의미하고, 이는 제한된 재원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없애준다. 여기서 성장을 기대하는 조직이 꼭 작은 기업일 필요는 없다. 직원 1000명이 넘는 토스가 여전히 스타트업을 표방하고 성장을 앞세우는 이유도 이것도 무관하지 않다.


반대로, 매년 100억 벌어서 80억을 쓰고 20억을 남기는 조직, 관리 중심 조직은 전혀 다른 운영 방식을 가진다. 회사의 매출은 올해도 100억이고, 내년에도 100억이다. 회사에 수십 명의 직원이 있고 해가 지나면 연봉이 오르지만, 팀 혹은 회사의 전체 비용은 유지하거나 오히려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즉, 개별 연봉은 오르지만 연봉이 높은 숙련 근로자가 나가고 연봉이 낮은 신입이 새로 들어옴으로써 비용을 맞춘다는 뜻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두 자릿수 연봉 인상은 불가능하다. 높아야 5-7%가 한계이다. 


목표점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성장 중심 조직은 더 폭발적인 성장을 위해 필요한 인재를 확보한다. 스타트업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인재는 회사의 성장 과정을 한 발 앞서 경험한 시니어들이다. 이들에게 주는 연봉은 단순 근무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그들의 노하우를 통해 더 빠르고 어려움 없이 성장하기 위한 투자이다. 스타트업에서 15-20%, 많게는 30%에 가까이 연봉을 인상하고서라도 사람을 데려오는 이유이다. 자연스럽게 필요한 인재상도 다를 수밖에 없다. 


관리 중심 조직은 관리 비용 최적화가 주된 목표이다. 업무 프로세스를 최적화시키거나 새로운 장비/기계를 도입해 기존 2명이 필요하던 일을 1명으로 줄인다. 또 가능한 모든 업무를 반복 가능한 구조로 개편해 연봉이 높은 숙련 근로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저 연차도 가능하게 만든다. 매뉴얼을 다듬고 체계적인 온보딩 프로세스를 통해 새로 입사한 사람이 빠르게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데 힘을 쓴다. 시스템을 통해 일하고 특정 개인의 역량에 기대는 업무를 최소화한다. 일반적인 경영학 이론 대부분이 적용되는 조직이다. 대체로 높은 워라벨과 복지, 안정감, 낮은 업무 스트레스 등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편의상 이분법적으로 구분했지만, 모든 회사는 성장 중심 조직을 거쳐 관리 중심 조직으로 옮겨간다. 새로운 비즈니스가 시장에 나타나고,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스타트업도 언제까지고 성장만 얘기할 순 없고 결국 성장을 끝내고 매출을 일으키고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다. 최근 넷플릭스의 성장성이 꺾이며 급격하게 주가가 하락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나는 성장 중심 조직에 맞는 사람인지, 관리 중심 조직에 맞는 사람인지, 혹시나 관리 중심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 왜 자유도 높은 일을 맡기지 않냐며 푸념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 개인 입장에서 회사를 고를 때도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다시 2019년 연봉 협상으로 돌아가서, 연봉을 올리는 일은 재원이 부족한 스타트업에게 항상 부담되는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나중에, 나중에 회사에 여유 생기면 연봉 올려줄게라고 하고 싶었지만, 돈이 남아 돌아서 연봉을 올려주는 날은 오지 않는다. 그때 회사가 관리 중심 조직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두 자릿수 연봉 인상은 가져가는 게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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