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조직이 치러야 하는 대가
앞 선 글(선출직과 임명직 리더)에서 수평적 조직에 대해 임명직보다 선출직 중심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실 선출직 중심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 그건 조직 내 정보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조직이 커짐에 따라 조직 내 정보의 흐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고 있는데, 조직의 위계 (수평적, 수직적) 조차 상당 부분 정보의 흐름을 통해 결정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토론이 가능하려면 개별 주체들이 동등한 수준에서 대화가 가능해야 한다. 교수와 학생처럼 지식의 차이가 일정 이상 벌어지면 토론보다는 가르침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조직 내의 논의도 마찬가지이다. 정보의 비대칭성 하에서는 구성원이 의견을 내기도 어렵고 그 의견이 반영되기도 어렵다. 즉 수평적 조직은 모든 구성원들이 모든 정보에 접근 가능하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문제는, 인원이 늘어날수록 이 전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사실이다. 많은 초기 팀이 회의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15명을 기점으로 그 한계를 느꼈다.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과 고민의 맥락을 모두와 공유를 하다 보니 구성원 모두가 지쳐가고,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되는 점은 수평적인 조직을 유지하는 것과 효율성은 때로는 같이 가기 어려운 상반된 가치라는 점이다. 효율적인 조직이란 정보를 적절히 통제하여 조직 내 R&R이 명확하고,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며 결정된 사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조직에 가깝다. 어찌 보면 커뮤니케이션의 비효율성은 수평적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마땅한 대가 일 수 있다. 반대로, 정보의 통제는 임명직 리더의 리더십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조직에서 정보는 일종의 권력이며, 구성원의 신뢰를 얻는데 도움을 준다.
더 깊게 들어가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와, 정보가 얼마나 잘 정리되어 전달되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우리 회사는 '모든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되고,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퍼블릭 채널에게 이루어진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특정 정보나 커뮤니케이션이 프라이빗하게 이루어지려면, 명확한 이유(인사, 영업 비밀 등)가 존재해야 한다. 화이트 리스트가 아닌 블랙리스트로 관리한다는 의미이다. 입사 첫날부터 CEO를 포함해서 모든 구성원의 캘린더를 볼 수 있고 C레벨 회의를 포함하여 모든 회의록은 전체 구성원에게 오픈되어 있다. 이렇게 모든 정보를 공유하면 정보의 양이 급격히 늘어나고, 늘어난 정보를 적절한 사람에게 잘 정리해서 전달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사실 후자를 잘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접근 권한을 적절히 분리시키고 정보의 전달의 채널을 일원화하는 게 훨씬 쉬운 접근이다. 정보의 투명함과 정보의 잘 정리된 전달을 모두 가져가는 건 어렵다는 게 우리 팀의 판단이다. 때문에 우리는 의도적으로 후자를 포기하고 있다. 모든 대화는 공개 스레드에서 이루어지고, 타 팀의 거의 모든 (연봉 정보 등 특수 데이터를 제외한) 대화가 퍼블릭 채널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퍼블릭 채널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이면, 누구를 태깅하고 누구를 태깅하지 않을지 크게 고민하지 않고 생각나는 사람을 태깅하고, 지나가던 사람도 그 대화와 맥락을 이해하고 스스로 등판하고 싶으면 언제든 등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
여기서 신뢰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런 구조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내가 모든 대화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필요하면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믿음과, 추후에 대화에 참여해야 할 때 앞뒤 히스토리와 맥락을 충분히 공유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한 번 정해진 결정이라도 합리적인 이견이 생겼을 때 수정해서 반영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 신뢰가 없으면 조직에서 캐캐 묵은 패싱 이슈가 발생하기 쉽다. 그리고 신뢰가 없는 조직은 손쉬운 해결책으로 모든 어젠다에 해당 리더를 태깅하거나, 리더의 컨펌이 있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식의 방안이 채택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비효율성을 강화하거나 더 최악으로 조직 간 커뮤니케이션이 경직되는 쪽으로 흘러갈 수 있다.
조직 내에 어떤 정보를 누구에게 어떤 형태로 전달하는지에 따라 조직의 성격이 결정이 된다. 모든 조직 문화가 그렇듯이 만능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택과 대가가 있을 뿐이다.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문제지만 대표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고민이고, 회사의 규모에 따라 새로운 균형점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