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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원 Sep 22. 2022

생산적인 삶에 대한 강박

열심히 살지 않을 용기 part 1

누구나 본인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준 사건들이 있다.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사건은 우습게도 중학생 때였다. 아주 행복하게(?) 이 사건을 통해 나는 생산적인 삶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때는 중학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였다. 여타 모범생과 다를 바 없던 나는 수학, 과학 경시대회부터 전 과목 내신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학생이었다. 머리는 원래 좋았고, 노력도 부족한 편은 아니었다. 그 결과 중학교 3학년 여름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이미 고등학교에 합격했으니 남은 2학기 성적은 의미가 없었고, 수시에 합격한 대학생 마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같은 학교에 합격한 친구들끼리 답안지를 전부 1번으로 찍겠다는 둥, 물고기 그림을 그리겠다는 둥 농담을 주고받던 시기였다. 평소라면 시험 최소 3주 전부터 공부를 시작하고, 서점에 나와 있는 내신 문제집을 모두 다 풀었던 나였지만, 이번 기말고사만큼은 시험 3일 전까지 책을 한 번도 피지 않았다. 그런데, 시험을 3일 앞둔 날 저녁부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걸 느꼈다. 나는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마냥 공부를 시작했고, 3일 밤을 꼬박 새워 기말고사 시험을 쳤다. 평균은 95점이었다.


두 가지 점에서 스스로에게 충격이었다. 첫째로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열심히 살지 않을 용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미루는 현명한 사람이 아니고, 설사 내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도 그게 시험과 평가의 형태로 나에게 주어졌을 때 관성을 이겨내지 못하는 묶인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둘 째는 95점이라는 점수였다. 3주 전부터 30권이 넘는 문제집을 풀고 받은 점수는 대체로 97-99점 사이였다. 3일과 3주, 고작 3점을 더 받겠다고 쏟은 지난 시간을 생각하니 아까움을 넘어 불쾌한 감정마저 들었다. 그 시간들은 과연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시간이었을까? 더 본질적인 성장이란 무엇일까?


그 후 고등학교 3년 내내 지난날의 나와 싸워왔다. 주어진 일이니 해야 된다.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고 아껴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지만 정작 본인이 왜,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모르는 강박의 삶에서, 끊임없이 나는 지금 자유로운지, 관성에 떠밀려 살고 있지는 않는지 복기하며 더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하는 삶으로의 전환기였다. 그 뒤로도 10년, 나름 그때의 교훈을 잊지 않으며 살고 있다.


사회에서 여전히 강박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분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기에 한편 존경스럽다. 나보다 경쟁에 익숙하고 공정에 민감하고 성장과 인정 욕구가 크기에 큰 성취를 이루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제는 그분들의 가치관과 삶의 양식에 온전히 공감해 줄 수 없어 미안할 따름이다. 반대로 나처럼 살아서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많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경쟁을 피하고, 규칙을 우회하며 필요하면 서있는 경기장을 바꿔버리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모든 사람의 삶에 오지랖을 부리고 싶지는 않지만, 한 번쯤 스스로 잘 살고 있나 의심이 들 때 열심히 하지 않을 용기가 없었던 건 아닌지 고민해봤으면 한다.


열심히 살지 않을 용기 part 2 불안감에 쫓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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