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와 칸나
맨드라미와 칸나
우리 집 장독 칸에는 여름이면 맨드라미와 칸나가 지천으로 피었다. 맨드라미는 촌스럽고 별로 이쁘진 않지만, 한여름의 식욕을 돋우는 데는 그만이었다. 여름이 되어 입맛을 잃어가는 할아버지를 위해 엄마가 물김치를 담글 때 맨드라미 씨와 꽃잎을 넣으면 발그스름한 색이 우러나 새콤한 맛과 함께 온 가족의 무뎌진 입맛을 되찾아 주었다. 민화에서는 맨드라미가 닭의 볏을 닮아 출세를 상징한다지만 연좌제에 걸린 우리 집안은 출세는 고사하고 공직에 발도 붙이지 못했다. 그래서 더 맨드라미를 심은 숨은 뜻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당에서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다니는 수탉의 볏과 함께 맨드라미는 내 유년의 뜰을 붉게 채워주었다.
그런데 그 옆에 피어난 칸나는 시커멓고 퉁퉁한 장독들과 함께 누구의 시선도 사로잡지 못한 채 저 혼자 씩씩하게 자라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언니가 친구 집에서 얻어다 심었다지만 꽃 같지도 않은 꽃이 왜 그리 무성하게 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한여름 소나기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나는 홀로 남겨져 마루에 덩그러니 앉아 따르는 빗줄기를 할 일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할아버지나 엄마처럼 온 집안을 둘러보다 붉게 피어난 연한 꽃잎에 끝없이 구르는 굵은 물방울과 마주쳤다. 저리도 섬세하고 연약한 꽃잎이 세찬 비에 다칠세라 마음을 졸이며 바라보다 문득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잘 알 것 같은 사람. ‘나는 밀양사람 김원봉이요’라고 당당히 외치던 엄마의 사촌 오빠 김원봉. 저렇게 칸나 꽃잎같이 붉고 뜨거운 심장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그가 속으로 삼켰을 닭똥 같은 눈물처럼 굴러내리는 빗방울. 독립군 전투에서 함께 싸우다 젊은 나이에 전사한 김원봉의 아내 박차정. 김원봉이 시신 대신 고향으로 가져온 저고리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던 핏자국.
엄마는 오빠는 추운 만주 벌판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데 나는 따뜻한 집에서 더운밥 먹으며 편하게 사니 남겨진 가족과 이웃들이라도 돌봐야 한다며 어려운 이웃들을 챙기시던 엄마. 그런 엄마를 묵묵히 뒷바라지해주며 처가 식솔들을 끝까지 돌보시던 아버지. 너른 치마폭으로 시대의 아픔을 나름대로 감싸주던 엄마를 보며 자라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로 평생의 업을 삼은 딸.
시인 이병주는 칸나가 술집 작부처럼 헤프고 천박스럽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선혈의 뜨거운 가슴과 꿋꿋한 기상으로 세상을 품어준 가슴 따뜻한 사람들을 상기시켜주었다.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이들은 물론이고 평범한 이웃으로 살다 간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혼신을 다해 살아냈기에 지켜낸 이 땅에 뜨거운 심장으로 다시 피어난 꽃.
오늘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뜨거운 피와 맑은 눈물 덕분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기억이나 할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