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들

놀림감

by 최선화

놀림감

고향 시골집에는 우리 가족 말고도 온갖 동물들이 함께 살았다. 소, 돼지, 닭, 개, 토끼, 고양이, 처마 밑의 참새와 헛간에 사는 쥐가 우리가 알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물론 이들 외에 다른 것들도 어딘가에 숨어 지낸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들 동물 가족 중에서 그래도 나와 가장 가까이 지낸 것은 개보다는 강아지들이었다. 개는 내가 좋아하는 꽃밭을 망쳐버리기도 하고 새로 산 운동화 뒤축을 자주 물어뜯어 마당 빗자루로 때려주기도 했다. 어느 의미에서 보나 우리 개는 어린 나에게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버거운 존재여서 거리감이 있었다.

우리 집에는 개가 보통 한두 마리 있었지만 새끼를 낳으면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막 낳은 강아지가 눈도 뜨지 못하고 고물고물 기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동생처럼 안고 다니며 같이 놀았다. 그러나 가족 모두의 웃음을 자아내는 모양새는 따로 있었다.

겨울이 오면 마루 밑에 멍석도 깔고 헌 옷가지도 넣어주지만 추운 날이면 밤에는 부엌으로 옮겨주었다. 아궁이에는 불기운이 남아있어 따뜻했고 마루 밑보다는 부엌이 바람을 더 잘 막아주었다. 강아지들은 추위를 피해 식어가는 아궁이 속으로 파고들어서 아침이면 재투성이가 되어 뒹굴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정말 우습고 재미있었다.

어느 날 아침 부엌에 있던 강아지들을 옮기고 불을 사르자 아이고나! 강아지 한 마리가 아궁이 깊숙이 들어있었던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나서 보니 강아지가 불에 그을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 모습은 귀엽다기보다는 안쓰럽고 미안했다.

나도 호롱불에 머리카락을 태우는 일이 더러 있었다. 머리가 타버린 흔적을 혼자 없애려다 내 머리 모양새는 쥐가 파먹은 듯해서 속상하기도 했다. 강아지와 내가 닮은꼴이 되자 어른들이 또 놀리기 시작했다.

‘강아지도 어젯밤에 같이 공부했나 보네! 너네 강아지들은 천자문도 외겠네.’ 이런 말을 들으면 내가 너무 티를 낸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어린 나와 불쌍한 우리 강아지를 놀림감으로 만드는 것도 기분 나빴다. 왜 어른들은 약한 것들을 놀리며 재미있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들의 실없는 농담이 나에게는 상처가 되어 은근히 부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도 어떻게든 반격을 가하고 싶었다. 언제까지나 당하고만 있을 수도 없었고 놀림거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렇게 어른들에게 당하고 나면 죄 없는 엄마한테 짜증과 성질을 부리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나처럼 이유 없이 당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나 개한테 화풀이할 것이 아니라 직접 당사자에게 갚아주고 싶었지만 어린 나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그날도 장난기 많은 아제가 나를 보자 놀리기 시작했다.

‘아이구나! 어젯밤에 공부 많이 했나 보네! 머리에서 누린내가 나!’ ‘강아지들도 다 탓나 봐, 보이지 않네.’

나는 순간적으로 언니의 파마머리가 생각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파마했는데요’

‘뭐라꼬? 빠마가 아닌데... 누구 솜씬지 영 엉망이구먼!’

‘요새는 이게 유행이래요, 최신 유행!’

아재는 나의 당돌함에 놀라 멍하니 바라보았지만 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당당하게 지나갔다. 뒤통수가 약간 근질거렸지만 아닌 척했다. 이제는 날 함부로 놀리지 못할 것 같아 통쾌하고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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