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저녁을 먹고 나니 모임이 있다고 했다. 그 동네에 있는 피터네 거실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비디오를 켰다. 할아버지 한 분이 무대로 나와서 강연을 시작했다. 아주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엄청난 권위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조용하게 말을 이어갔다. 처음엔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아 주위를 둘러보니 자유롭게 앉아 있는 모습과는 달리 모두가 깊이 몰입해서 경청하고 있었다.
그 노인은 “너는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점점 빨려 들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주제라면 좌, 우 또는 이쪽, 저쪽을 말하며 자신의 주장과 입장의 정당성을 피력할 것이다. 그런 식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파벌이나 학문적 갈래들에 이미 진력이 난 나로서는 약간 진부한 느낌이 들어 하품이 났다. 그래도 별도리 없어 인내심을 발휘하며 듣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노인의 이야기는 어느 편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두에서 벗어나라는 것이었다. 그 모든 편 가름에서 벗어나서 진리와 진실의 편에 서라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목말라하던 말인가? 어떤 주장도, 이론도 아닌 진리가 무엇이며 진실이 무엇인지가 나에게 가장 궁금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방관자 내지는 이방인이었다.
그렇다면 그 진리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분이 말하는 그 진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인가? 아니면 종교적 맹신이고 독선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아 궁금증만 더해갔다. 다른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그분이 말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들도 명확히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것, 저것 얘기했지만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렴풋이 짐작 가는 것은 어떤 사상이나 신념체계라기보다는 우주적 진리나 자연의 법칙과 같은 큰 흐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미 존재하는 무엇을 지칭하는 것 같았다. 일단 교조적 사상이나 신념체계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고 이상한 사이비 종교단체가 아니라는 사실에 한숨 놓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실체가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감은 잡히는 것 같지만 모호하고 알 수가 없었다.
인간들이 만든 주장과 주의, 그리고 신념체계에 대해서는 이미 진력이 나버린 상태였고, 종교적인 믿음체계도, 기독교학교와 20년 이상 인연을 맺었지만 나에게는 도무지 오리무중이었다. 몇 가지 명백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내가 왜 죄인인가? 나는 살아오면서 별로 양심에 꺼려지는 일을 한 적도 없고, 남에게 큰 피해를 준 일도 없다. 왜 멀쩡한 사람을 죄인이라고 해서 주눅 들게 하고, 죄의식을 갖게 해서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인가? 종교를 빙자해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만 이득이 될 뿐이지 않은가?
심리학에서는 자아존중감을 가지라고 하는데 왜 종교에서는 모두 죄인이라고 하는가? 예수의 죽음으로써 어떻게 우리 죄를 사할 수 있는가? 나라면 살아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감화시켜 그들을 구했을 것 같다. 예수도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안 되었던 것이지 죽으려고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의 죽음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2000년 전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한 사람의 죽음으로, 내가 지금 구원받는다며 믿으라고 하니 안 될 말이다.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 믿어야 한다고 강요하지만, 믿어지지 않고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음이란 무조건 받아들이는 맹신이 아니라 냉철한 머리를 통한 판단과 직관을 통한 선험적 인식 그리고 감성을 통한 감화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지, 수학 공식 외듯이 그냥 머리에 쑤셔 넣는 메모가 아니다. 실랑이하는 것이 피곤하고, 기계적인 설득을 듣고 있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넘겼을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차라리 부처가 더 설득력이 있었다. 우선 그는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은 너무 동떨어진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으로 스스로 수양을 통해서 도를 닦고 깨달음을 얻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선을 행했다는 것이 본보기로 삼기가 더 쉬운 것 같다.
예수의 말씀과 행동은 정말 신의 아들 같은 면모가 많지만, 그가 신의 아들이라면 나도 신의 아들이며 우리 모두가 신의 아들이지, 그렇지 않은 인간과 생명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하는 민간신앙은 바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며 생명의 근원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더구나 그가 신의 아들로서 인간의 신적인 면모를 가장 많이 회복한 사람이라면 그러면 나에게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지 않는가? 예수만큼은 아니라도 내 나름대로 내 속의 신적인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과 씨앗이 이미 내재된 것 아닌가?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그는 인간의 구세주며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는 길잡이 임에 틀림없다. 나의 이런 생각들을 이단이라 여기며 불경스럽게 여겼던 소위 말하는 기독교인들의 표정이 생각났다. 그런데도 내 생각에는 아직 변함이 없으며 나의 불경스러운 신념과 생각을 바꾸어 줄 그 어떤 무엇이나 누구도 여태 만나질 못한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신 또는 성령이 무엇인가? 불교 집안에서 자라서인지 이 모두는 나에게는 너무나 멀고 낯설며 약간 두려움을 일으키는 존재로 언제나 모호하고 아리송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성경공부와 예배시간을 통해서 배운 바에 의하면 모두가 코끼리에 대한 장님의 경험처럼 조각들이지 전체를 이해하고 실체를 알 수 있는 무엇은 부족했다. 솔직히 말해서 목사나 전도사도 명확히 그 실체를 아는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민간신앙에서 이야기하는 천지신명과 생명 그리고 바르게 살아가는 기준인 ‘도’라는 말이 더 가깝고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과 상식적인 말과는 달리 엄청난 권위와 에너지를 가졌고 그의 확신에 찬 목소리는 뭔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흡입력이 있어 나를 사로잡아 버리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 본 다른 사람들, 특히 유명하다는 사람들 누구와도 다른 어떤 무엇이 있는 것 같아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