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정한 소나무
구부정한 소나무
어릴 적 고향 집 건너편 산에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구부정하니 서 있었다. 아침마다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오며 제일 먼저 먼 산 소나무에게 눈인사를 했다, 간밤에 잘 잤느냐고. 한겨울의 추위가 맹위를 떨칠 때나 여름의 폭풍우가 몰아칠 때면 걱정돼서 문틈으로도 살펴보곤 했다. 비가 그치고 서리가 뽀야케 내린 다음 날 아침, 여전히 멀쩡한 모습으로 날 반겨주어 고마움에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우리 집 마당에는 감나무와 살구나무가 있고 뒤뜰에는 가중나무가 있었지만, 이들보다 더 내 마음이 가는 것은 저 산꼭대기에 홀로 서 있는 구부정한 소나무였다. 아마도 마루에 서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와서 그런지, 아니면 멀리 있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늙고 구부정한 모습이 안쓰러워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마음이 통하고 교감이 더 잘 되는 친구였다.
난 어릴 적 가끔 의문이 들었다. 저 나무는 왜 저기 저렇게 홀로 살고 있을까? 누가 하필이면 저기다 심었을까? 나무가 저곳에서 홀로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쩔 수 없어 그저 버티고 인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친구가 되어 날마다 인사를 했는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는 홀로 서서 옹골차고 기품 있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에게는 은근히 감동적이기도 했고 무언의 교훈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나도 허리 굽은 노인이 되어가는 이즈음에 그 나무와 고향을 떠올리면 그땐 내가 뭘 모르는 철부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소나무가 지금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 모른다. 비록 지금은 나무도 사라지고 내 고향 집도 사라졌지만, 소나무는 내 가슴에 오롯이 남아 나의 버팀목이 되고 친구가 되고 있다.
아무 일 없이 지내는 것이 사람의 가치조차 없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되고 가치를 지닌다. 산새의 보금자리가 되고 맑은 공기와 삶의 생기를 전한다. 외롭고 힘든 사람이 찾아오면 기대어 울 수 있는 품이 되고 간절한 소망을 품은 이에게는 기도가 되며 원력을 제공한다. 매인 일이 없기에 더 넉넉한 마음으로 모두를 품어주고 조건 없이 베풀 수 있게 된다.
홀로 서 있다는 것이 외롭고 고단해 보이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며 혼자일 수 없다. 바람이 찾아오고 구름이 쉬었다 가며 다람쥐와 함께 그늘에서 자란 송이버섯도 고운 향으로 코를 간질이며 장난을 친다. 나무가 가끔 기대어 하소연하는 큰 바위도 어른스러운 끈기와 침묵으로 모두를 지켜주었다.
아랫마을 아이는 나무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청년들은 꿈을 품게 된다. 우물집 여자애에게는 속 깊은 비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고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옛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즐거운 회상에 젖게 한다.
그 모양새가 구부정한 것은 세월을 따라서 순리대로 살아온 훈장으로 가슴으로 전하는 여유와 은근한 멋을 부린 예술이다. 꼿꼿한 직선보다 부드러운 낮춤과 겸손이 세월로 익은 나무의 품격을 드러낸다. 켜켜이 쌓인 껍질은 사랑을 나누고 전한 증표로 되돌아보니 모두가 고마웠고 다 축복이었음을 담담히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