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구이
생선구이
어릴 적 우리 가족은 대가족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자 우리는 할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 우리 가족의 가장 중요한 일 중 첫 번째가 할아버지 수발이었다. 삼시세끼 식사와 간식, 일상의 수발과 잠자리 챙겨드리는 일까지 온 가족이 총동원되어 정성을 다했다. 아버지는 읍내 갔다 오실 때마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실만한 귀한 것들을 구해서 자전거에 싣고 오셨다. 어머니와 언니들도 모두 나서서 할아버지의 식사를 정성껏 돌봤다. 어린 나까지 할아버지가 세수하실 때는 양칫물과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식성이 까다로운 분이셨다. 게다가 정확하기로는 저울 같았다. 밥이 한 숟갈 모자라면 더 가져오라 하고 많으면 정확히 남기는 분이셨다. 그래서 솜씨 좋은 어머니도 늘 긴장하셨다. 할아버지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언니들도 각자가 맡은 일을 정확히 해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덜렁대는 셋째 언니가 그만 할아버지의 생선을 태워버렸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져 버린 것이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물러날 최 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 다급해진 언니는 모든 사실을 숨긴 채 어떻게 해서든지 사태를 수습해 내야 했다. 언니는 타버린 생선껍질을 발라내고 옆에 있던 누름 숭늉 한 숟갈로 바싹 말라버린 생선을 촉촉이 적시고 나서 뒤집어서 다시 구워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상을 올렸다.
식사를 마친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 ‘이제부터 생선은 셋째가 구워라’였다. 놀란 어머니와 다른 언니들이 ‘너 생선 어떻게 구웠니? 뭘 어쩐 거야?’ 라며 다그쳐 물었지만 작은 언니는 결코 입을 열지 않고 혼자만의 특급 비밀로 간직했다. 비법은 누름 숭늉이었다. 고소한 숭늉이 생선의 비린내를 잡아주고 뜨거운 물기로 속을 촉촉하고 쫀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양반들은 결코 생선을 뒤집어서 먹는 법이 없기에 타서 발라낸 부분이 노출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 후로도 셋째 언니는 생선을 구울 때면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석쇠를 온몸으로 가리고 혼자서만 구움으로써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사랑방 돈 궤짝 문을 솔찬히 만지작거렸다고 한다.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언니도 결혼해서 부산에서 유명한 생선구이 식당에 식사하러 갔다가 주방장이 생선 굽는 모습을 보고 언니가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그 옛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즉석에서 고안한 언니만의 비법을 어떻게 주방장이 알아내서 돈벌이를 하는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생선의 비린내를 잡고 맛있게 구울 수 있는 비법을 알아낸 후에도 그것이 얼마나 유용한 방법이라는 것을 언니도 우리 식구 누구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어떤 사정으로 언니가 생선구이 집을 열었다면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같으면 창업이다 1인 기업이다 하며 자신만의 기술을 펼쳐나갈 수 있는 비법으로 새로운 도전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작은 비법과 기술도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여성들도 이런 도전에 참가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이루어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언니 혼자만의 비법도 세월 따라 변해서 누름 숭늉 대신 소주와 레몬으로 냄새를 잡는다는 것만 달라졌을 뿐이다. 덜렁대는 언니였지만 엄청난 위기 앞에서 그 순간의 지혜와 기지가 발휘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어떤 기회를 놓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