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무리하며
한 달 조금 넘게 글을 이어오다 드디어 마친다는 안도감이 먼저 든다. 사실 이 글은 40년 전 처음 꿈을 꾼 그때부터 조금씩 기록해서 모아 왔다. 수십 번의 수정과 첨삭을 계속해온 글이다. 그리고 공개할 곳을 찾아왔지만 탐탁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이제야 펼치게 되었다.
글의 내용으로 볼 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주관적 세계에 치우쳐 있어 염려하는 바가 많았다. 그러나 주관적 태도의 보편성이라는 측면에서 정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가져 보았고 잘한 일이라 여겨진다. 한 사람의 정직한 표현이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깊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상담과 심리치료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관적 세계인 종교관과 우주관 그리고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은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예민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더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이 편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대중에게 열어놓음으로써 누구든 원하면 스스로 찾아가며 읽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큰 안도감이 드는 또 다른 이유는, 뭔가 내가 꼭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다. 마치 미루어 오던 숙제를 해치운 홀가분한 기분 같은... 그러면서 스스로도 다시 그런 경험을 되새김질하며 소화해 내고 숙성과정을 가질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 글에 대한 깊은 책임감도 다시 인식하게 된다. 내가 만든 작품은 오로지 나만의 책임이며 그보다 더 글로 표현한 것들을 실천해야 하는 깊숙하고 가볍지 않은 책임감이 다가온다. 나 자신과 우리 모두가 신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는 일은 가볍지 않은 깨달음이다.
소설이라는 장르보다 수필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가상이나 환상이 아닌 실생활에 근거한다는 점 때문이다.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본인의 경험치를 넘어서지 못하는 소심함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그래서 더 모두 앞에 다 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 자아 탐색이라는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에 주어진 큰 행운이었고 축복이었다. 사춘기부터 그렇게도 알고 싶었던 자아에 관한 이해와 가슴의 치유를 통해서 일상의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은 나의 삶을 지금껏 유지해온 원동력이었다. 만약 이런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면 아마도... 더 생각하기도 싫다. 그래서 나를 먼저 구해주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여행이고 모험이었기에, 다른 누군가에게도 비슷한 도움이 될 것 같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비록 다는 전하지 못한다 해도 맛보기 정도는 될 것이라 여기며. 그리고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와 나눔이 지속될 수 있는 행운이 한번 더 주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사실 여기에서는 그 첫 단계만 나눈 것으로 끝맺음을 하게 되었다. 더 확장되고 이어지는 나눔과 깨달음이 삶과 함께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을 읽은 누군가는 더 여기에 관해서 쓰라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생활 속에서 그런 삶을 이어가고 살아가는 것은 각자 개인 몫이며 책임이다. 영적 자립과 개인의 결단, 주관적 노력 없이 타인이나 다른 것에 의존한 단계는 이것으로 족하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발로 딛고 일어설 때 더 깊은 이해와 성찰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과 근원적 사명에 대한 인식과 본인 자신의 길과 희망을 일구어가고 새길을 만드는 일은 스스로 닦아가고 마련해 나가야 할 일이다. 이러한 과정에 친구가 되어주고 손잡아주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멋진 삶이라는 여행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험에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그리고 끝까지 여행에 참여해준 분들께 큰 감사를 드린다. 그분들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