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들

가투 놀이

by 최선화

가투 놀이

우리 가족은 시를 좋아하고 시조에 능하다. 우리 형제뿐만 아니라 조카와 질녀들도 시조를 잘 외우고 시를 가까이한다. 여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다. 엄마는 어릴 적 우리와 가투 놀이를 즐겼고 손자들이 와서 심심하다면 가투를 가르쳐 주셨다.

엄마가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와 친구들이 사랑채에 모이면 주인상을 받고서부터 으레 가투 놀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친구분들과 노는 모습을 보며 자라서 자연스럽게 귀동냥으로 시조들을 외우게 되어 시조와 한시에 능했다.

가투는 우리 전통 놀이로 여러 가지 시조를 한 줄씩 나누어서 카드처럼 만들어 놓은 것으로 카드를 맞추어서 시를 완성하는 놀이다. 예를 들면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 마라’가 한 장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면 다음 문장인 ‘일도 창해 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가 쓰인 다른 카드를 찾아서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인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를 먼저 찾아 맞추어서 시 한 수를 큰 소리로 읊으면 이기는 놀이다. 수십 가지의 시가 섞여 있기에 시조를 많이 알아야 잘 맞출 수 있다. 그래서 놀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조를 외우게 된다. 여기에 더해 황진이 이야기에서부터 화담 선생과의 일화까지 더해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가투는 사대부와 유학자들이 즐기던 놀이였다. 지금은 가투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우리처럼 어릴 적에 즐기던 사람들도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조상들은 노는 법도 참 우아하고 고상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시조를 많이 알다 보니 어릴 적 나를 설득할 때도 어머니는 시조를 인용하기도 했다. 내가 모나게 굴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더렁 칠이 얽혀진들 어떠하리’라며 하여가를 외웠다. 나는 그래도 이성계의 반역에 굴복하지 않는 정몽주가 더 옳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친구들과 다투면 오성과 한음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가 가투를 처음 접한 것이 여섯 살 때쯤으로 생각된다. 시골에서 자라다 보니 유치원에 다니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엄마가 나에게 가투에 나오는 시와 시조 그리고 사자성어를 집에서 직접 가르쳐주셨다. 이렇게 시와 사자성어나 인물 이야기를 통해서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을 어릴 적부터 가르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좋은 교육이었고 가르침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다 보니 고3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고시는 이미 다 통달해 있었고 사자성어도 능숙했다. 어릴 적 엄마로부터 배울 때는 재미난 놀이로 알았는데 그게 고3 공부에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 시조를 가까이하다 보니 지금도 자연스럽게 시를 좋아하고 즐겨 읽게 되었다. 내가 시조놀이를 할 때도 한글을 다 알지 못하고 시조를 먼저 외우게 되었다. 시조를 통해서 한글을 익힌 셈이다. 우리 질녀도 한글은 다 모르지만 시를 먼저 외우고 글자는 글이 아니라 도형으로 인식해서 함께 놀이를 즐기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앉기만 하면 컴퓨터 오락에 빠진다. 게임의 내용도 참 거칠고 폭력적이어서 아이들의 여리고 예민한 감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되기도 한다. 부모는 아이가 가지고 노는 놀이가 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릴 적 우리들처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가 많지 않고 그러다 보니 서로 간에 소통도 적고 나눌 수 있는 얘기도 많지 않다. 우리 가족은 지금도 그 옛날 가투 놀이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엄마와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선조들이 즐기던 전통놀이를 복원시켜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어떨까? 꼰대 같은 발상이라며 무시당하지나 않을까? 현대 시를 이런 방식을 빌어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세상과 삶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 어떤 놀이를 하는가는 아이의 성장발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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