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눈총

by 최선화


분홍빛 장미꽃 한 다발을 품은 기분은 상상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하다. 정말 그랬다. 오랜만에 기분을 풀기 위해, 마음먹고 산 장미꽃 다발은 나를 짓누르던 모든 스트레스를 잠시 잊게 했고 그 향기만으로도 황홀했다. 아마도 그런 행복한 취기 때문이었는지 평소 다니던 길을 놓쳐버리고 엉뚱한 길을 헤매다 겨우 출구를 찾게 되었다.

광장으로 걸어 나오자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어수룩하고 허름한 모양새의 사람들이 뭔가를 기다리는 듯이 군데군데 모여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약간 마음이 쓰였지만, 버스나 다른 무엇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 여기며 내 갈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옆으로 계속해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둘러보니 그들 모두가 장미꽃 다발을 안고 나오는 나를 마치 처음 보는 이방인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수 십 명의 남자들이 모여있는데 내가 혼자서 꽃을 들고 지나가자니 장미의 가시만큼이나 따끔거리는 시선을 느꼈다. 얼른 상황을 파악해 보니 그들은 노숙자들로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만족스럽고 나를 행복하게 해 주던 장미 다발이 갑자기 부담스러워졌고 어디에라도 얼른 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버릴 곳도 없었다. 이미 나는 엄청난 시선의 감시망에 포위되어 가슴을 조여 오는 것 같았다. 그들은 끝도 없이 줄지어 서서 나와 장미를 주목하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여자로 여겨지며, 장미꽃을 살 수 있는 여유가 부럽다 못해 원망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장미꽃을 살 수 있는 여유로움이 아무리 정당했다 해도 그들 앞에서 그 순간만큼은 미안했고 죄스러웠다.

내가 갑자기 죄인이 되어 고개를 떨구고 미안한 마음으로 얼른 지나가고 싶었지만, 길은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고 꽃다발은 갑자기 어쩜 그리도 거추장스럽고 무겁게 느껴지던지... 그날 장미를 사서 자신을 위로해야 하는 내 상황과 심정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마냥 내가 부럽다 못해 질투와 분노를 넘어 거의 폭력에 가까운 원망의 눈총을 나에게 겨누었고 나는 가시에 찔린 듯한 통증을 느꼈다.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노숙자들 앞을 혼자서 지나가는 장미꽃을 한 아름 든 여자! 다시 생각해 보아도 아찔한 장면으로 나에게 더 이상의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과 본의 아니게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교차한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역 앞에 이르자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넋을 놓고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한 노숙자가 내가 들고 있던 투명봉투를 가리켰다. ‘거기 들고 있는 것 떡 아니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미 술에 취해있는 것 같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의 봉투 안을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배가 고팠나 보다. 내가 드시겠느냐고 묻자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낚아채 가버렸다.

아마도 이 기억으로 나는 순간적으로 그들에게 장미를 한 송이씩 나누어 드리는 것이, 위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이 아닌 꽃을 준다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하기에는 그들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그런 행동이 마치 그들을 조롱하는 것같이 느껴질 수도 있고... 그 장소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최선으로 느껴졌다. 스스로도 참 이기적이라 여기며, 내가 이제껏 공부하고 종사한 일에 대한 자괴감마저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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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길을 가다 꽃 파는 아주머니를 보자 자석에 끌리듯 다가갔다. 꽃을 고르다 문득 마지막으로 장미를 샀던 기억이 생각나서 장미는 고르지 않았다. 대신 순결한 아가의 숨결 같은 흰 안개꽃을 골랐다. 내 기억 속의 그들에게 사죄하는 마음과 오늘도 긴 줄로 서성이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한 마음의 기도와 염원을 담아서... 그리고 나 같은 사람에게도 가끔은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누군가에게 꽃을 사는 행동은 사치 내지는 불필요한 소비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가성비 최고의 소비 품목이다. 적은 돈으로 큰 만족감을 주며 마치 내가 부자가 된 기분이 되기에,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의 행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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