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커피와 카페

by 최선화


언제부턴가 커피와 카페가 우리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식사와 맞먹는 커피 값 그리고 주택가 골목 안까지 들어와서 새롭게 생겨나는 반듯한 새 건물은 모두 카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요즘은 밥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 것 같다. 더구나 커피에 각종 빵과 디저트가 더해지면서 다이어트 산업이 성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아침이면 꽃단장하고 다방으로 나가셨다. 호수다방, 별 다방, 꽃다방은 아침 출근 도장을 찍는 곳으로 가끔은 별 다방에 새로운 미스 킴 이야기도 하시곤 했다. 아주 어릴 적엔 왜 아버지가 아침마다 그곳으로 가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뭘 하는지 호기심이 생겨, 한번은 따라간 적도 있었다. 깨끗한 장소와 잔잔한 음악 그리고 이쁜 아가씨들의 반가운 인사 모두가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시켜준 쌍화차와 고소한 노른자는 어린 나에게도 아버지가 왜 매일 아침 그곳으로 출근하는지 이해가 갔다. 곧이어 친구들이 모여들고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지만 난 지루해서 그만 집으로 와 버렸다.


대학 시절 종로 2가 입구의 오래된 갑을 다방을 보자 그 옛날 아버지가 생각나서 친구와 함께 들어갔다. 내 기억 속 추억의 장소처럼 연륜이 배어있는 곳으로, 옛날 우리 아버지뻘의 나이 든 어르신들이 새파란 우리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봐서 얼른 나와 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나에게도 추억의 장소들이 있다. 신촌의 독수리 다방, 종로의 학림 그리고 진해의 흑백다방이다. 나의 청춘 시절을 기억하며 다시 들러보아도 큰 변화 없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어 참 고마운 곳이다.

그 시절 다방도 그 나름의 품위와 분위기 그리고 역사가 있었고 지금 다시 가 보아도 골동품 같은 세월의 멋과 향기가 유지되고 있어 좋았다. 카사노바가 돈 많은 귀부인을 유혹했던 장소로 다방과 카페의 원조 격인 베네치아의 살롱처럼.

학림에서 우리는 남학생들과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독수리에서는 수업 끝나자마자 달려가서 친구들을 만났고 흑백다방에서는 고전음악에 취했다. 지금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조용한 카페에서 그림책도 뒤지며 커피 향에 취해 카톡으로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기도 한다.


KakaoTalk_20211218_181310281.jpg



그 옛날 우리 외할아버지는 사랑방에 친구들과 모여 가투 놀이와 시조 읊기를 즐겼고, 친할아버지는 정자와 나무 아래 모여서 막걸리와 장기를 즐겼다. 아버지는 다방에서 친구나 마담과 실없는 농담과 계발 호재에 대한 소식들을 접했다. 우리는 정치 민주화와 사회문제 해결에 몰입했었다. 이렇게 세대에 따라 모이는 장소와 이야기의 주제들은 달라졌지만, 함께 만나고 나누고자 하는 열망은 변함이 없다.


커피도 얼마나 달라지고 고급스러워졌는지. 맥심 병 커피에서 새마을 봉지 커피와 사이펀을 거쳐 드립과 최고가의 커피에 이르기까지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연하고 부드러운 비엔나커피가 언제나 좋다. 위가 약한 사람이라 부드럽게 희석한 맛은 하루에 한 잔 정도는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그래도 라테보다 비엔나커피가 더 마음에 드는 것은 부드러움과 함께 생수 한 잔을 더 해 주는 배려심 때문이다.

‘키스’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클림트의 작품들이 전시된 빈의 미술관 지하 살롱은 유럽의 차 문화와 여유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그곳에서 마신 비엔나커피가 인상적이었다. 미국에서 마시는 큰 잔의 아메리카노는 나에게는 사약 같고, 밀라노에서 마시는 라테는 서서 마시니 각박해서 싫고, 그래도 클림트 그림의 향기와 더불어 마시는 빈에서의 커피가 여유롭고 격조 있어 좋았다.


그 이전처럼 최루탄 가스를 피하는 장소도 아니고 몰래 전단을 전해주는 긴장된 장소가 아닌 그야말로 편안하게 커피 향을 즐기고 음악을 들으며 쉬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곳이기에 카페는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다음 세대는 어디서 만나서 무엇을 할지 궁금하다.

하루는 청소년인 손녀에게 한옥으로 된 아름다운 카페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여기 좋지 않으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에게 뭐가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 내 속으로는 옻칠 한 기둥과 석가래 그리고 창호 문과 쪽 마루 등등 마음에 들만한 것들이 많다고 여겼다. 그러나 손녀는 ‘서빙하는 아르바이트생 오빠야가 잘 생겨서 맘에 든다.’라고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미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