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약

by 최선화


평생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했던 사람이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은 언제나 가슴 벅차다.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과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과 걱정, 그리고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 등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올해 새로운 일로 한국무용반에 등록했다.

천천히 호흡에 맞추어서 하는 동작들이라 내 나이에 걸맞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팔도 아프고 발도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발이 맞으면 손이 틀리고 손이 맞으면 박자가 안 맞아 뒤뚱거리며 엉겨버리지만 그래도 웃어가며 따라가고 있다. 이 나이에 틀리면 어떻고 안 맞으면 어떤가? 계속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젊은 사람들은 긴 머리나 쪽 머리에 고운 한복을 갖추어 입고 춤추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구석에서 기죽지 않고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한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마치 내가 지진아 내지는 장애인 같다는 느낌조차 들 때도 있다. 어째 내 몸이 이리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지... 이런 경험을 미리 했더라면 공부 못하는 우리 학생들을 더 잘 이해했을 텐데...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다 잘할 수는 없기에 서툰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그리 뛰어난 사람도 아니지만 내 경우에는 몸을 쓰는 일이 참 서툴다. 아니, 서툰 정도가 아니라 젬병이다. 그 근본 원인은 내가 심장이 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이며, 몸을 쓰는 데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아마 요즘 같으면 나는 심장병 어린이로 낙인이 찍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그런 진단도 없었고 단지, 운동신경이 무딘 아이 정도로 알았다. 그래서 아무도 나에게 낙인찍지 않았기에 장애아로 소외되지 않고 나 자신도 크게 위축당하지 않고 그런대로 함께 어울리며 잘 지내 온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 되고 너무 잘 알아서 병이 되기도 한다.

무식이 용기라고 이런 나의 사정을 모르는 초등학교 5학년 우리 담임이 홧김에 우리 반 전체에게 운동장을 몇 바퀴 돌리고 원산폭격이라는 군대식의 심한 벌을 주어 며칠 동안 학교에도 못 가고 앓아누웠던 일도 있었다. 그러나 입시 때마다 참가점수밖에 받지 못해 10점씩을 깎였지만 그래도 원하는 학교는 다 들어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비밀이 하나 있다. 고3 체력장 시험 때 우리는 800m 오래 달리기를 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한 바퀴를 덜 뛴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아이들보다 한 바퀴 반이나 뒤처져서 아무도 내가 한 바퀴를 돌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체력장이 끝나고 우리 반 친구 하나가 조용히 내게 와서 ‘너 한 바퀴 덜 돌았지’ 하고 물었다. 비밀을 지켜 준 친구가 고마웠다. 덕분에 유일하게 체력장 점수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것도 오래 달리기에서 내가... 참 아이러니하고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어릴 적 나를 만난 의사 선생님은 내 상태를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난 뛰어서는 안 되고 가만히 누워만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애가 어떻게 누워 지내느냐며 나가 놀라고 했다. 마치 시력을 잃은 아들을 골목으로 내보내며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살아갈 수 없다고 한 시각장애인 어머니처럼.

용감한 부모 덕분에 나는 장애아가 아니라 잘 뛰지 못하는 몸이 약한 아이로, 또래나 사회로부터 배제되지 않고 어울려서 살아올 수 있었다. 때로는 무식이 용기가 되기도 하고 한계를 짓지 않기에 더 나아갈 수 있게 한다. 그러니 좀 모자라도 괜찮다. 어차피 다 모자라는 구석이 있기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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