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은 해야

by 최선화


최근 어느 한 사람의 죽음으로 여기저기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리며 좀 시끄럽다. 서슬 퍼런 5공 시절 그땐 나도 이대녀였다. 역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었고 그때 마신 최루탄 가스가 지금도 내 호흡기와 눈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 시절 데모로 피 흘린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가슴 아파 차마 꺼내지도 못한다. 한때는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죄스러웠다. 그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도 피부로 느끼는 공포감을 경험한 사건들이 유독 많았었다.

비상계엄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 계엄령이 내려진 첫날밤, 남영동에서 횡단보도를 무단으로 건너다 경찰에 잡혀버렸다. 경찰은 나를 보며 대기 중인 차에 타라고 했다. 그때서야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아찔해져 살아날 구멍을 순간적으로 찾아야 했다. 나는 들고 있던 반찬 보따리를 보이며 빨리 가서 조카들 저녁 먹여야 한다며, 애들이 배가 고파 기다릴 것 같다고 빨리 보내달라고 하자, 경찰이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 비상시국에 잡히면 끝장이라고 소리치며 작은 것도 조심하라.’ 일러주며 보내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산 형제복지원에 끌려온 사람도 그렇게 잡혀 온 사람들이었고, 청송 교육대에 갔다 온 사람도 그렇게 잡혀간 사람들이었다. 그때 나를 그냥 보내준 마음씨 좋은 경찰 아저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 시절에 일어난 통쾌한 이야기가 있다. 소박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슴에 스며드는 감동으로 오래 기억된다. 나만큼이나 순진하고 단순한 내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그 시절 영부인의 특화사업으로 전개되었던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친구가 터를 잡은 곳이 하필이면 5공 시절 그 유명했던 허 씨 중 한 사람의 본가가 있는 동네였다. 그곳은 부산 초량의 시장통으로 좁은 길에 사람의 왕래가 잦은 복잡한 곳이다. 그런데 허 씨가 여름이면 본가에 휴가차 들렀고 그러면 짬을 내어 동네 주민들을 모아서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말이 좋아 간담회지 실상은 자신의 위상과 힘을 과시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정권의 실세를 만났으니 주민들은 온갖 민원과 어려움을 호소하며 요구가 많았고 비서진들이 받아 적으면 허 씨는 과장된 목소리와 몸짓으로 허세까지 부려가며 해결을 장담해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고 한다. 그러다 내 친구 차례가 되었다. 이 순진무구한 사람이 입을 열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며 공포감마저 감돌았다. 친구는 자신의 말에 그런 반응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허 선생님이 오시면 이 동네 사람 모두는 아주 불편해집니다. 길을 막아 통행도 자유롭지 못하고 차도 다니지 못하게 만드니 시장에서 장사하는 분들도 장사를 망친다며 떠날 날만을 기다린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도 아이들 버스가 다닐 수 없어 먼 길을 돌아 아이들을 등원시켜야 하니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제발 여기에 오지 말아 주세요. 다른 좋은 곳 많으니 그리로 휴가 가시고 오시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를 도와주는 길입니다.’ 그날 간담회는 그것으로 냉랭하게 끝났다고 한다.

몇몇 사람들은 친구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별일 없길 바란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때서야 친구는 자신이 무슨 가당찮은 일을 저질렀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어서 포기하며 당하면 당하는 대로 겪을 각오까지 했다고 한다. 사실 그는 실세 중의 실세로 그가 나타나면 그의 위엄을 과시하며 보란 듯이 그 집 주변의 모든 도로가 차단되어 보행자조차 불편을 겪을 만큼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허 씨 일행은 그다음 날 아침 일찍 조용히 그곳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얼마 후 집마저 처분해서 다시는 그 동네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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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꼭 해야 할 말이지만 차마 하지 않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 거나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러나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그런 말은 단순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며 그럼으로써 강력한 힘을 지닌다. 아이들의 표현이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듯이...

지금 우리가 누군가에게 아니면 우리 자신에게 꼭 해야 할 말은 무엇일까? 아니면 이 시대가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학교도 빠지면서 외치는 말이 세상에 큰 울림과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어린 소녀의 정직한 말에 소위 말하는 세계의 지도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것은 아니어도 지금 우리 사회에 이렇게 전해야 할 말은 무엇일까? 누가 그런 용기를 가질 것인가?

우리의 민주주의와 이만큼의 자유는 젊은이들의 희생으로 지켜졌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이대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는 것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금의 이대남들은 이 기회에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상투적인 정치쇼로 간주하며 냉소적으로만 대할 것인가? 아니면 꼭 해야 하지만 못하고 있는 말을 진솔하게 할 것인가? 이런 기대를 하기엔 당장 그들이 직면한 어려움이 너무 커서 다른 무엇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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