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추위에 유난히 약한 나는 어릴 적, 겨울을 이기고 피어난 민들레를 보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민들레는 나에게 추위가 물러나고 따뜻한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 같아서 노란색은 새로운 희망과 온기를 전해주는 상징이 되었다. 어릴 적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주변의 화초들을 그리며 논 적이 많았다. 민들레에 대한 나의 고마운 마음도 잘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잘 그리고 싶어도 내가 그린 민들레는 내 마음에조차 들지 않았다.
영국 유학시절 유명한 헤롯백화점에 갔을 때, 처음으로 포트메리온에 그려진 민들레를 보고서 경탄했었다. 내 마음으로 그리고 싶었던 민들레가 거기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내가 그리던 각도와 그려진 그림의 각도와 시선의 높이가 달랐다. 그때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 가지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무수히 다른 시각과 시선이 존재하며 내가 보고 아는 것은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민들레를 그릴 때마다 내 눈높이에서 보이는 것만 그렸다. 그러다 보니 전체를 그리지 못하고 노란색 범벅을 만들어 버렸다. 뭔가 잘못된 것은 알았지만 그게 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유명 도자기에 그려진 민들레는 옆에서, 밑에서 등 다양한 각도로 그려져 전체적인 윤곽과 함께 민들레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관점과 시각과 눈높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다른 사람과 의견이나 태도에 차이가 날 때마다 나는 민들레 그림을 떠 올린다. 그와 내가 다른 시각과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때로는 내가 전혀 이해하기 힘든 관점도 존재한다는 것을. 피카소의 그림은 그런 면에서 나의 상상력과 이해를 능가하며 일반인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색다른 관점을 제공해서 좋아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자신 혼자만의 생각이나 관점이 옳다고 주장하거나,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편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나는 다른 시각을 가지며 관점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판단을 멈추고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내 생각과 관점도 다양한 여러 관점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나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나 또한 내 관점에 얽매이고 구속당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내 생각조차 내려놓고 순수하게 바로 보고 다른 관점을 수용하고 이해해 보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 어차피 누구의 관점이든 그것은 하나의 가설이나 시각 또는 이론에 불과하며 진리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과 주장을 하는 나라는 자아도 내가 만든 나의 상과 이미지에 불과하며 진정한 내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나라고 생각하는 자아 개념에서조차 벗어나서 초월할 수 있는 영혼의 자유로움이 요구된다.
빅터 프랭클은 로고 떼라피에서 인간에게 최고의 욕구는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아를 넘어서는 자아초월이라고 했다. 좁은 나라고 생각하는 아상에서 벗어나서 초월적 자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초월적 자아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신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신성과 불성을 가진 존재다. 이런 우리 자신에 대한 관점보다 더 존귀한 관점은 없다. 내가 작은 이해관계에 흔들리는 소아이기보다는 이 세상의 관점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대아라는 것이다.
이렇게 초월적 자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두를 존중하고 수용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시각이야말로 나라는 한계조차 넘어서서 더 큰 전체를 수용하고 이해하게 되는 초월적 자아가 되며 그 속에서만이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