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도
아버지는 어느 면으로 보나 부러움을 산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린 딸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워낙 성격이 급하고 불같아서 버럭 소리를 잘 질렀다. 어린 나에게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완벽을 요구하다 보니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어릴 적 내가 저지른 작은 일로 아버지가 화를 내며 야단을 치려고 나를 쏘아보았다. 겁에 질려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아버지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네가 내 스승이다. 네가 날 가르친다.’라며 돌아서셨다.
아마도 아버지는 당신의 행동이 어린 딸에게 그렇게까지 공포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를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달라졌고 늦둥이로 태어난 예민한 딸을 생각해서 상당히 조심하며 살피는 눈치였다. 사춘기 적에는 어떤 일로 내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좋게 말했지만 고집을 꺽지 않자, 한숨을 길게 쉬고는 ‘네가 내 부처다. 네가 날 에비로 만든다.’고 하시는 말씀에 나도 울음으로 사과했다.
이렇게 일상의 소소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배우거나 깨닫고 도를 닦으며 사는 것이 우리 삶이다. 사람은 작고 사소한 일에 상처 받고 감동한다. 우리 삶은 작은 사건과 일들로 이어지지만 이런 일들을 통해서 진정으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익혀나간다. 이런 시시한 일보다는 뭔가 위대하고 거창한 일을 하며 살고 싶지만 그런 일은 많지 않다. 단지 사소한 일들을 거창하고 위대하게 처리해 나갈 뿐이다. 예수의 행적도 그랬다, 신의 아들이라면 더 큰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는 일상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신의 아들답고 위대하게 처리해 나가는 모습에 깊이 감동했다.
대학 때 맹장염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병문안을 오신 아버지는 측은한 마음에 어디가 아픈지, 열이 나지 않는지 살피며, 뭐가 먹고 싶은지 묻더니 다 사주겠다고 했다. 그게 아버지가 아는 사랑과 관심 표현의 전부였다. 그러다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서부터 도망갈 궁리를 하시는 것 같았다. 병실에 둘이 있어도 별 할 말도 없어 멀뚱히 서로 쳐다보고 있는 것도 사실 어색했다.
드디어 아버지는 ‘내가 대신 아파줄 수도 없으니 나는 가서 돈을 벌어서 병원비를 대는 것이 더 너를 위한 길인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그 돈이 없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물론 충분히 있지,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할 일은 가서 밀린 일을 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라며 달아나셨다. 그렇게 일에 미쳐 산 일중독자 아버지를 난 이해할 수 없었고 때로는 야속했다.
60-70년대 산업화 초기에 대한민국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지상목표였다. 그런 시대에 아버지로 인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많은 가족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의 우리 아버지의 삶이고 책임이었다. 그럴 때 철없던 나는 우리 아버지는 돈밖에 모르고 사업이 가족보다 더 중하다고 여기며, 고상한 가치를 모르는 속물처럼 생각했다. 뭔가 돈과 경제활동보다는 더 높은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여겼다.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며 그 속에서 도를 실천하고 익힌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것을 아시고 한 번은 ‘내가 그럼 조선시대 선비처럼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며 가족을 굶기며 사는 것이 더 고상하고 훌륭해 보이냐?’고 물었다.
사업을 하는 것이 단순한 거래나 노동이 아니라 도를 닦는 것과 진배없다고 했다. 책이나 말로 하는 도나 도덕보다 많은 사람을 움직이며 복잡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 나가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내 생각의 틀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업을 통해서 아버지가 얼마나 높은 도의 경지에 다다랐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내 느낌으로 사업은 그런대로 성공적이었다 해도 당신이 너무 소진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더구나 많은 부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만족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더 많은 갈구과 허기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런 얘기를 깊이 나눌 수 있기에는 함께 한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면서 나한테는 뭔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아마 내가 돈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것은 이런 아버지를 보며 자란 덕분일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삶을 통해서 나에게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해방될 수 있게 도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이라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그 올가미에 갇혀 사는지를 생각하면 진심으로 고맙게 여겨진다. 이런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기에는 그리고 그 시대적 사명과 책임도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어렸고 뭘 몰랐던 것이다.
어떤 일을 하건, 우리의 일상 자체가 도이며 배움의 과정이고 가치와 의미를 실현해 나가는 현장이라는 것도 몰랐다. 어떤 형태의 삶이건 겉보기보다는 내용과 바른 태도와 자세로 임한다면 바로 그것이 참이고 선이며 도를 닦는 것이다. 도와 진리는 저 멀리 어디에 있다기보다는 바로 우리의 일상의 상호작용과 태도 속에 있다.
매일매일 주어지는 우리의 일상이 바로 사랑과 진리를 실현해 나가는 현장이다. 많은 사람 앞에 근엄하게 서서 말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청소하고 어린애와 놀아주고 설거지를 하는 순간순간 모두가 도를 닦는 실천 현장이다. 산속 토굴에서 혼자 닦는 도보다 저잣거리에서 부딪히며 닦는 도가 더 진리에 가깝다. 말로 하고 이론과 지식으로 아는 사랑과 진리가 아니라 삶 속에 녹아나서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존재가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좋은 말과 글을 차고 넘친다. 단지 그런 말과 글을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흔치 않을 뿐이다.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도 작은 일부터 아는 것을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 그런 존재가 귀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