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으로
어릴 적 감꽃이 피기 시작하면 새벽잠이 많은 나였지만 혼자서 꼭두새벽에 일어났다. 우리 집 앞 도연아지매네 마당에 소복하게 떨어진 감꽃을 줍기 위해서였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녘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찾아간 마당에 뽀얗게 내려앉은 별님 같은 감꽃을 마주하는 순간 내 가슴이 떨려왔다.
온 동네가 잠에 취해 미동도 하지 않고 닭마저 울지 않는 고요함 속에 나 혼자 온전히 맞이한 그 순간은 어린 나에게도 경건함과 신비로운 조화 그 자체로 느껴졌다. 그래서 차마 그 고요와 뭐라 표현하기 힘든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이고 한참을 지켜보며 빨려 들었다, 차마 손을 뻗어 감꽃을 줍지도 못하고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전날 밤 모두가 잠든 사이 요정과 정령들이 놀다 간 비밀의 화원에 들어선 것 같았고, 묘한 분위기에 홀려 시간조차 멈춰버린 것 같아 나도 숨을 멈추었다.
사실 감꽃은 처음엔 예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학교 갔다 오면 이미 시들어 버렸거나 목걸이로 걸고 다니다 몇 개 떼먹다가 버렸다. 그런데도 내가 목격한 신비로운 분위기와 경건함에 이끌려 감꽃이 사라질 때까지 그곳을 마치 나만의 은밀한 성소로 여기며 방문했었다. 이런 신비스러운 체험은 소중하기에 가슴속 깊숙이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렇게 삶의 경건함과 조화로운 질서를 온몸으로 느끼며 젖어들어 본 순간들이 그 후로도 더러 있었다. 특히 아름다운 자연 풍광 앞에서 말을 잊고 나라는 의식마저 놓아버리고 심취하곤 했다.
이런 순간은 삶에 인간을 넘어선 더 큰 존재를 의식하게 되는 순간으로 이런 초월적 경험은 삶에 내가 미처 다 알지 못하는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세상은 눈에 보이고 내가 경험하는 것 만이 다가 아니며 모두가 알고 싶어 하는 도나 천국 같은 현상이나 상태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주었다. 어쨌건 아직 내 경험에 알려지지 않은 나를 넘어선 더 높은 차원이 존재하며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모든 경전에 공통되게 드러나는 진리는 너와 내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로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자연스러운 조화와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호 연관성과 조화로운 질서는 더 깊이 나아가면 생명의 근원과의 연결과 창조주와의 연결로 이어지게 된다. 나는 나를 창조한 어떤 근원적인 힘으로 만들어졌고 그 힘이 나를 통해서 작동되고 있다. 그렇다면 근원과 분리된 내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도 일상생활에서는 근원과는 상관없이 작은 내 머리와 현실적 여건 속에서 적당히 살아가고 있다. 아마 그래서 깊은 상실감과 허무감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분명 중요한 무엇이 내 삶에서 간과되고 놓쳐버리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내 생명이 어디서 왔는지 그 근원을 찾아내는 것이 내 존재의 근본을 알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나는 우리 부모한테서 태어나고 성장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면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부모로부터 유래하지 않았고 더 근원적인 생명에서 나온 존재다. 그 생명이 나를 만들 때는 분명 어떤 의도와 목적을 위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나의 근본을 아는 것이 내가 누구며 어디서 왔고 왜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게 하는 출발점이다.
내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길, 성경에서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 아버지의 집은 무엇인가? 어릴 적 어머니는 아침마다 기도를 올렸다. 그 대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천지신명이라 불렀다. 뭔가 생명의 근원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 생명의 근원과 질서를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삶을 근원에다 모두 내어 맡기는 것이 나의 본질로 돌아가는 길이다.
사람들은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도 급하게 되면 천지신명과 부처님, 하나님, 조상님 모두를 찾게 된다. 그 대상을 뭐라 부르든 간에 나라는 제한된 존재를 넘어선 더 큰 힘에 의지하고자 한다. 이렇게 나를 넘어선 더 큰 근원적인 힘을 무의식적으로나마 알고 믿으며 기꺼이 내어 맡기려는 충동이 본능적으로 일어난다.
이렇게 근원을 알고 의탁하려는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진다, 왜냐하면 결국 돌아갈 곳이 그곳이기에. 그리고 그곳에서 나온 내가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루기 위해서다. 그뿐만 아니라 마지막 남은 생이나마 허투루 살지 않기 위해서다. 이런 마음은 시간의 제약성으로 더욱 절박해지며 나의 기도와 간구는 더 깊어진다.
생명의 근원에서 보면 지금 내가 느끼는 세속적인 어려움은 사소한 것들로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상사의 잡다한 문제들과 얽힘에서 벗어나서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파악하면 초월적 시각과 영혼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세속적인 한계와 굴레에서 벗어나서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나를 의탁하는 것이 나의 근본을 알아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