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지 말고
나는 어릴 적부터 잘 넘어졌다. 평지에서도 혼자서 넘어지는 일이 많았고 비 오는 날이면 계단에서 구르는 일도 잦았다. 이렇게 신체적으로 균형감각이 부족해서 넘어질 뿐만 아니라 성격적으로도 예민해서 그냥 넘기지 못하고 속으로 걸리는 일이 많았다.
예민한 딸을 기르는 엄마는 나에게 늘 마음을 너그럽게 쓰라고 가르쳤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그냥 넘기지 못하고 의문이 들거나 속으로 곱씹으며 혼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잦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개인의 성장과 독립 및 개성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피곤해지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걸리는 일은 주로 내 잣대를 들이댈 때였다. 이래야 하는데... 이것이 옳은데... 등등의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생기는 갈등과 마찰이었다. 그런 내 잣대가 옳지도 정당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겪은 뒤였다.
중학교 때 영어를 배우다 잣대(ruler)와 왕(ruler)이 같은 단어라는 것을 알고서 적잖게 놀랐다. 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왕이나 절대군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내가 만든 자로 세상을 비판하는 것은 내가 왕으로 모두가 나에게 복종하기를 원하는 전제군주와 같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머나! 세상에! 내가 그랬구나! 엄청난 교만임을 알고서 부끄럽기까지 했다.
엄마가 어릴 적, 외할아버지는 온 동네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었다고 했다. 우는 아이에게 우리 외할아버지가 저기 온다고 하면 아이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던 분이셨다. 꼿꼿한 성품으로 사대부다운 행실과 면모를 지녔지만, 동네 사람들과 주변인들에게는 좀 피곤한 존재였다고 한다.
동네에 담장이 무너진 집이 있으면 사흘간 지켜보다 안 고치면 할아버지가 넷째 날 새벽부터 남의 집 담장을 직접 고쳤다고 한다. 아이들이 지저분한 모습을 하고 있으면 직접 씻겨서 아이 부모가 할아버지께 사과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외할아버지가 올곧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긴 했지만 다른 사람의 영역을 너무 많이 침범했고 자기 옳음에 빠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 돌아가셨기 망정이지 요즘에 그렇게 행동했다면... 각자가 다른 생각과 가치로 살아가는데 자신만이 옳고 바르다며 타인을 가르치고 교정하려 든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가만히 곱씹어 보니 나도 다른 사람 눈에는 비슷하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내가 나의 잣대로 타인을 재는 것은 엄청난 교만이다. 타인을 그대로 믿어주고 존중해 주지 못하고 내 식으로 만들려는 태도는 교만을 넘어선 독선이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내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믿어주는 것이 함께 사는 사람의 서로에 대한 예의로 이웃에 대한 관용 내지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바꾸려 들지 말고 내가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타인을 바꾸려는 교만과 불가능한 도전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먼저 다스리고 재 조율해 나가는 겸손과 너그러움이 내 삶을 먼저 순탄하게 만들며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할 것이다.
오늘같이 봄바람에 꽃비가 내리는 날, 진정 봄바람 같은 훈풍이 되고 봄비 같은 단비가 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훈풍이 되어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고 단비가 되어 생명을 싹트게 하는 존재가 되어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머물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이고 싶다. 만약 사람이 바람 같고 물 같으면 걸릴 것이 없고 넘어질 것도 없다. 그렇지 못하기에 자꾸 걸리고 넘어지게 마련이다. 바람 같이 투명하고 물같이 부드러우면 어떤 존재라도 씻어주며 감싸 안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투명하지도, 부드럽고 공손하지도 못하기에 생기는 일들이다. 남의 눈의 검댕은 보며 내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러니 먼저 거울을 보며 자신부터 살펴보자. 그리고 주변에 대해서는 최대한 너그러우며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자. 우리를 키워준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