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잘 넘어졌다. 평지에서도 혼자서 넘어지는 일이 많았고 비 오는 날이면 계단에서 구르는 일도 잦았다. 이렇게 신체적으로 균형감각이 부족해서 넘어질 뿐만 아니라 성격적으로도 소심하고 예민해서 그냥 넘기지 못하고 속으로 걸려 혼자서 헤매는 일이 많았다.
예민한 딸을 기르는 엄마는 나에게 늘 마음을 너그럽게 쓰라고 가르쳤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그냥 넘기지 못하고 속으로 곱씹으며 혼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잦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개인의 내적 성장과 개성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피곤해지고 지치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걸리는 일은 주로 내 잣대를 들이댈 때였다. 이래야 하는데... 이것이 옳은데... 등 등의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다 재단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생기는 갈등과 마찰이었다. 그런 내 잣대가 옳지도 정당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겪은 뒤였다.
중학교 때 영어를 배우다 잣대(ruler)와 왕(ruler)이 같은 단어라는 것을 알고서 적잖게 놀랐다. 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왕이나 절대군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내가 만든 자로 세상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내가 왕이며 절대자로 모두 나에게 복종하고 따르기를 원하는 독재자와 같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머나! 세상에! 내가 그랬구나! 엄청난 교만과 착각임을 알고서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래, 나의 잣대로 타인을 재단하는 것은 엄청난 교만이며 폭력이다. 타인을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하지 못하고 내 식으로 만들려는 태도는 교만을 넘어선 독선이다. 내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믿어주는 것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서로에 대한 예의로 이웃에 대한 배려로 그럼으로써 나도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타인을 내식으로 바꾸려 들지 말고 내가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타인을 바꾸려는 교만과 불가능한 도전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먼저 다스리고 조율해 나가는 겸손과 너그러움이 내 삶을 먼저 순탄하게 만들며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할 것이다.
만약 사람이 바람 같고 물 같으면 걸릴 것이 없고 넘어질 일도 없다. 그렇지 못하기에 자꾸 걸리고 넘어지게 마련이다. 바람같이 투명하고 물같이 부드러우면 어떤 존재라도 씻어주며 감싸 안을 수 있으며 겸손하게 낮은 곳으로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생명의 바다에 도달할 수 있으련만...
문제는 내가 그렇게 투명하지도, 부드럽고 공손하지도 못하기에 걸리고 넘어지는 것이다. 남의 눈의 검댕은 보여도 내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며 스스로 고통받은 것이다. 그러니 먼저 거울을 보며 자신부터 스스로 다스리고 돌아보고 살펴보자.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나 일에 대해서는 최대한 너그러움과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자. 나를 여기까지 키워준 가족과 선생님들이 부족한 나를 믿어주고 사랑으로 감싸 안아준 것처럼...
오늘같이 봄바람이 되고 단비가 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훈풍이 되어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고 봄비가 되어 생명을 싹트게 하는 존재가 되어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머물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