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과수원에 일손 돕기를 나섰다. 몸을 쓰는 데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고양이 손도 빌리게 된다. 우리가 할 일은 처진 복숭아나무 가지를 줄에 묶어 올리는 일이었다. 전문가의 동영상을 보아도 이해할 수 없어 농사일에 익숙한 사람을 불렀지만, 동영상을 보고서도 몇 번의 시도 끝에 방법을 이해하게 되었다.
방법을 숙지한 분이 시범을 보자 나는 바로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호기롭게 알겠다고 했더니 한번 해 보라고 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끈이 묶어지지 않고 바로 풀어져 버렸다.
내가 잘못하자 함께한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밝아지며 ‘교수님도 못 한다.’라고 소리치며 자신감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덤벼들었다. 약간 머쓱해진 마음에 구석으로 가서 혼자서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나 줄은 풀려버렸다. 머리를 써가며 겨우겨우 익히자 이번에는 나뭇가지가 무거워서 혼자서는 들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모두 실패하고 돌아와 보니 다른 이들은 벌써 익숙한 듯 일을 척척해 내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사람들은 왜 내가 잘못하면 ‘교수도 못 한다’라며 좋아하고 자신감을 가질까? 내가 가르치고 연구한 것은 단지 좁은 분야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모든 일을 잘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머리가 좋아서 모두 잘할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잘못하면 도리어 좋아하고 즐거워하며 본인들도 자신감을 가지는 것 같았다. 내가 잘못해서 다른 사람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야 내가 언제까지 뭐든지 잘못해도 좋다. 혼자 잘났다고 여기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며 자신감을 채워줄 수 있다면 그 또한 보람된 일이고 내가 원하는 바다.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잘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느꼈을 열등감과 패배감이 얼마나 컸을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심리에 보상이라도 하는 듯이 나의 실패와 무능을 다른 사람들이 반기는 것 같았다. 그런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혼자서 잘난 척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부끄럽기도 하다.
공부 그게 뭐라고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으며 흥미가 없을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는데. 그 하나의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사회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잘못된 잣대로 자신이 잘났다고 여기는 사람 또한 속 좁은 인간이다. 조물주는 각자에게 다른 재능과 능력을 줬는데. 지금은 그래도 다양성이 인정받는 사회가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도 그 귀한 청소년기를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에만 매달리며 낭비하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모두가 자신 있는 분야가 있다면 다른 일로 열등감을 가지며 위축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가정주부로 평생을 산 분을 만나면 나는 집안일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스스로 무능하다 여기며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집안일도 얼마든지 전문직이 될 수 있고 그런 능력도 귀한 것이다. 단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누구든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장인정신과 살림 9단, 얼마나 멋진가? 내가 하기에 더 잘하거나, 더 양심적이거나, 더 위생적으로 할 수 있다고 충분히 자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자부심이 생긴다.
내가 차려준 밥상을 받은 사람이 ‘이 밥상은 영양학적으로 그리고 위생적으로는 최고의 밥상이다.’라고 에둘러 말했다. 그래서 나도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최고의 맛을 내지는 못해도 내가 아는 지식을 모두 동원해서 영양과 위생을 극대화한 것으로 몸에 좋고 믿고 먹을 수 있는 건강밥상이라고 했다. 정말이지 최고의 요리사가 하는 음식은 맛에만 치중하다 보니, 영양과 몸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러니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며 자부심을 길러야 한다. 사회적 평가보다 자기 평가가 더 중요하다.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도 글을 모르는 것이지 인생을 모르지 않는다. 신문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단순한 기계 조작법을 모르고 익숙하지 않은 것일 뿐이지 삶을 모르지 않는다. 자비로움과 용서가 무엇인지는 몸으로 실천했기에 익히 알고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자부심을 느끼자. 내가 존재하기에 이 땅이 더 평화롭고 더 살만한 곳이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