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샘물 15

by 최선화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봄비는 마치 하늘에서 축복이 내리는 것 같다. 내 방 창문 앞 태산목도 이제야 고개를 들어 목을 축이고 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잦아들며 생명의 꿈틀거림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모두가 축복 속에서 서서히 원기를 회복하고 있다.

오늘같이 봄비가 촉촉이 순하게 내리는 날은 가슴속 깊은 고요의 자리로 들어가게 된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봄처럼 내 존재의 뜰에도 감사와 축복이 고개를 내민다.


물이 진리의 상징이라는 것이, 이런 날은 더 명확해진다. 진리보다 우리의 가슴을 다독여주고 녹여주며 채워주는 것은 없다. 그래서 사랑이 진리를 만나 생명을 잉태하고 품게 된다. 지금 내 가슴을 통해서 드러나고 표현되어야 할 진리와 사랑은 무엇인가? 시시한 감정적 혼돈과 소모에서 벗어나서 오롯이 드러나고 전해야 할 사랑은 무엇인가?


해 묵은 상처와 가슴속 옹이들이 이제는 물기를 머금고 풀어헤쳐지며 세월의 강으로 흘러버리고 새싹을 키워야 할 것 같다. 내 영혼의 뜰에 무성한 지난 세월의 흔적들을 걷어내고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파종하고 생명나무를 심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지난 세월의 흔적은 내가 붙잡고 있는 한은 영원히 내 곁에 머물며 나를 건드리고 괴롭힐 것이다. 그러니 무성한 잡초와 함께 거름 밭으로 옮겨 발효를 통해서 숙성시킬 때가 되었다. 그래서 지나간 삶이 장애물이 아니라 새로운 자양분으로 전환되어 내 삶을 가꾸어가도록.


지금 나의 관심과 애정을 애타게 갈구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무심히 지나친 것들, 당연하다고 여기며 놓여버린 것들, 무관심하게 멀거니 바라만 본 것들, 아예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간 것들조차 나의 관심과 따뜻한 시선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그중 가장 귀한 것은, 역시 사람이고 생명이다. 내 나이쯤에는 친구들이 하나씩 줄어들며 그 흔하던 말동무조차 드물고 그립다. 이렇게 귀해 봐야 그 가치를 알게 되며 그래야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생명의 강물이 다 마르기 전에 깨닫고 진정한 삶을 누리고 나누어야 한다. 시시하고 어리석은 장난질에 갇혀버리지 않고 담담하게 흐르는 생명의 강물과 함께 도도히 흘러야 한다.


지금 나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누구인가? 주변을 둘러보며 눈길을 돌려 손잡아 주어야 한다. 서로 따뜻하게 끌어안으며 언 가슴을 녹여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더 후회하기 전에, 지금 이렇게 내 손에 온기가 남아있고 서로를 알아보고 애정과 감사를 나눌 수 있을 때.

나라는 감옥에 가두고 있는 모두를 풀어 주고 그럼으로써 나도 해방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기꺼이 생명의 강물을 들이켜며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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