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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Jun 13. 2023

모성


 가끔은 익숙한 사물을 새롭게 다시 보고 낯선 시각으로 재조명해 봄으로써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얼마 전 제주에서 설문대할망 제단을 보았을 때, 그곳이 할망 제단이라는 것을 알고서 찾아갔음에도, 나에게는 그 제단이 거대하고 풍성한 젖무덤으로 보였다. 그렇게 전혀 다르게 느껴졌던 이유가 뭘까? 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안개가 드리운 어스름 저녁의 희미한 빛으로 드러난 실루엣을 통해, 할망이 우리 모두에게 지금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 어둠을 틈타 다시 찾아온 것은 아닐까?  

    

 제주에서는 설문대할망의 설화를 통해서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자궁과 모태를 강조하고 있어, 돌문화공원 전체에 모성에 대한 상징들이 산재해 있다. 그런 생명 탄생의 모성으로 조용히 세상을 바라보던 할망에게는 그렇게 귀하게 태어난 자식들이 만든 세상의 혼돈과 환란을 보며 큰 물음을 다시 던지며 장고에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생명 탄생을 넘어서 그 생명이 온전한 모습을 회복하는 길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먹일 죽 솥에 제물로 던져지기에 앞서 우선 자신이 가진 생명의 양식을 다 나누어주고 먹임으로써 바르게 키우고 돌보는 작업에 돌입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대한 젖무덤으로 변신해서 이미 탄생한 생명체를 돌보고 키우는 생명의 양식과 젖줄이 되어 삶과 생명을 이어가도록 따뜻하고 부드러운 젖무덤으로 다시 찾아온 것은 아닐까? 설문대할망의 생명 사랑에 대한 깊은 염원과 갈구가 이 시대 이 땅에 생명의 양식과 구원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는 것 같았다.  

   

 여성의 모태와 자궁은 탄생의 신비와 기적의 상징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여성들조차도 자신이 가진 특성을 더는 특권과 책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젖줄이 말라가고 모성이 빛을 잃고 시들어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이 가진 신성과 창조성을 포기한 채 길을 잃어버렸다. 이를 딱하게 여긴 할망이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을 게다. 

    

 여성적 특성으로 대표되는 모태와 젖무덤, 부드러움과 너그러움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갈급한 생명의 양식이 아닐까? 경쟁과 이성, 개발과 진보로 상징되는 남성적 특성들이 만들어 낸 파괴와 오염 그리고 혼돈을 재정리하고 이해와 화해로 이어 줄 수 있는 어머니의 넓은 치마폭 같은 따뜻한 돌봄과 용서만이 모두를 치유하고 회복하게 할 것이다. 


 그런 따뜻한 손길과 너그러운 품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가슴을 녹여주어 태초부터 이어져 온 생명의 물길을 다시 열어주는 재탄생의 자리로 우리 모두를 초대한 것은 아닐까?

 부드럽고 따뜻한 모성이 정녕 우리 모두를 구원하리라. 그리하여 모성인 할망 품에서 다시 선남선녀로 거듭나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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