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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Jun 11. 2023

미소

 어느 모임 자리에 갔다가 이런저런 연유로 식사 시간을 놓쳐서 저혈당증세가 나타났다. 내 상태를 알게 된 처음 만난 분이 친절하고 따뜻한 미소와 함께 본인이 마시기 위해 꺼낸 우유 한 잔을 나에게 권했다. 평소 생우유는 잘 마시지 않다가, 우유가 그렇게 고소하고 맛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시장기에 뭔들 맛있지 않을까마는 그 우유가 특별히 맛있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전해준 분의 배려와 순수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우유마저 주인이 마시려는 것을, 불쌍한 눈빛으로 애걸하며 거의 뺏다시피 다 마셔버렸다. 상당히 무례한 행동을 낯선 분에게 난생처음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배고픔뿐만 아니라 그분의 따뜻한 태도를 통해서 느낀 믿음 때문이었다.     

 그분에 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태도와 인상으로 볼 때, 마치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낸 친구 같은 친근감이 들었다. 일상적인 통성명이라는 겉치레가 아니라, 그 사람의 정수와 영혼을 이미 알아차린 것 같아 더 이상의 다른 정보는 필요치 않았다. 


         

 평생을 사회복지와 나눔을 가르치며 살아왔다. 그런데 엉뚱하게 내가 스스로 수혜자가 되어보고 나서야 크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나누어야 할 것은 음식이나 재화가 아니라

순수한 애정과 배려심이라는 것을, 그것이 사람에 대한 근본 도리며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을.      

 순수한 미소와 친절한 태도는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슴을 녹여주는지 모른다. 우리가 거창하게 진리와 사랑을 논하며 실천하지도 못할 개념들로 주눅 들고 기죽기보다는, 가볍게 서로에게 조금만 더 친절하고 약간의 배려심만 나누어도 사람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 아닐까?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과 큰 위안을 주는 자연에 대해서도 그리고 사람과 자연을 창조한 신과 조물주에 대해서도 예를 갖추며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세상살이가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다. 지금 당장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엷은 미소를 눈길 닿는 모두에게 전하기만 해도 세상은 더 편안해지고 더 살맛 나는 곳이 되지 않을까?   

  

 신라 미인의 고운 미소는 이미 우리들의 유전자 속에 내장되어 있다. 아마 창조주가 인간을 만들 때도 잊지 않고 모두를 위해서 한 줌의 따뜻한 미소라는 명약을 축복으로 보냈을 것이다. 그러니 나부터 먼저 그런 미소와 가슴의 온유함과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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