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씨앗
사회복지 분야에서 평생 일하다 보니 일반인들은 좀 만나기 힘든 특이한 인생경로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사회적이고 상식적인 기준으로 볼 때 그들의 행동은 용납하기 힘든 사람도 있었고 그래서 법의 심판을 엄중하게 받은 사람도 있었다. 일상의 상호작용에서도 이해하기 힘들며 타인에게 해악만 끼치는 것 같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렀는가를 여기서 되풀이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들과 여러 가지 이유에서 공적이거나 사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다 발견한 특이점은, 사회적인 심판이나 편견과는 달리 이들도 가슴속 깊은 곳에 전혀 다치지 않은 온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쉽게 털어놓지는 않아도 스스로의 행동이 비난받을 만하다는 것을 알고 죄의식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도 상황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자신들의 삶이 달라졌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물론 이런 말이 변명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달라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사람 속에 심어진 생명이라는 씨앗의 온전함을 말하며 그 어떤 무엇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붙어있는 한 사람 속에는 온전한 생명의 씨앗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가는 사람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애정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지나가는 노인의 무거운 짐을 들어드리고,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기도 했다. 이런 행동들은 그들의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이들과 일하면서 그들 속에 아직도 남아있고 보존된 생명의 씨앗에 물을 주고 돌보는 일은 가슴 따뜻한 상호작용이었다. 그들이 비록 나에게 많은 괴롭힘과 곤란한 상황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마음으로 좋아하고 고마워한 것은 내가 그들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속 깊은 비밀을 알아차리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들 안에 남아있는 선함을 재인식하고 되찾았을 때 가장 편안한 모습을 보였고 그런 진실과 선함이 지속적으로 드러나지 못한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큰 죄를 지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사람 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사람보다 더 높은 차원과의 관계, 그것이 하나님이나 부처님 아니면 공자님이건 간에 자신을 초월한 어떤 존재와의 돈독한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지 하늘 무서운 줄도 알고 더 고양된 삶이 가능하다는 본보기가 존재함으로써 스스로의 행동을 제어하고 조율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고한 선과 진리에 대한 복종은 우리 삶의 표준이 되고 우리 존재의 구심점이 되어 스스로 다스려 나가고 반성하게 만들어서 결국 존재의 중심으로 되돌아오게 한다. 그래서 선과 아름다움을 본인의 삶에서도 표현해 나가도록 마음을 모으게 된다.
우리 삶에 제시된 어떤 이상이나 표준도 그것을 숭배하도록 주어졌다기보다는 그렇게 직접 살아가도록 주어진 것이다. 예수나 부처의 삶도 모두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다는 본보기를 직접 삶을 통해서 보여준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따른다는 것은 가르침에 순응하며 우리가 직접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머리로만 믿고 따르며 경배하는 것이 아니며 복을 달라고,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간청하는 대상은 더욱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 묘하게 만들어져서 우리가 아는 것과 살아가며 실천하는 것 사이에 분열과 괴리가 있게 되면 스스로 고통받고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방어기제라는 심리적 기전을 통해서 합리화시키려 들지만 다른 사람은 속여도 스스로만은 결코 속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분열 상태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정신분열증이라고 할 수 있다. 아는 것이나 믿는 것과 나의 삶이 일치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이다. 우리 속에 심어진 생명의 씨앗은 신의 성전에 거할 주인이며 우주의 법칙이 전개될 아름다운 창조의 원형이다. 그러기에 그 생명의 씨앗이 원안대로 펼쳐지고 전개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닦는 과정이 삶이며 진정한 생명의 길이다.
누구를 만나고 대하든 그들 속에 있는 신의 모습을 찾아내고 그 모습을 끌어내는 것은 내 속에 있는 신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추함보다는 온전히 남아있어 용수철처럼 터져 나오길 바라는 생명의 길을 열어주고 영접하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고 축복이다. 너무 늦기 전에 우리의 생명수가 말라버리기 전에 자신의 발자취를 뒤돌아보고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이런 것을 일반적으로는 성숙해졌다 또는 철들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나름대로 깨닫고 반성하는 점, 아니면 삶의 국면전환이 요구된다는 것을 인식하고서 실행하는 용기는 삶에 대한 진정한 애정에서 나온다. 내 속에 있는 생명의 씨앗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주어진 생명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