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놀이

by 최선화

가상 놀이

질녀의 아들이 어릴 적 얘기다. 어른들이 모두 다 같이 잠시 다른 곳을 다녀와야 하는 일이 생겨 어린애가 혼자 집에 남게 되었다. 사정을 말하며 누나가 곧 도착할 것이라 해도 아이는 무서워서 혼자는 있을 수 없다며 보채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래, 나도 어른인 것처럼 생각하지 뭐. 빨리 갔다 와.’ 라며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의자에 아빠처럼 몸을 펼치고 당당한 모습으로 고쳐 앉았다.

상담과 치료 분야에도 이런 비슷한 치료법이 활용되고 있다. ‘마치 뭐 뭐인 것처럼’이라는 방법이다. 영어로는 ‘the philosophy of as if’라는 것이다. 내가 마치 뭐 뭐인 것처럼 행동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미인 것처럼 행동하다 보면 이뻐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미인이라 여기기에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에게 마치 자신감 있는 대장처럼 행동하라고 하면, 처음엔 어색해하다가도 나중엔 그런 태도에 익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가상 놀이를 제안해 본다. 우리의 놀이는 마치 우리 개개인이 신이나 부처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부처라면 부처답게 행동해야 하며 자비심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이라면 예수님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피를 흘리지 않고 화약 연기를 내뿜지 않아도 더 근본적인 변화가 도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가정이 놀이만이 아니라 실제 동학에서는 인간이 바로 하늘이라고 하며 모두를 하느님으로 대접하고 있다. 동학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인간이 곧 신이라 여긴다. 동학의 유명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하루는 최재우 선생이 친구 집을 방문했다가 헛간 베틀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그래서 친구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친구는 며느리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다시 물었다, 저분이 누구시냐고. 그러자 친구가 다시 대답했다. ‘제 며느리입니다.’ 그러자 선생이 대답했다. ‘저기 하느님이 베를 짜고 계신다.’라고.

모든 사람을 하느님으로 여기며 경배했고 귀하게 대접했다. 그럼으로써 수많은 민초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서로를 극진히 대접할 때 서로의 가치를 알아보게 되며 나도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런 태도 변화를 통해서, 모두 속에서 자연스러운 치유와 사랑이 전해지게 될 것이다.

잘 알려진 인도식 인사인 나마스테는 당신 속의 신을 경배한다는 뜻이다. 인사로만이 아니라 실제 서로를 겉모습이 아닌 그 속의 신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극진한 마음으로 대하면 어떻게 될까? 부부가 서로를, 부모가 자녀를 그렇게 대한다면 우리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무너져 가는 수도원 이야기도 있다. 수도사들이 예언자에게 어떻게 하면 이렇게 허물어져 가는 수도원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을지 물었다. 그러자 그들 중에 누군가 선지자가 있다고 했다. 그날부터 수도사들은 서로서로 누군지 아니면 스스가 선지자인지 모르기에 모두를 선지자처럼 대접하게 되자 마침내 수도원이 예전의 명성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30여 년간의 개인적인 경험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우리 학생들이 나를 교수로 대접해주었기에 나는 교수로 성장해왔다. 그들이 나를 교수로 키워준 것이다. 내가 그들을 키워주고 성장을 도운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그들도 나를 선생으로 키워주었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며 대접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모두가 달라질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과 부처의 자비심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이미 우리 속에 극락정토와 천국이 경험되는 것이다.

지금의 I.T 시대를 맞아 온갖 가상공간과 가상세계가 성행하고 있다. 이렇게 천국과 신을 경험하는 가상 놀이는 어떤가? 한번 해볼 만하지 않는가? 놀이가 익어지다 보면 실제 생활과 태도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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