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상한 풍선
어느 날 심심하던 차에 우연히 열어본 엄마의 서랍에는 놀랍게도 풍선이 가득했다. 참 이상했다, 이렇게 많은데 왜 내게 주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마도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찾아냈으니 다행이라 여기며 풍선을 불다 한 주먹 쥐고 나가 동네 아이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약간 별나게 생긴 풍선을 불며 한참을 놀고 있는데 동네 아지매들이 몰려와서 화를 내며 몽땅 빼앗아 갔다. 아무도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화부터 버럭 냈다. 엄마를 쳐다보았지만 엄청 당황해하는 눈치로 더 이상 말을 걸 수조차 없었다. 내가 분명 뭔가 잘못한 것 같기는 한데... 그 이유가 뭔지는 전혀 알 수 없었고, 그 일 이후 어느 누구도 그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가족 수를 조사해 보면 보통 7-8명 이상이었고 형제는 5명 이상이었다. 그때 우리는 수업 중에 가끔 산아제한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포스터가 길거리에 나붙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교수가 되어 가족복지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가계도를 그리게 했다. 처음 학생들의 가계도를 본 순간 믿을 수가 없었다.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았다. 부모세대는 부모 양계 모두 형제가 7-8명이다가 자녀세대로 넘어오면 1명 내지 2명에 불과했다. 그래서 가계도가 엄청난 불균형을 이루어 마치 뭐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아 보였다. 그림으로 보니 이미 다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인구변화가 심한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나 데이트도 하지 않는 현상이 늘고 있다. 이들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들이 결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인구 부족이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문제는 단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이미 심각한 상태가 벌어지고 있다.
몇 년 전 베네치아에서 불과 2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 호텔에 머문 적이 있다. 이곳은 한창 번성기에는 교통의 요지로 아주 번성하던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 그리고 크로아티아로 가는 삼거리 교차점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호텔은 엄청난 규모였지만 돌보지 않아서 정원은 풀밭이 되었고 건물은 보수하지 않아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호텔에 도착했는데 맞아주는 사람 하나 없이 입구 안내 책상에 작은 메모와 열쇠가 놓여있을 뿐이었다. 식사하러 간 거대한 식당에는 우리 팀뿐이었다.
동네를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가 바로 포기해야 했다. 엄청난 규모의 큰 집에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고 늑대 같은 사나운 개들이 지키고 있었다. 마을 전체가 다 그랬다. 그야말로 유령의 도시로 변해 있었다. 주말이 되자 사람들이 호텔로 몰려왔다, 방문한 가족들과 식사를 하기 위해서. 그때야 만나게 된 주민들은 모두 노인들로 개를 1-2 마리씩 데려왔다. 동유럽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대도시 외에는 모두 노인만 남아있는 모습이 보기조차 안쓰러웠다.
내가 자라난 고향도 마찬가지다. 마을에는 모두 70-80 넘은 노인들만 남아있고 저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마을이 통째 사라질 것 같다. 이것이 지금 우리 농촌 대부분의 현실이고 지방의 현실이다.
생태학에서는 동물들이 개체 수가 증가해서 밀도가 높아지면 정신질환을 일으켜서 자살률이 늘어나고 불임이 증가하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다.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한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지금 세계가 겪는 출산율 감소도 생태계의 자정 노력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더는 지구가 버틸 수 없기에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인구수를 줄여나가는 자정 과정이라 여겨진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발전과 노동력의 확보가 중요한 관건이 되고 있다. 그래서 출산율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 쓰지만 별 효과가 없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지구 자체의 생태적 측면에서 보면 지구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태인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 당장 지구촌이 겪고 있는 자연재해 특히 기후변화는 더 이상 이런 식의 삶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며 새로운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어떤 기후학자들은 되돌이키기에도 이미 늦었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실제 북미대륙 서부에 사는 친구가 메일로 산불 현황을 알려왔다. 한 마을 전체가 소실된 지역도 있고 자신들은 아직은 안전하다지만 큰 반경 내에서 산불에 둘러싸여 있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런 일이 강 건너 불구경만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 수준의 삶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정화하지 않으면 강제로 정리당하게 마련이다. 지금 내가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며 꿈꾸고 있는 헛되고 삿된 것들은 무엇인가? 개인 차원의 삶에서도 정화와 각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