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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Jun 10. 2022

피자가게 알바생의 특별한 부탁

미래의 내 모습일지 모른다

회사에서 행사가 진행될 때면 피자 단체 주문을 할 때가 있다. 행사에 필요한 피자를 주문하다 보니 열 판 이상 주문해야 할 피자가게에 직접 전화주문을 한다. 법인카드 주문일 지라도 조금이라도 할인이 되는 방법을 찾곤 한다. 단체할인에도 적용되는 통신사 멤버십이 있어서 문의를 했다. 다행히 단체할인도 적용 가능하며 원하는 시간에 피자가 배달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니 안심이 되었다. 똘똘한 아르바이트생 전화를 끊기 전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전했다.


배달하시는 분이 연세가 많으시니 많이 도와드리세요.


생각지도 못한 특별한 부탁에 "네네"라며 급히 끊었다. 이후 배달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순간 다가왔다. 목소리는 젊어 보이는 데 어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배달하는 뿐만 아니라 피자를 받는 나까지 모두 배려하는 고운 마음씨에 한참이나 멍하게 앉아 있었다.


며칠 전 집에 가자마자 컴퓨터가 또 안된다는 얘기부터 꺼낸 아빠께 짜증 섞인 말을 한 게 생각이 났다. 저번에도 안된다고 하시더니 컴퓨터가 문제가 아니라 폴더를 헷갈려 잘 못 파일을 전송한 것인데 컴퓨터가 안된다고 하셨다. 컴퓨터는 다행히 문제가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것도 곱지 않게 말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연세의 아버지는 핸드폰 고지서가 나오면 아직도 근처 대리점으로 직접 가 고지서 납부를 하신다. 번거롭게 왜 그렇게 하시냐고?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누리라 말씀드려도 간 김에 궁금한 것도 물어본다고 하며 기어이 발걸음을 재촉하신다. 퉁명스러운 딸 대신 대리점 직원의 응대가 더 좋으시겠지.


또 어느 날은 이메일을 보내는 게 안된다며 들여다보니 간소화된 이메일 발신창에 파일 첨부 화살표가 작게 표시가 되어있어서 못 찾으신 모양이다. 하루 종일 안된다며 딸이 퇴근하고 와서 봐주길 오매불망 기다리셨던 것이다. 이것저것 아무거나 한번 눌러보라며 말씀드리지만 혹시라도 무언가 잘못되어서 이메일이 잘못 갈까 봐, 컴퓨터가 고장 날까 봐 걱정하시는 분이다.


짜증 낸 목소리가 생각 나 후회가 몰아칠 때쯤 배달하시는 분이 커다란 피자박스를 들고 들어오셨다. 피자가 많아 한번 더 오토바이로 찾으러 가야 한다는 목소리에 같이 발걸음을 옮겼다. 피자를 함께 옮기고 결제하기 위해 단말기 포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스마트폰보다 조금 큰 단말기의 안내는 나에게 조차 쉽지 않았다. 합계 금액부터 입력하고 할인카드가 있는지 확인 후에 카드를 슬라이드 하거나 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최종 금액을 확인한 후 법인카드로 긁고 영수증이 제대로 나오길 기다려야 한다. 드르르르륵. 몇 분을 땀내며 함께 봤던 단말기에서 이 소리가 들리니 얼마나 기뻤는지, 영수증이 출력된 걸 확인한 후에 박수까지 쳤다.


감사하다는 말과 좋은 하루 보내시라는 말을 전하니 또 다른 배달을 위해 바삐 가시는 분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은 일터로 나온 노동자의 모습이며,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내 미래의 모습이었다. 나도 얼마 후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휩쓸려갈지 모를 일이다.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쉽사리 누군가를 가늠하지 못한다. 어린 피자가게의 알바생은 혹여나 카드결제가 잘 못될까 봐, 성격 급한 고객이 아버지뻘 되는 배달원에게 짜증을 낼까 봐, 한마디를 덧붙여 모두가 배려하고 존중받도록 용기 낸 것이다.


앞으로 나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버겁게 따라가는 나이가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의 고귀한 업무가 빛날 수 있도록 배려의 말을 전하려 한다. 신기술이 낯선 어떤 이에게는 크나큰 도전이기 때문이다. 우선 오늘 저녁 퇴근길에 아빠가 젤 좋아하시는 연어회를 사 가야겠다. 미래의 내 모습을 못 본 자조적인 태도를 반성하며 말이다.

내 미래 모습인 누군가를 많이 도와드릴 수 있도록 @jamillatrach,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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