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드림 Mar 11. 2022

너네 내가 누군지 알아?

<애나 만들기> 이야기

뉴욕 상류층을 발칵 뒤집은 20대 초반 여성이 있다. 상류층 미국인들도 입성하기 힘든 뉴욕 사교계를 뒤흔들어 놓은 이다. 애나 델비. 본명은 애나 소로킨이다. 독일인 상속녀 행세를 하며 유명인사들을 최고급 파티에 초대한다. 러시아에서 독일로 건너온 이민자 가정 출신의 한 소녀가 어떻게 폐쇄적인 맨해튼 상류사회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모두를 속일 수 있었을까? 


한 여성을 두고 묘사하는 게 너무나도 다르다. 트레이너는 그녀를 태양전지 쪽 산업을 운영하는 러시아 아버지를 둔 부자라 말한다. 큐레이터는 애나가 25살이 되었을 때 집안 소유의 인상파 화가 작품을 약 4,200만 달러에 팔릴 거라 자랑하기도 한다. 수많은 작품을 봐온 큐레이터는 작품이 진품이었다 확신한다.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다른 친구는 그녀의 패션을 '시크 파리지앵 쿠튀르'라 표현했다. 또한 누군가의 얼굴을 보면 진짜 부자인지 알 수 있지만 그녀는 평범한 평민 얼굴이었다 말한다. 한 사람을 두고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누구의 입에서 나오냐에 따라 달라지고,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것만 같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산 넘고 물 건너 그녀가 수감된 교도소로 향한다. 자신을 만나러 온 기자의 옷차림새를 비웃으며 왜 그렇게 가난하게 입고 다니냐 되묻는 당찬 아가씨다. 애나 자신이 입은 교도복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스칼리아, 헤레라, 디오르, 발렌티노 등 잘 알고 있는 명품 브랜드를 언급하며 그런 명품 옷을 입으라 말한다. 빈털터리로 보이게 하고 다니지 말라고. 


인터뷰 온 기자에게 VIP 면회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언론 면회에선 서류와 노트 지참해도 되며 단독 차량을 이용할 수 있고 또 녹음도 가능하다고 말이다. 언론 면회는 공식 서면요청을 제출한 후 허가를 기다려야 해서 몇 주가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그녀는 VIP의 삶을 누릴 수 있는데 굳이 평범한 길을 걷는 기자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애나 델비에게 맨해튼 매거진 기자의 접근은 반갑다. 그녀가 유명해지도록 적극 도와주겠다고 했으니까. 감옥 철창살 안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유명해지는 행복한 꽃길을 꿈꾼다. 공판장에서 모두가 그녀를 향해 플래시를 터트릴 것임으로 개인 스타일리스트까지 사설 고용한다. 


최고급 호텔에서 호위 호식하며 직원들에게 100불짜리 팁을 스스럼없이 주는 그녀를 그 누구도 사기꾼이라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상류층 앞에선 오히려 더 당당해진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자신은 엄청난 독일인 상속녀니깐. 몇 달간 밀린 호텔비를 청구하는 직원 앞에서도 당당하기만 하다. 


너네 내가 누군지 알아? 
- 애나 델비

이렇게 멋진 삶을 사는 나, 애나 델비. @refinery29.com



내가 꿈꾸던 모습은 이게 아냐


자신이 꿈꾸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으며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바로 '리플리 증후군'이다. 이 단어는 미국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1955)>에서 유래됐다. 부잣집 아들인 친구를 죽이고 그 친구인 것처럼 살다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정말 그 사람이 된 것처럼 믿어버리는 현상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며 그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이는 성취욕구가 강한 무능력한 개인이 자신이 처한 현실에 스스로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열등감,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주로 나타난다. 어떤 모습을 꿈꾼 건지 모르지만 그 세계 또한 허상에 가득하다. 


욕구 불만족과 열등감에서 기인하여 상습적인 거짓말을 진실인 것처럼 믿게 된다. 단순한 거짓말로 끝나지 않고 타인에게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입힐 수 있다. 2008년부터 6년 동안 유명대학 48개를 전전하며 신입생 행세를 한 사람이 일례이다. 실제 학생의 이름을 도용할 정도로 대범해졌고 학창 시절 왕따를 당한 그는 명문대를 다닌다 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즐겨 그만두지 못했다 털어놓았다. 



모두 다 나


월스트리트를 주름잡는 변호사, 뉴욕 상류층 여성 대표, 잘 나가는 스타트업 남자 친구, 이들 모두가 그녀의 연기에 속았다. 그리고 그녀 자신 또한 속았다. 맨해튼의 초고층 건물 앞에서도 5성급 호텔에서도 감옥에서도 그녀는 자신을 곧 있으면 막대한 금액을 물려받을 상속녀라 믿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이 초라해 보일 때가 있다. 이만큼 나이 먹었으면 멋진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남들이 이룬 것에 비해 초라해 보일 때. 현재의 내 모습이 원하던 모습이 아니라 실망스러울 때.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이룬 것이다. 서툴고 실수투성인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가 모두 나의 모습인 것이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I'm learning how to love myself)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
- BTS <Answer : Love Myself>



<참고 자료>

- 리플리 증후군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119392&cid=43667&categoryId=43667

https://www.refinery29.com/en-gb/netflix-inventing-anna-review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는 영화의 첫 대사를 기억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