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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Apr 24. 2022

핑계대기 시작했더니 일어난 변화

해야만 하는 핑계를 만든다

핑계란 단어의 어감은 그리 좋지 않다. 사전적 정의로도 내키지 아니하는 사태를 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방패막이가 되는 다른 일을 내세우는 것으로 나타난다. 


내게 그런 핑계를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지금 나라면은 넌 웃을 수 있니.- 김건모 <핑계> 

노래 가사에도 나오듯이 이별을 말하며 자꾸만 변명을 해대는 연인을 원망하는 말이 바로 핑계다. 잘못한 일에 대해 자꾸 이리저리 돌려 말하면 구차한 변명이 된다. 허나 핑계란 정말 나쁘기만 한 것일까? 



어휴 귀찮아


영어에서 한국어의 '귀찮다'를 잘 설명하기 쉽지 않다. 한영사전에 나온 troublesome, tiresome은 고질적인 골칫거리 등을 뜻하는데 잠시 귀찮은 걸 표현할 만큼 적절하지 않다. 굳이 표현하자면 "I don't want to.(내키지 않네 또는 원치 않아)'로 말할 수 있다. 한국어에서는 사소한 일에 귀찮음을 내색한다. 내키지 않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귀차니즘에 빠졌다 표현한다. 


귀찮은 건 여러 가지 핑계로 이어진다. 학원 빠지는 핑계, 외박 핑계, 연차 핑계, 알바 핑계, 약속 취소 핑계 등이 검색어에 오르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하기 싫은 다양한 일들이 있다. 귀찮다는 건 게으름을 포장하기 위한 변명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장소를 불문하고 가장 잘 먹히는 건 아프다는 핑계다. 그러나 이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해서 댈 수 있는 핑곗거리는 되지 못한다. 


귀차니즘이 심해지만 내 몸이 힘들어한다는 이유로, 천재지변 등의 이유로 자꾸 핑계를 대기 시작한다. 날이 좋아서 뛰어나가 놀아야 하기에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날이 좋지 않다면 파전에 막걸리를 먹어야 하는 게 국룰이므로 일하기를 늦춘다. 무엇보다 놀이를 좋아하는 인간에게 놀기 위한 핑곗거리는 우선순위 일을 미루기 위한 이유가 끊임없이 양산된다. 



유용한 핑계대기


귀찮고 하기 싫은 건 일시적인 감정이다. 그때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 몸이 피곤하고 귀찮아서 유튜브를 보고 누워서 영화를 보며 오락을 하며 시간을 보내느냐 아니면 몸을 움직여서라도 무언가를 하느냐 선택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귀차니즘과 싸워왔다. 질 때도 많았지만 장렬하게 싸워 이긴 적도 있다. 그렇게 이기고 나면 무언가를 '한' 내가 남는다.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이라는 높은 장벽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온라인 모임에 돈을 지불하고 참여했다. 친구들이 주말에 만나자는 약속에 나가기 귀찮아 핑계를 만들었다. "글쓰기 해야 해서 나 오늘 못 나가. 돈 내고하는 모임이거든." 낸 돈이 아까워서라도 참여해야겠다는 핑계가 생겨났다. 친구는 "너 지금 우리 관계가 그거밖에 안되니? 글쓰기가 중요하니?"라 되물었지만, "한 달이면 끝나니깐 다음 달에 만나자. 미안."하고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핑계가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다. 특히나 내키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 말이다. 집순이인 나에게는 산책을 해야만 하는 핑계를 만들곤 한다. 음식물 쓰레기 집에 놔두면 냄새나니깐 이거 버리러 가야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비타민D가 부족하니깐 나가서 햇볕을 쐬야 해. 그 김에 호수 산책로로 가볼까? 아참, 산책하는 길에 신상 카페가 생각이 나 '그래, 그 카페도 구경 갈 겸 오늘은 매일 가는 산책길 말고 다른 곳으로 가자.'라는 새로운 변명이 생겼다. 



놀면 뭐하니


영어공부를 시작했다면 지인에게 공표부터 한다. 말한 게 창피해서라도 무언갈 시작할 핑곗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집 근처 피트니스센터를 등록부터 하고 낸 회비가 아까워서라도 운동을 한다. 온라인 강의도 수료증을 받기 위해서라도 플레이를 누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회사 업무에 글쓰기 모임에 오디오 클립 녹음에 여러 가지 모임에 왜 그렇게 참여하냐는 질문에 나는 '놀면 뭐해? 뭐라도 해야지.'라는 답변을 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해야 할 핑계를 만드는 것이다.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질문인 '갈까 말까? 살까 말까? 말할까 말까? 줄까 말까? 먹을까 말까?' 중 해도 되는 건 '가는 것'과 '주는 것'이다. 나머지는 아끼는 것이 좋다. 해야 할 때는 해야 하는 핑계를 만들면 어쨌건 하는 나를 마주할 수 있다. 자그마한 핑곗거리가 실천하는 나를 만들고 이런 하나의 실천이 쌓여 어제와는 다르게 성장한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오늘도 해야 하는 일들을 바라보면 하기 싫은 마음이 솟구치기도 한다. 나에겐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하든지 말든지. 완벽하지 않더라도 해본 나에게 무언가 해봤다는 경험치가 쌓였고 때로는 좋은 성과로 이어져 성취감이 생기고 자신감이 붙는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해야 하는 핑계를 만들자. 그런 핑계 하나하나가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의미를 찾게 되고 또 하다 보면 새로운 길로 연결로 이어져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라. 줄까 말까 할 때는 줘라.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최종훈 교수의 인생 교훈

어차피 해야 한다면 친구들과 재밌는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Evgeniy Alyo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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